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차 : 더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안는다

삼수저(3가지 수용과 저항) 코칭

지금, 내가 머무는 곳이 어떤 곳이든 참 평온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아침 청소 중에 찾은 우리 카페의 찐 팬 고객님이 다녀갔다. 보이지 않는 시간에 겪었음직한 나의 고통을 짐작한다는 듯 따듯한 격려의 말과 응원의 샤워를 쏟아주고 갔다. 약한 연결의 연대마저 이토록 힘이 되는데 진한 끈을 가진 관계에서의 북돋움은 얼마나 강력한 큰 힘이 될지를 생각하게 된다. 가장 강력한 자장을 뿜어내는 연결은 어떤 연결일까? 어쩌면 내가 평생 ‘사람’에게 집중하고 좋아했던 이유들이 이런 자장을 찾는 작업이 아니었을까? 나의 ‘참나’ 존재가 맘껏 춤출 수 있는 무대를 찾아 헤맸다.



그런데, 늘 놓친 것들이 있었기에 내 영혼은 함부로 내쳐지고, 외부의 요인에 부침을 오갔다. 극에 달할 때는 조증과 울증을 오가며, 타인에게 들키지 않으려 다양한 가면들을 쓰며 그저 역할 놀이에만 충실했다. 이유는 너무도 자명하다. ‘에고의 마인드 셋’ 상태로 있었으니 심한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너덜너덜 영혼이 털리고 자상을 입고 얼룩덜룩 상흔만 새기고 내팽개쳐진 ‘참나’.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하고 확실해야 했으며 존재 표현을 못하는 에고의 3가지 저항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



Q1. 사랑, 수용, 존중, 가치를 찾아 헤매던 대표적인 나의 사건을 떠올리고 묘사해본다. 이 고통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A1. 비밀주머니를 차고 살았던 어린 날이 참 외로웠다. 엄마가 주는 사랑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외로움을 타고 났던지 사람들이 그렇게 그립고 좋았다. 막상 함께 한다고 유난을 떠는 것도 아니면서 누군가들이 함께 한다는 게 안심을 주는 모양이었다. 자연히 난 언제나 사람들을 내 곁에 두기 위해서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그 사람들에게 참 충실했다. 한 번도 내색한 적 없지만 그들이 그냥 가버리거나 거절할까봐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다행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하는 시간들을 즐거워해서 늘 사람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럼에도 가시지 않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방황을 해야 했다. 영혼의 순례를 위한 여행을 떠나는 홀로의 시간을 즐기기도 했다. 그런 방황은 때로는 좋지 않은 방향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되기도 했다. 패턴화된 관계의 불균형으로 여러 번 다치면서 오뚜기처럼 일어서기도 잘 했다. 딱 그만큼을 이겨낼 정도의 성찰과 발견으로 또 윤회의 바퀴에 깔리는 악순환이었다.



3년 여 전, 결정타를 크게 맞고 완전히 뻗었다. 오랜동안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SNS 상으로 연결되어 일로 만난 사람이 있었다. 인간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일하고 싶다면서 나의 사람됨에 포커싱을 하고 있었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크게 없던 터라 다른 사람에게 하듯 성실하고도 친절하게 정성을 다했다. 사랑이 결핍되었던 사람이었던지 지나치게 감동하고 심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 정도에서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과도한 동정심이 일어서 선을 넘었다.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싶어지는 순간들이 거듭 되면서 살짝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119에 실려 가는 응급 상황이 발생했다. 사우나에서 심정지로 쓰러져버렸다. 불길한 예감은 있었으나 ‘만의 하나’라는 가정이 결국 나를 그곳으로 달려가게 했다. 직접적 연고자가 없어서 나에게 연락이 온 상황. 장기간 외국에서 생활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당장 시술에 들어가야 하는 긴급성. 그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내가 가진 꼴이었다. 어느새 나는 연대보증인으로 싸인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마음이 쫓기면 허둥지둥 얼어버리는 사람이어서 상황에 끌려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여지없이 나는 얼어 붙어버렸다. 머리에는 ‘만의 하나, 만의 하나, 만의 하나?’라는 생각만 맴돌고 있을 뿐.



결국 두 부위의 심장 정지 관련 시술이 있었다. 외국에서 오래 체류하면서 국내 주민등록까지 말소된 신분이라 의료보험이 적용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의료시술비, 통합간병비 등 근 오천 만원에 가까운 진료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본인의 말처럼 나는 심리적 보호자일 뿐일 거라 굳게 믿고 싶었다. 진료비를 지불하러 오겠다던 외국의 동료는 두 번의 시술이 끝나고 수술 후 치료 중이던 한 달이 흐르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으려고 여권조차 보자고 말하지 못했던 나. 그런 요구는 그 사람이라는 존재를 이미 나쁜 놈이라 규정할 때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차일피일 시간이 밀리자, 참을성의 한계치가 왔다.



인생에서 경제적으로 심적으로 가장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던 나는 이미 삶에 대한 도전의식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서 무기력의 늪에 빠져 있던 시점이었다. 그에 기름을 더하는 불행의 회오리가 몰아쳐 왔다. 그 사람의 병원비를 카드대출, 마이너스대출을 사용해서 치렀다. 속은 바짝 타들어갔지만 인간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놓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이미 지불된 돈을 받기 위해서도 그의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기형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속고 또 속으면서 몇 날을 더 보내다가 결국은 그의 일부 날조된 정체가 드러났다.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던 나는 여권을 압수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여권이야 얼마든지 갱신해서 나갈 수 있을 일인데 그런저런 생각을 합리적으로 하지 못했다.



2018년 1월 2일 오전 10시 즈음, 결국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불우한 시절을 겪은 그 사람의 어린 날을 한없이 동정했다, 특히 내게는 사랑덩어리이자 아픔덩어리였던 ‘엄마’라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렸기에 무조건 불쌍했다. 그런 결핍을 겪었으니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그 사람의 상처 난 과거의 기억들을 새로운 의미로 해석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더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안아줄 수 있다 했던가? 나는 더 아픈 ‘나’를 보듬는 일이란 걸 몰랐다. 내가 얼마나 아프고 힘든 상태에 있는지 감지하지 못하고 예의 습관대로 외부의 ‘타인’에게서 그 사랑 실천을 해보겠노라 오만을 떤 셈이다. 누구보다 내가 아팠다. 정작 나를 돌보지 않았다.



종적을 알 수 없는 그의 자취를 추적하고 다니면서 나는 서서히 무너져갔다. 평생을 타인의 아픔을 덜어준다고 내 육신의 평온을 외면했는데. 피붙이들의 고통을 웬만큼 덜어줬으니 이제야 ‘나’로 살면 될 일이다 했더니. 난데없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핸들을 잡으면 벽을 향해 돌진하고 싶은 못된 충동을 느끼는 순간이 잦아졌다. 꼼짝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나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간 그 인간에 대한 원망과 분노에 치를 떨었다. 그것도 잠시 나에 대한 ‘극혐’을 밀려와서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나를 먼저 사랑하지 않은 오만이, 분수를 모른 교만이, 선행이라고 생각한 한 헛된 공명심이 혐오스러워서 죽고만 싶었다.



Q2. 외부에서 안전함을 얻으려고 집착하며 변화에 저항했던 사건은 무엇인가? 그 결과는?

A2. 자신의 내면을 돌보지 않고 회피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여하려 했다. 타인에게 베푸는 삶을 사는 듯한 연기를 하면서 나를 도덕적인 인간, 이타적인 인간인 것처럼 과장하는 삶을 살았다. 현실의 무게가 내가 감당할 능력치를 넘어서고 있음을 감지하면서도 호기를 부렸다. 화려하지는 않았으되 내가 기울인 노력 이상을 누리고 살았음을 잊었다. 신체적 한계, 환경적 한계, 심리적 한계가 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애써 눈감았다. 엄청난 일을 맞고서야 바로 그때가 변화의 시기였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나는 총체적인 절벽에 섰다.



Q3. 거부의 두려움 때문에 내가 하지 못한 것들은 무엇이 있었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

A.3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말을 할 줄 몰랐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아예 시도하지 않았다. 쑥스럽고 혹은 미안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폐 끼치는 일을 하면 안 되고 힘든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라고 딱지가 앉도록 교육받았다. 상대가 알아서 도와주면 고맙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기꺼이 할 수 있으면서 타인들도 그런 마음을 누릴 기회는 주지 않았다. 이런 모순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 무의식에는 수없이 많은 에고들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모양이다. 타인에게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고 약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가보다. 최악의 상태로 꼬꾸라지고서 정말 자력으로는 손가락 하나조차 꼼짝할 수 없게 되어서야 타인의 선의를 허락했다. 꼬박 한 달을 입을 닫고 스스로를 저주하면서 나락으로 꺼져 들어갔다. 귀찮을 정도로 내 곁을 밀착해서 지킨 후배 덕에 다시 입을 떼기 시작했다. 한 명 한 명 지인들이 알게 되었고 조용히 나를 돕는 손길들이 있었다. 그들의 사랑을 어쩔 수없이 받으면서 사랑받는 느낌이 생경하면서도 따뜻했다. 어쩌면 신은 이 프로젝트를 일부러 준비했는지도 모른다. 내게 타인의 사랑을 받는 법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이 과정을 통해서 나는 사랑 순환의 원리를 깨달았다. 사랑을 놓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돌고 도는 것임을 체화하게 하셨다.



쉽지 않았다. 이런 내면의 고백을 토로할 수 있음이. 우선은 철저히 자신(에고)을 전면 부정해야 했으니 두려움이 앞섰다. 평생 지켜온 행동 철학이나 행위들이 전면 부정되는 듯한 절망이 나를 에워쌌지만 나를 지켜준 이들의 곁을 알아차렸다. ‘사랑’의 SEA 후원이 나를 살렸다. 비틀비틀 일어서기 위해 ‘수용’의 과정이 시작되었다.


Q1. 외부에서 사랑과 가치를 찾지 않고 나 자신이 이미 순수한 사랑의 존재 가치가 있다는 것을 100% 수용하고 즐기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결심하고 실행 계획을 세웠는가?

A1. 첩첩산중 어려움이 있었으나 일단 예정되어 있었던 양평으로 이사를 했다. 이삿짐, 책 정리를 하고 그 외 대부분의 시간은 가만히 있었다. 바람을 느끼고 나비의 날갯짓을 구경할 뿐이었다. 일체의 판단을 없애고, 아니 정확하게는 그럴 힘조차 없었다. 서걱이는 풀잎의 소리가 어느 순간에서부터 다정하게 들렸다. 일체의 소음을 제거한 채, 일체의 감정도 소거한 채, 그저 존재했다. 자연이 주는 위안에만 귀를 기울이며. 그런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나를 돌보지 않은 시간들에 대해 충분히 사과하고 화해를 했다.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지 함께 울어주고 진심을 다해 토닥였다. 지나간 시간들을 복기하며 우선 나를 공감해주었다. 에고의 ‘나’로 그득했던 공간에 여백이 생기기 시작했다. ‘참나’는 에고를 두고 다투지 않았다. 바딱바딱 애쓰며 오체투지했던 에고조차 토닥였다. 나이 서른을 맞기 전에 의식 혁명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때의 오롯했던 내가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로지 나 자신과 화해하기만 해도 지금껏 짓누르고 있던 근심이나 걱정이 눈 녹듯 사라져갔다. 그렇다고 늘 그 상태를 유지하지는 못한다. 종종 주의를 놓치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참나’는 언제나 문을 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길래 도망갔던 에고가 이젠 쉽게 길을 찾고 참나의 집으로 돌아온다.



Q2.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어떤 변화를 수용할 것인가? 변화를 유연하게 헤쳐 나가고 더욱 즐기기 위해서는 내가 그만 두거나 더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A2. 관계에서 오는 문제 해결을 위해 결정을 해야 할 때, 이제는 ‘참나’의 상태가 허락하는 일인지를 먼저 묻는다. 순수한 의도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 ‘참나’를 힘들게 하는 일인지를 반드시 보살핀다. 감당이 되지 않는 사람마저 품겠다는 자만심을 버리고 정중하게 거절하는 법을 만들어간다. 언제나 솔직한 자세와 언행으로 거절의 미학을 만들어 간다. 비록 이 사안으로는 거절했으되 사람 자체를 거절한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도록 겸손하고 정중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타인의 인정을 필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시로 깨닫는다. ‘참나’와 함께 하니 더 이상 외롭지 않고 참나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나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잊지 않는다.



Q3. 거부 혹은 단절의 두려움이 밀려들더라도 나의 순수한 의도에 응하는 것을 우선으로, 다른 사람의 의도를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어떤 유혹이 밀려들지라도 나의 행복을 내가 책임질 수 있으려면 어떤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또 어떤 마인드 셋으로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가?

A3. 가장 아픈 나를 돌보는 일이 가장 급선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나의 순수한 의도는 이미 사랑으로 그득해서 이기심과 나를 돌보는 일을 구별할 줄 안다는 것을 믿는다. 나의 ‘참나’가 웃지 않는 다음에는 타인에게 행하는 친절이나 선심은 다른 불순한 의도가 있을 수 있다. ‘좋은 사람’으로 비쳐지길 원하기보다 ‘오롯한, 온전한’ 내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길 바란다. 다양한 요청이나 부탁이 올 때, 사적 친분을 뿌리치지 못해서 질질 끌려다니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적어도 셀프 코칭으로 ‘참나’에게 재미와 유익을 내가 가진 탁월성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점검하겠다.



내가 행하는 단어로 주로 사용했던 ‘물심 양면’이라는 단어를 역으로 받는 역할로 충분히 서 있어봤다. 어려운 상황을 겪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보여줬다. ‘존중과 환대’를 받아야 마땅한 사람임을 이구동성으로 외쳐 주었다. 나만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순수한 의도로 가득한 사랑 넘치는 존재임을. 체득의 언어는 언제나 힘이 있다. 내가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살아가야 할 필요충분의 조건이 차곡차곡 쌓인다. ‘참나’로 살아가는 시간은 ‘생명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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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랭글리 <슬픔은 끝이 없고>


더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알아보고, 껴안을 수 있다. 어촌 마을의 풍경이니 조업을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서 절망감을 느끼는 젊은 여인을 위로하는 노파쯤으로 상상이 된다. 며느리일 수도, 동네 아낙들일 수 있다. 노파의 손이 젊은 여인의 등위에 놓여서 많은 말을 하고 있다. 노파의 표정에서 온갖 감정이 다 드러난다. 말도 필요없이 그저 '곁'을 지키는 일이 최대의 공감이자 위로라는 것을 나는 삶에서 배웠다. 끝없는 슬픔에 빠져보고서야 슬픈 이들의 심경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이름이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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