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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Mar 29. 2020

85. 떠남이 아닌 머무름을 택하는 것

우연히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와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연달아봤다. 겉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공허와 희망 없음을 다룬 점은 공통점. 차이점은 전자의 주인공 '리즈'는 그래서 떠났고, 후자의 주인공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못했다(또는 않았다)는 것(부부인 두 사람의 견해는 대립된다). 


그 차이만큼이나 두 영화 주인공들의 '그 이후의 삶'은 정반대다. 리즈는 이탈리아 로마-인도 아쉬람-인도네시아 발리를 거치는 동안 영화 제목 그대로 먹고, 기도하며 자기 자신을 찾아(=중심 또는 균형을 잡고), 사랑에 빠져들며 깨지려던 그 균형을 더 큰 균형을 위해 용기를 내본다. 


반면,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파리를 향한 갈망과 낭만을 접고 '이 곳에 없'다던 삶을 꾸역꾸역 살아내 보려 하지만 실패한다. 프랭크는 에이프릴을 잃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지막 아침식사는 '위장된 평화의 날카로움'이 드러난다. 떠나지 못한(않은) 그들은 더 이상 함께 먹고, 사랑할 수 없게 됐다.


모든 것을 버리고 훌쩍 떠나는 것만큼이나 떠나지 않는 것도 용기다. 황현산 평론가는 '삶이 여기에 없단 말은 삶을 포기하란 뜻이 아니라 이 삶을 이대로 놓아둘 수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놓아둘 수 없기에 이 삶을 현 조건에서부터 어떻게든 살아내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게임 속 캐릭터처럼 삶을 다 리셋하고 살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지 않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떠나지 못한다. 나는 자유롭게 떠나 여행기를 쓰며 사는 사람만큼이나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을 존경한다. 떠남도 영화평론가 김혜리의 말처럼 약간의 '자기도취'가 있어야 하는 법이고, 현실적으로 '돈'이 있어야 한다. 어떤 이유로 못 떠났든, 또 안 떠났든 떠남이 아니라 머무름을 택했다고 생각하는 게 때로 옳고 정신건강에도 좋다.     


# 놀러와요, 글-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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