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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Jan 06. 2020

11. 방황할 것.

우리 내면에 오롯하고 온전한 우리만의 별이 빛날 수 있도록

니체는 말했다.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인간이 안정을 추구하는 건 인간 존재 자체가 본래 불안하고 어정쩡한 생의 좌표 위에 서있기 때문이 아닐까. 학교, 연인, 직장 등 어떤 적을 갖지 못한 사람도, 이미 가진 사람도 그 자리에 멈춰 설 수 없는 게 삶이므로.


어느 곳에도 적을 두지 못했던 취업준비생 시절, 나는 내 좌표 위에 아주 작은 보폭으로라도 두 발을 딛는 대신에 한 발만 들고 서 있었다. 남은 한 발로 저 먼 곳에 껑충 뛰어오르기 위해서였다. 한 발로만 선 일상은 자주 흔들렸다.


그리고 적을 갖게 된 지금, 경력, 결혼 등으로 인해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곳과 관계에 소속된 것처럼 보이는 선배들의 불안을 곁에서 접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마라톤이라 비유되는 삶에서 우린 한 고비를 넘었을 뿐, 절대 경기가 끝난 건 아니다.     


생의 끝없는 방황은 우리가 내면에 별을 품은 대가이자 보상일지도 모른다. 방황'때문에', 그리고 '덕분에' 우리는 계속해서 질문하고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간다. 오롯하고 온전한 우리 각자의 세계가 세워지고 별이 그 안에 안겨 빛나는 때가 언젠가 온다.


예전에 사람들 앞에서 시를 낭송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내가 소개한 시가 도종환 시인의 '깊은 물'이다.     


깊은 물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얕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

이 저녁 그대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

돌아오는 길에도 시간의 물살에 쫓기는 그대는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 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그대 오늘은 또 얼마나 소리치며 흘러갔는가

굽이 많은 이 세상 이 시냇가 여울을


난 항상 깊은 물이 되고 싶었다. 내게 깊은 물이란 단단한 사람이었다. 단단하다는 말의 뜻 중에는 방황하지 않는다는 것도 포함됐다. 자기 신뢰와 확신이 뚜렷한 사람이 돼 주위 환경에 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됐으면 했다. 그러나, 나는 나이가 들수록 방황한다. 가장 마이크로 한 분석 대상인 나 자신에 대해 조차 잘 모르겠다. 그러니 나를 둘러싼 세계의 선악 구분과 피아 구별이 잘 안 된다. 예전엔 이런 내가 피곤했다. 모든 걸 얕고 납작하게 생각할 배짱이 있거나 복잡함을 분해할 만큼 똑똑하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거의 매일 혼란을 느끼며 사는 것이 좋다. 평론가 황현산의 표현처럼 '책 한 줄 읽지 않고도 생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서다. "Ok, Boomers!" 작가 은유처럼 나도 '확신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다. 그래야만 난 끊임없이 고민하고, '모호함은 섬세함으로, 속상함은 담담함'으로 바꾸기 위해 글을 쓸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깊은 물은 혼란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깊은 내면이 그 누구보다 요동쳐도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하려 애쓰는 이다. 오히려 깊은 물은 얕은 물보다 큰 혼란의 토네이도에 에너지를 집중하느라 겉으론 평온해 보일지도 모른다. 깊은 이의 표면은 고요할 테지만 얕은 이의 표면은 시끄럽기만 할 것이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https://room-alo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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