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낮, 카페에서 강의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페북의 메신저 팝업 창이 뜬다. 오랜 인연인 김선생님께서 사진을 전송해주셨다. 중국 관련 편지를 정리하다 딱 30년 전에 내가 하얼빈에서 부친 편지를 발견하셨단다. 필체가 얼마나 정갈한지 나조차도 놀랐다. 장장 세 장을 빽빽하게 깨알 박듯 써내려가 있었다. 이 편지를 받고서 ‘이 분은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셨단다. 상념이 황해를 넘나들고 있었다. 무모하리만큼 순수했고 열정적이었던 지난날의 편린들.
김선생님은 교수님께서 연결해주셨던 인생 선배님이셨다. 중어중문학 울타리 안에 있은 데다 그 분은 당시 큰 입시학원 경영도 하고 계셨기에 중국어 학원을 하고 있던 나와 가끔 교류를 했다. 인품도 훌륭하고 문화적 소양도 대단하셨으며 무엇보다 마음이 참 넓고 따듯한 분이셨다. 인생 후배에게 격려를 잊지 않았으며 당시 적성국가였던 중국(당시는 중공)을 갈 수 있도록 방법을 함께 찾아주고 북돋아주셨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미리 진출해있던 지인들을 소개해주는 등 세심하게 배려를 해주셨다. 중국을 떠돌고 있는 중에도 중간 사람들을 거치며 내가 무사한지 전화를 넣어 살피셨다는 후문을 들었었다. 막연하게나마 뒷배가 있어서 내가 감행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학원을 경영하면서 대부분 대학생이었던 수강생들을 나는 끔찍이도 사랑했다. 그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에 차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했고, 일단은 중국을 다녀와야겠다고 작정했다. 내 발로 그 곳의 실정을 확인해야했다. 그런 개념조차 없을 때였지만 그 곳에서 소위 홈스테이를 시켜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꿨다. 나는 가능한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순수한 의도만이 선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그때도 깨달았던 듯하다. 결국은 중국을 향한 장정이 시작되었다. 지금에 해외여행을 혼자서 다니는 게 자연스럽지만, 지독하게 보수적인 대구에서 처녀 아이 혼자 중국을 간다는 건 상상조차 힘든 일이었다. 간도 크게 결국 나는 해냈다.
폴정코칭도서관의 질문으로 ‘참 애썼다’ 코칭이 올라왔다. 제목을 봤을 뿐인데 울컥해져서 몇 날을 열지 않았다. 감당 못할 소용돌이가 일어날까봐 은연 중에 피하고 있었다. 센터링으로 현존하는 연습을 그렇게 하고 있지만 지난한 과거의 시간 안에 켜켜히 쌓은 묵은 정서와 감정들은 때로는 감당이 안 된다. 회피만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 듯 질문지를 열었다.
Q1. 그 많은 사건과 시간을 거쳐서 여기까지 온 내게 “참 애썼다‘고 간단한 편지를 쓰라. 과거의 사건 내용과 애쓴 것을 알아주는 이유를 쓰라.
A1. 현주야, 후배들에게 중국을 제대로 보여주고 알게 해주겠다는 순수한 의도를 가졌던 네가 참 멋졌다. 오해가 생겨 억울한 마음도 있었지만 학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지. 그 잘못을 자청해서 뒤집어썼던 일도 잘했어. 당장 달려가서 해결할 수도 없는 사안이었고 통신마저 원활하지 않았던 때 몇 날 밤을 새며 편지를 쓰고 팩스를 보냈지. 중국인들과 학생들 각각에게 편지를 써서 부디 학생들이 체류하는 날까지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갖은 애를 썼었지. 학생들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으려 했지. 일단은 오로지 내 잘못이니 나를 원망하고 중국인들과 충돌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지. 그 때 용기를 내어줘서 고마워. 너도 20대 후반의 어린 여자아이에 불과했는데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를 발휘했어. 무사히 그 일을 수행하느라 애썼던 너가 자랑스러워. 그 보이지 않는 고독의 시간을 잘 삼켜줘서 고마워.
Q2. 이렇게 살아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쓴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과 의도를 기록해봅니다. 그 사건에 들어가 내가 느꼈던 감정과 그때 의도를 알아주세요.
A2. 누구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창의적인 생각으로 그들의 중국어 학습을 비약적으로 올렸다. 그 곳에서의 학습이 계기가 되어 인생의 대전환점을 맞은 학생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가 이어지지 않았다는 게 씁쓸하다. 스스로에게 떳떳했으면 되었다고 애써 자위했지만 지금도 서운하고 아프다. 자신들이 느끼는 불안을 엉뚱한 데 화풀이 한 꼴이 되어서 억울함도 크고 사람에 대한 실망감도 컸다.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하거나 유익이 덜어졌을 때 급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게 서글프고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픔을 돌볼 겨를 없이 그들의 안위를 위해 노력했어야 했던 내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Q3. 100% 나를 사랑하고 수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괜찮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A3. 누구에게도 기승전결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위로받지 못했던 경험을 어딘가에서 보상받고 싶은 심경이 되어 더더욱 사람에게 집착했었던 듯하다. 겉으로는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나 내면의 나는 늘 사람들의 인정에 목말라하고 거절당하지 않으려 애쓰는 꼴이 되었다. 건강한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타인의 기색을 살피고 눈치보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었다. 일정한 패턴이 자리하고 있었고 언제나 뒤통수를 맞는 역할을 자임하게 되었었다. 내가 나를 충분히 안아주지 않아서 외롭고 외로웠던 내면아이는 외부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다. 이제 충분하다고, 이제 네가 너를 사랑하는 일로도 충분하다고 안심시켜야 하기에.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는 일이 두려운 게 아니라 자신에게 실망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고 깨우쳐 줘야 하기에. 에고가 치는 장난에 더 이상 속지 말라고.
Q4.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선택하고 그 많은 사건과 시간을 거쳐서 예까지 온 소중한 그 분에게 “참 애썼다”고 짧은 편지를 쓰라.
A4. 원정아. 지금 한참 서울의 어느 골목 어귀를 돌면서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겠지? 욱씬대는 손목을 달래가면서 다음 목적지에 나를 택배물을 분 단위로 체크하고 있으리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정신없이 도노라면 차라리 잡념이 안 생겨서 좋을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달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른 아침, 땀을 흘린 몸을 씻어내며 ‘힘들다’라면서도 여지없이 출근시간이면 전열을 가다듬는 널 볼 때마다 애썼다는 말조차 미안하다. 뱉는 말보다 삼키는 말이 더 많아진다. 엄마의 불행한 운명을 알게 되었을 때, ‘울 엄마 울지 않게 해야지’라고 결심했던 나처럼 어쩌면 너도 그런 생각들로 시간을 견디는지도 모르겠다. 학교를 다니며 젊음을 만끽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히 물어볼 용기가 안 난다. 참 애쓴다라고 말해야 하는데 염치가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로만 대체가 되네. 미안하고 미안해.
Q5. 이렇게 여기까지 살아오느라 애쓴 그 사람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과 의도를 기록해봅니다.
A5. 엄마, 몸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는 엄마가 참 원망스러워. 아빠도 원망스럽고. 나 원래 어떤 것도 욕심내지 않잖아. 평범하기만 해도 되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원망이 올라와. 그런데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엄마는 죽을 뻔한 생명 여럿 살리느라 자신의 삶이 망가졌잖아. 늘 열심히 살았고 최선을 다 하잖아. 누구보다 폐 끼치기 싫어하는 엄마가 이 상황일 때는 어쩔 수 없는 일들도 있다는 거 인정해. 결핍을 모르고 자라서 크게 아쉬울 건 없어. 미래에 대해선 아직 알 수 없지만, 지금 내가 비참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 여전히 우리 힘으로 헤쳐 나가고 있으니 그것으로도 감사할 일이지. 엄마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는 건 더 힘들 거 같아. 난 별로 심각해지고 싶지 않아. 그러니 엄마가 건강하게 하고 싶은 일하며 자립할 수 있으면 좋겠어.
Q6. 100%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수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6. 고생 한 번 한 적 없고, 물질적으로도 궁핍을 느껴본 적이 없던 아이였다. 주위의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사며 누렸던 경험치들이 흘러간 과거의 이야기들이 되었다. 군대를 다녀와서 현실의 고통을 유산처럼 받아든 아이에게 삶의 체질을 바꾸라고 강요하게 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몸을 쓰는 일을 하면서 경제적 난관을 함께 돌파하고 있다. 적응 정도가 아니라 책임감을 다하는 태도에서 경건함마저 든다. 여전히 응석을 부려도 모자랄 나이에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아이가 믿음직스러우면서도 안쓰럽다. 자신이 열정을 부릴 곳을 못 찾아서 딱히 할 일이 없으니 돈이라도 벌어서 엄마를 돕는 거란다. 하지만 얼마든지 외면한 채 원망만 늘어놓을 수도 있을 텐데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선택을 하고 충실히 그 역할을 수행해내고 있다.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를 수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느라 애쓴다는 말조차 입에 담기 어렵다.
Q7. 1 ~ 6번까지 답을 쓰고 충분히 느낀 후 깨달은 것이나 명료화해진 것은 무엇인가? 나의 결심과 실행 계획은?
A7. 비단 이 일들만이 아니라 미처 쏟아내지 못한 불가항력적인 운명의 회오리가 많았다. 혹은 오작동한 에고의 오류들이 종종 인생을 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왔다. 이제 ‘참나’가 나를 언제나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또 어떻게 사랑이 내면에 머물며 그 상태를 지속시킬 수 있는지 힘을 얻기 시작한다. 과거의 상흔들에 딱지가 앉기 시작한다. 거뭇거뭇 착색이 된 채로 언제나 그 기억을 불러오기도 하겠으나 그런들 어떤가? 있던 사실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내면의 기쁨이 넘쳐 딱지가 앉았는지 떨어져나갔는지 주의를 기울일 틈이 없는 삶을 선언하면 되는 거 아닐까? 아니, 얼룩덜룩하면 또 어떤가? 그래도 여전히 삶은 계속되고 도전할 나날들은 또 오는데. 아이의 시간 역시 ‘헌신’일지 ‘희생’일지도 그의 몫이다. ‘상호책임’이라는 명제가 조금씩 잡힌다. 누구 때문에 사는 삶이 아니라 자신도 지금 ‘모르고’ 있을 따름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어떤 목적으로 삶을 살아야 하는지......그래서 아이에게도 삶을 주유하며 관찰해야 할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나와는 무관하게 그다움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날, 기꺼이 떠나 보낼 준비를 하면 된다. 신파조의 감상에 빠지지 않겠다. 오로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주어진 일들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겠다.
신기한 일이다. ‘에고’의 나와 거리두기를 하면 ‘참나’가 숨을 쉬게 되는 이치가. 센터링을 위한 훈련이 왜 필요한지 명징해진다. 오로지 기억하라. 나는 무엇을 근심하고 있는가? 지금 그 일이 일어났는가? 나는 나를 믿지 못하는가? 그렇지 않다는 걸 나는 잘 안다. 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언제나 순수한 내 의도를 여전히 훼손시키지 않으려 할 것이다. 사랑이 그렇게 하라고 한다는 걸 믿는다. 당장 오늘 강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더불어 진실한 삶 자체를 잘 나누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마치 다시는 못 볼 사람들처럼 주의를 기울이고 또 관심을 쏟을 테다. 나의 내면에는 사랑의 힘(心)이 넘친다. 애썼다, 에고여. 이제는 지금&여기에의 역동을 즐기자.
카라바조의 <Still life>
제 자리에 가만히 자리하고 있는 정물화는 뭣하러 그리나 아무 감흥이 일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무심코 일상 한 켠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새삼 고마워지는 거다. 특히 신산한 삶의 전장에서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고 날라치면 그저 가만히 그 자리에 지키고 있는 애들로 인해서 감동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 자리에서 자신의 운명을 소임을 묵묵히 해내는 그들은 소리없이 말한다. 그대로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고. 삶의 경구처럼 집에 하나씩 들여놓던 바니타스화. 오늘 이 그림이 나에게 다양한 비유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