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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Feb 17. 2020

50. 아빠라는 숙제

"우리 딸, 아빠 딸 돼 줘서 고마워" 그의 진심 앞에서.

하루에 담배 두 갑, 한 봉지당 열댓 개가 든 귤 세 봉지. 아빠가 엄마 몰래 편의점에서 사 온 것들이다. 그것도 매일. 아빠는 세탁실에 쪼그리고 앉아 몰래 담배를 피우고, 안방 침대 서랍에 숨겨둔 귤을 혼자 먹었다. 끊임없이 피우고, 먹으려는 아빠와 그걸 막으려는 엄마 간의 실랑이는 집 안팎에서 계속됐다. 시도 때도 없이 이 두 가지를 찾는 아빠를 보면서 나는, 아빠의 관심이 어린아이처럼 1차원적 욕구 충족에만 집중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카페에서 조각 케이크 한 조각에 집착하는 아빠 모습에 폭발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아빠,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나는 혼을 내듯 물었다. 이 물음엔 신경질을 넘어 허탈감이 담겨있었다. 아빠는 조각 케이크에 둘러싸인 비닐을 떼지도 않은 채, 허겁지겁 그것을 포크로 집었다. 그러다 테이블에 떨어진 조각을 손으로 주워 먹었다. 그런 아빠를 바라보다 화가 치민 나는 이런 무의미한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우울증이 겹친 아빠의 늙음 앞에서, 아이 같아진 그의 행동에 합리적이고 명확한 이유가 있을 리 없었다. 아빠조차 답을 모를 질문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화를 냈던 건, 내가 아빠의 늙음을 연민하는 동시에 미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한 시기는 60대에 접어들고, 사업을 그만둔 시기와 맞물렸다. “50대엔 해가 바뀌어도 느낌이 없었는데, 60대가 돼서 앞의 숫자가 달라지니까 마음이 이상해”라고 말하던 아빠는 그즈음부터 혼자 정신과를 다니며 우울증 약을 탔다고 했다. 매일 밤 수면제로 잠을 청하는 기간이 6개월, 1년, 1년 6개월로 점점 늘면서 아빠는 흐려졌다. 목표의식도, 정신력도. 그저 당장 먹고 싶은 것, 피우고 싶은 것에 집중했다. 가난한 집안 장남으로 자라 못 먹고 자란 한을 자주 말하던 아빠는 자신이 아이였을 때 원하던 것을 뒤늦게라도 쟁취하려는 듯 행동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주 아빠를 이기려 들었다. 집안 문제와 사회 현안에 관해 나는 항상 주장이 강했으니까. 우린 자주 논쟁을 했고, 아빠는 매번 져줬다. 이날도 난 이기려 들었다. 케이크 앞에서 아빠처럼 구는 건 ‘교양’이 없는 것이고, 틀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빠가 먹는 것에 갖는 집착을 연민하면서도, 부끄러웠다. 연민과 미움이 담긴 내 눈빛을 알아챘을까. 아빠는 손을 멈추고, 카페를 나가 혼자서 주변을 배회했다. 외투는 꼭 반만 걸쳐 입어 브랜드가 거꾸로 드러나 보이고, 안경은 삐뚤게 코에 얹은 채로.


그날 이후 나는 더는 예전처럼 아빠를 이길 수가 없게 됐다. 아니, 아빠가 아닌 그의 늙음을. 어찌할 수 없는 아빠의 늙음 앞에서 나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아빠 자신도 마찬가지겠지. 아빠의 늙음에 대해 연민과 미움을 동시에 느낀 최초의 경험은 20대가 된 나에게 숙제처럼 다가왔다. 어떻게 아빠의 늙음을 온몸으로 껴안을 수 있을까. 내가 나이가 드는 동안 아빠의 세월도 함께 더해갔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제야 나는 그 숙제를 인지했다.


3일을 머물다 부모님 집을 떠나는 날, 아빠는 자꾸 “우리 딸, 아빠 딸이 돼 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그 진심 앞에서 나의 철없음을 탓했다. 그의 늙음을 이해해주기는커녕 견뎌주지도 못하는 나를. 나는 이 숙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연민과 미움 대신 사랑으로. 아직은, 어렵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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