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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Jan 08. 2020

13. 꿔다 놓은 보릿자루

'정장 입은 보릿자루'였던, 썩 유쾌하진 않은 기억이 내게 준 것.

김원영 변호사는 한 칼럼에서 20년 전 한 국회의원이 연 후원모임에서 초대됐던 자신의 경험을 고백했다. 인사말 한 마디도 못한 채 그저 그 자리에 "아름다운 정당성을 부여하기에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역할이 내 욕망과 성향에 부합하지 않았다"라고 말이다. 


이는 일면 최근 '2019 SBS 연예대상'에서 화제가 된 김구라의 소신 발언과도 통한다. '구색 맞추기'식으로 대상 후보에 사람만 여럿 올려두는 게 방송사 이익에만 부합할 뿐 해당 연예인이나 시청자 모두에게 지루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역할은 단순히 시간을 죽임으로써 지겨운 일의 의미를 넘어선다. 그것은 역할자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의 상징으로서 이용되고 있으며 고로 자신을 위한 시간을 빼앗기고 있단 사실을 깨닫게 한다. 나라는 존재가 상징에 갇혀 살아있음에도 마치 살아있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때, 할 수 있는 일이란 역할을 연기하며 시간을 잘 축내는 일이다. 


내게도 경험이 있다. (벌써) 2년 전이었다. 운 좋게도 워싱턴 D.C에 위치한 한 정책연구소에서 인턴을 할 기회가 있었다. 직접 지원한 게 아니라 특정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받아 가게 돼 무급이었다. 나는 완전히 새로운 문화에서 실무를 배워볼 경험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부서에 배치되고 보니 난 정말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다. 좀 더 가깝게 '정장 입은 보릿자루'라고 해야 할까.


정장에 구두까지 신고 제시간에 출근을 해도 퇴근 전까지 단 한 명과도 대화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사무실 중앙에 있던 내 책상 앞 복도로 동료들이 오가도 나는 투명인간과 같았다. 애초에 인턴에 주어진 업무가 없고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지 않은, 작은 기관이었던 탓이다.


그러다 아주 가끔 먼저 누군가 다가와 내게 말을 걸 때가 있었다. 그건 보통 한반도 관련한 문제였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던 때라 미국 정가에서도 한반도 정세에 관심이 많았다. 그들은 불쑥 내게 다가와 "한국전쟁이 다시 일어날까?"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것 같니?"라고 물었다.


당시엔 내 견해를 물어봐주고, 관련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단 것 자체가 기뻤다. 그게 대단히 의미 있었다거나 업무에 당장 필요한 질문이었는지는 의문이 들었지만 고마웠다. 다만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던 내가 그들에겐 한국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한 대학생으로서의 상징에 그쳤다는 사실만은 정확히 인지했다. 더불어 날 보낸 연계 기관과의 관계 역시 있으니 일종의 비즈니스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서의 경험은 내가 그저 '의자 지옥'에서 시간을 죽이며 나 자신도 죽어가는 기분을 버티는 일과 동일어였다. 당시를 떠올리면 분초만 따지며 어서 이곳을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언제 던져질지 모를 시선과 질문에 대비해 표정 관리는 하면서 말이다. 썩 유쾌하지 않은 그때의 기억은 내게 그것이 '내 욕망과 성향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구색' 맞추기에 동원될 바에야 공허히 화려한 자리는 마다하겠다는 다짐으로만 남았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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