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내 책상이 처음 생기던 날을 기억한다. 앉은뱅이 책상이긴 했지만 그 앞에 앉기만 해도 내가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여겨져서 기분이 좋았다. 무서운 언니는 자기 책상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늘 바닥에 엎드리거나 밥상 위에서 숙제를 하다가 공식적인 내 공간이 생기다니 어찌나 기쁘던지. 특히나 나만의 서랍을 갖는다는 것은 아주 은밀한 세계 하나가 내게 생긴다는 의미였다.
지극히 사적인 공간안에서 미래의 작가도, 화가도, 디자이너의 꿈이 자라고 있을지도 몰랐을 일. 연애사의 온상이기도 했을 테고. ‘나도 이제 비밀을 가질 자격이 되었다. 아마 브런치스토리를 기획한 이는 이런 향수를 가졌으리라. 불온하고 발칙한 것은 물론, 누구에게도 공개하고 싶지 않은 꽁꽁 싸맨 마음이 웅크려있기 딱 좋다. 글을 써나가긴 했으나 여전한 두려움으로 발행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마냥 서랍에 담기만 할 뿐,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서랍에 차곡차곡 글을 쌓아갔지만 꺼내질 못하고 머뭇머뭇. 아예 모른 척하고 싶어서 얼마간의 시간을 두었다. 일정한 거리는 언제나 유효하다. 이후 다시 꺼내서 읽어보니 발행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글을 공유했더라면 핀이 나간 사람이라고 비난받기 딱 좋았다. 분노와 자기혐오, 격정이 들끓고 있었다. 유예한 시간이 객관적인 눈을 뜨게 했다. 서랍 기능을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 압도된 감정에서 잠시 물러날 수 있는 피난처로.
부끄러울 글은 그렇담 쓰여지지 않아야 하는 걸까? 단연코 아니다. 서랍에 자물쇠를 채워 세상에 내놓지는 않을지언정 어떻게든 토해져야한다. 일단은 그게 무엇이 되었건 무조건 끄집어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 글판을 잠시 감정 쓰레기통으로 대치시킬지언정 온전하게 솔직하게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믿음이 있으니 난 무조건 휘갈기며 써댔다. 자주 멈춰서야 했고, 눈물을 훔쳐야했으며, 콧물을 풀어내야 했다. 속이 시원해져갔다.
브런치 가입하기 전 2017년 말, 삶에 호된 철퇴를 맞고 죽고 싶었다. 자동차 핸들을 잡으면 벽을 향해 돌진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자신에 대한 극혐과 절망으로 자주 넋을 잃었다. 겨우 버티다가 생일날에 맞춰 양평으로 이사했다. 일종의 의식처럼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열망을 담았다. 이사오고 난 후, 모든 걸 중지하고 내내 바람을 느끼고 별을 헤고, 나비의 날갯짓만 쳐다봤다. 내 글의 결이 조금씩 편안해져갔다.
겨울밤이 깊어가면서 압도 당했던 격분의 회오리에서 빠져나왔다. 감정과 나를 동일시하던 습에서 조금씩 떨어져 나오면서 나를 돌보는 일에 열중했다.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의 순간이 길어지면서 이제 세상 속으로 걸어나와도 되겠다 싶었다. 브런치의 서랍에 유예되었던 내글들을 끄집어내어 볕에 말리기 시작했다. 단 한 명의 독자라도 힘을 얻어가는 사람이 있길 바랬고, 글을 꾸준히 쓸 수 있음에 감사했다.
브런치의 서랍이 '구원으로서의 글쓰기'를 기꺼이 열어줬다. 가입 후 모든 것이 낯설 때는 성마른 글을 내놓기보다 서랍에 잠시 묵혔다가 퇴고에 퇴고를 거쳐서 발행하는 편이 낫다. 서랍에 간직한 글들이 좀 더 나은 글로 데려다주고, 좀 더 객관적이고 성찰적 눈을 갖게 한다. 프로필에 들어갈 자기 소개글, 글쓰기 방향, 목차 등 서랍을 거쳐서 내놓은 습관을 들이자. 그렇다고 나만큼 하세월 없이 늘어져 있어서는 안되지만ᆢ
한참 서랍을 열어보지 않았다. 묵힌 이야기들 안에서 또 어떤 사건을 만날까? 그때는 그것때문에 죽을 것 같았던 그 일이 지금도 여전할까? 그럴 리가. 모든 건 지나간다. 그래서도 지금 펄떡이는 사유를 지금 당장 써라. 아직은 내놓을 용기를 못내더라도 서랍이라는 보온 장치가 기다린다. 여전히 서랍은 잡다하지만 내게는 소중한 보물창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