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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Jan 07. 2020

12. 손, 나의 손

정직한 손은 가장 진실한 마음을 전하기에 좋다.

우리는 긴장했을 때 손에 땀이 차거나 손을 떨거나 손가락을 실없이 움직인다. 목소리가 떨리는 게 티 날까 봐 침묵을 택하고, 얼굴이 붉어질까 심호흡하고, 눈빛이 흔들릴까 점을 여러 곳 찍어두고 그곳만 바라보며 긴장을 숨기려 해도 손만은 정직하다.

나는 이런 적도 있다. 손의 떨림이 느껴질 때 내 손을 가만히 지켜보는 거다. 그만 떨어,라고 주문을 거는 건 아니다. 그 떨림이 내 몸이 느끼는 진동만큼 커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막상 지켜보면 손이 심장박동 수만큼 빨리 흔들리진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내가 괜찮아 보일 테니까. 긴장을 숨기는 건 자존심의 문제기도 하지만 사실 보는 이에게도 훨씬 편한 일이란 걸 난 알고 있다.

그렇게 손은 내 짧은 생에 반해 체감상 아주 길던 긴장의 순간을 나와 함께 했다. 면접 볼 때, 발표할 때, 토론할 때, 그리고 진심을 고백하기 전에. 떨리는 두 손을 마주 잡아보고, 주먹을 쥐면서 난 그 시간을 버텨냈다. 에픽하이 노래 '연애소설'의 "한평생 무수한 걸 짓고 무너뜨렸을 네 손"이란 표현이 와 닿았던 이유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손가락을 움직여봐."

영화 <벌새>의 대사다. 이 말을 듣고 돌아온 밤, 그리고 이후 내가 맞았던 수없이 외롭고 무력했던 밤에 나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손가락을 움직이곤 했다. 상황, 상대, 나 자신이 버거울 때 나와 가장 가까이 있던, 나의 손.


날 지키고 위로해온 이 손으로 이제 나는, 누군가의 등을 쓰다듬어주고 떨리는 손을 포개 잡아주고 꽉 껴안아 두 손을 깍지 끼고 싶다. 때론 바로 옆자리에 누워 각자의 손가락을 움직여봐도 좋겠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때가 있으니까. 정직한 손은 가장 진실된 마음을 전하기에도 좋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https://room-alo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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