무슨 복? 사람 복!
"진짜 나 자신에 대해서 깊이 깊이 생각을 좀 해봐야겠어요."
40대 찬실이의 삶은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다. '찬실-일=0'이라 할 만큼 청춘을 쏟아부은 영화 PD 커리어는 감독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끝났다. 집도 없고, 연인도 없다. 감독이 살아있을 땐 찬실에게 일 잘한다고 칭찬을 해대던 제작사 대표는 "이제 같이 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유는 감독도 아닌 PD는 대체가능한 존재라는 것. "돈 모으고, 사람들 관리하고..." 온갖 중요하지만 잡다한 일은 다 했는데, 그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거다. 누구라도 찬실이었다면 일과 삶에 회의를 느낄 것이다. 내가 뭐하러 그렇게 열심히 했지 싶을 테니.
이런 상황에서 할 일은? 찬실처럼 스스로에게 질문해보기다. 내가 왜 이렇게 됐지, 나는 뭘 좋아하는 사람이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서 찬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이때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한 찬실에게 넘치도록 남은 복이 있다. 인복이다. '별시롭구로' 편지까지 보내 다시 일어서라고 용기주는 아버지부터 찬실을 딸처럼 챙겨주는 집주인 할머니, 찬실을 언니라 부르며 살뜰히 챙기는 배우, 다시 같이 영화 찍자고 말하는 동료, 누나동생으로 지내자며 따르는 단편 영화 감독까지...
사실 찬실에게 최고의 복덩어리는 따로 있다. 바로 찬실 자신이다. 자신이 영화일을 포기하려는 순간에 영화를 최초로 좋아하게 된 계기였던 장국영을, 자기 마음속에서 불러냈으니까. 장국영은 영화 속에서 귀신인데, 결국 찬실 마음 속에 살고 있는 영화에 대한 애정과 동일시되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장국영의 응원과 함께 찬실은 '깊이 깊이' 생각한 끝에 영화 시나리오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결국 찬실이 스스로를 구해낸 것이다.
영화의 엔딩 즈음 찬실은 자신을 보러 놀러온 이들과 함께 어두운 밤길을 나선다. 그들 맨뒤에 서서 손전등으로 길을 비추어주는 한편 동그랗게 뜬 달에 소원을 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영화에서 나오지 않지만 아마 찬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빌지 않았을까? 지금 손전등으로 동료, 후배의 길을 그리고 자신의 길도 밝히고 있듯이. 찬실이는 자기 자신을 다잡았고, 또 곁을 지켜주는 이들이 있으니 제목처럼 복이 많은 게 맞다.
"좋아하는 일만은 나를 꽉 채워줄 거라고 믿었어요. 근데 그게 아니었어요.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예요. 저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이제 그녀는 '찬실-일=0' 이 아닌 삶을, 그렇다고 좋아하는 일을 아예 버리지 않은 삶의 균형추를 어떻게 맞추며 살아갈까? 복 많은 그녀보다 내 걱정부터 해야겠지만 참 사랑스러운 그녀를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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