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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Mar 26. 2020

83. 종소리

어제 와인 품종 중 하나인 피노누아를 마셨다. 이 와인 잔의 모양은 시중에서 쉽게 보는 와인 잔과 달랐는데, 위가 아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고 아래는 크게 둥글었다. 전체적으로 펑퍼짐한 느낌이지만 아래 부분은 특히 사람으로 치면 허리살이 튀어나온 것 같았다. 그 잔이 기억에 남는 건 두 잔을 엑스 자 모양으로 부딪히면 종소리가 난다는 거다. 어제 친구가 처음 알려줬다. 그 뒤로 몇 번이나 그 종소리를 들었는지 모른다. 상대가 내게 진심을 숨긴다고 느꼈을 때 한번, 말이 끊겼을 때 한 두 번, 대화가 너무 즐거워 취기를 더하고 싶을 때도 한두 번, 말을 너무 많이 해서 목이 마를 때도 한 번, 그리고 그냥 듣고 싶어서 여러 번. 


친구와 가까이 마주 보고 앉은자리,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곳의 조명과 뉴에이지, 팝송 등 여러 장르의 노래가 잔잔하게 흘러나오던 그 자리에서, 우리가 함께 들었던 종소리. 그 종소리가 혼자 맞은 아침과 혼자 보낸 하루 내내 내 귀에 울렸다. 그건 그 종소리를 함께 듣던 그 시간이 벌써 그리워져서다. 누구나 소중한 누군가와 보낸 아름다운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산다. 종소리는 그 그리움을 나와 매개한다. 앞으로 들을 많은 종소리가 어제의 순간을 내게 가져다줄 것이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https://room-alon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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