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 VS 코치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이는 친교형 모임에 가면 빠지지 않고 받는 질문이 있다.
"코치요? 어떤 종목을 코칭하나요?"
키도 크고 덩치가 있는 내가 운동 관련 트레이너 역의 코치인가보다고 앞선 짐작을 하시는 분들이 꼭 있다. 카리스마가 느껴진다는 등, 말머리를 잘못 돌렸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서 코칭과 코치라는 단어는 대중성을 띤 상황도 아니고, 코칭 현장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우리나라에 코칭이 유입된 경로가 거의 기업체를 근간으로 한다. 임원들의 리더십 함양이나 개인과 조직의 성과 관리 같은 비즈니스 향상을 위해 도입되었다. 세계 유수 기업들은 '코칭 문화'가 아주 자연스럽고 경영자들은 누구에게나 코치가 필요하다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평적 리더십, MZ 세대 직원들에 대한 대응등이 어려워지면서 코칭 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한국의 코칭 역사는 20여 년이 되었다. ICF(국제코칭연맹)의 지부 성격으로 있다가 2003년 한국코치협회가 발족되었고, ICF 코리아 챕터 역시 코리아 챕터와 서울 챕터가 통합되면서 지금의 ICF 코리아라는 명칭으로 역시 20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ICF 전 세계에 등록되어 있는 코치는 143개국 49,000여 명이다. 한국코치협회는 2022년 12월 기준, 등록 코치 수가 12,191명이며, 코치 인증과 코칭 프로그램 및 대학의 코칭 커리큘럼 인증 등의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도미향 외 4인 공저 <최신 코칭학 개론> 요약 정리)
LG 그룹이 2002년에 코칭 교육을 첫 도입한 이후, SK, 삼성전자, 현대 오일 뱅크, KT&G 등에서 임원코칭과 직원 조직문화를 위한 팀, 그룹 코칭 등을 도입해 기업 문화 환경을 바꾸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국내의 28개 대학의 학과에서 코칭 관련 학과가 운영되고 있다. 석박사 과정을 운영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고, 자연스레 코칭 관련 학회의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일반인들은 코칭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권을 중심으로 승객이 원하는 장소로 이동시켜주는 마차인 콕시, 콪지, 코치 등의 어원을 갖고 있다. 이를 영국에서 1880년 경 운동에 적용하여 운동선수를 훈련하는 교사를 이르는 말로 코쳐(Coacher)라고 불렀다. 1974년 미국의 티머시 골웨이가 <테니스 이너게임>을 써서 현대 코칭의 기원을 세우는 데 역할을 했다. '자신의 실체, 즉 타고나 잠재역량을 발휘하기 위한 내부의 게임' 원리를 적용했다. 학습, 성과관리, 조직 경영 등에 적용시키며 코칭의 필요성과 효과성을 입증했다.
코칭은 고객의 이슈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이슈를 들고 온 고객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는 일이다. 몸을 기울이고 경청하고 지지하며 고객이 안전한 상태에서 스스로 자기가 원하는 곳, 혹은 그런 상태로 가기 위한 탐색과정을 거친다. '고객은 이미 온전하고, 자기 안에 자원을 다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성을 가진 존재이다'를 전제로 하기에 코치는 오직 고객을 위해서 존재하는 양, 그의 영감을 일으켜 일깨우도록 고객 중심의 사고를 가진다. 공명의 장에서 에너지를 교환하고, 지지하고 인정함으로써 동기에 기름을 붓는 자이다. 그래서 나는 '코칭은 사랑 체험이다'라고까지 말한다.
다소 과장이 섞인 표현이라고도 하겠으나 코칭을 하면 할수록, 존재론적 사랑의 힘을 믿게 된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인류애적 사랑, 데리다의 사람을 향해 웃음짓는 미소, 레비나스의 진정한 환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겠다. 코치들이 인삿말에서 "전 코칭과 여전히 사랑에 빠져 있습니다."라고 표현해도 놀라지 않는다. 외려 그게 전제 아니냐는 반응마저 보인다.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지금-여기의 가슴 뛰는 순간을 건너다니는 감동을 어찌 쉬이 표현하겠는가?
나를 긍정하고 사랑하게 되는 일로도 가슴 벅찬데, 고객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통찰을 얻게 되니 더없이 유익하다. 타인 위에 군림하는 권력으로서의 FORCE가 아니라 내면의 POWER를 이끌어 고객이 원하는 상태 혹은 원하는 곳으로 가게 하는 일. 고객 스스로 갈 길을 선택하고 방법을 창안하고, 내적 자원으로 실행력을 높여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빚어가는 일. 그 현장을 실시간으로 경험하고 감동하며 공명하는 일이 코치가 하는 일이다.
운동장에서 상대를 죽여야만 내가 사는 비정한 현실을 조장하는 트레이너가 아니라, 함께 탐색하고 질문하고 쌓아가며 자신의 가능성을 시도하도록 응원하는 코치. 고함이 난무하고 파이팅을 외치는 자리가 아니라 울림과 파장이 흐르게 하는 장을 형성하기에 코치의 음성은 더없이 다정하다. 심지어 최소한의 질문만으로도 고객의 사색을 돕고, 가만한 침묵으로 고객의 감정을 지지한다. 고객의 말을 되비춰주어 고객 스스로 자신이 어떤 상태, 어떤 감정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게 한다.
상담도, 트레이닝도 다 전문가의 견해가 깊숙이 개입되어 고객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어떻게 잘 주느냐가 역량이 되지만, 코치는 고객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하는 사람이라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수 코치님들일수록 말 몇 마디 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으로도 거액의 코칭비를 받고 감사하다는 존경과 인사를 듣는다. 나는 아직 고수 코치님들의 경지는 쳐다보지도 못하지만, 적어도 나 한사람을 구제한 구체적인 이력들이 있다.
변신에 가까운 나의 변화만으로도 코칭의 효과성을 생각할 수 있다. 1,000여 시간동안 만났던 내 고객들이 이미 그 증거로서 좀 더 이상적으로 바라고 원하던 '나'의 모습에 가까워진 채, 셀프 코칭으로 다시 성장하고 있다. 코치가 되기 전, 과거의 이력에서도 나는 거의 누군가를 교육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운이 좋았던 것도 맞겠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비교적 '코치의 언어'를 태생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게 맞다. 그래서 학생들이 오래도록 따랐으며 혼이 나도 노여워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질문을 해오면 나는 거의 습관적으로, 그 생각은 왜 하게 되었는지, 이렇게 질문하기까지 너의 생각은 어디까지 정리가 되었는지, 지금 상태에서 어떻게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하면 좋겠다고 아이디어가 있는지 되물어주는 작업을 했다. 정말 성미가 급한 녀석이나 "아, 몰라요. 몰라. 빨리 말해주세요."라고 채근하지, 대부분은 나의 되물음에 얼떨결에 답하다가 통찰을 일으키며 스스로 답을 찾는 일을 많이 만났다. 모든 자원은 그들 내부에 있으며 자신만한 자기 전문가가 따로 없다는 것. 그저 시간을 주고 기다릴 수 있기만 하다면야.
고객 중심의 마인드로 판단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는 적극적 경청의 자세. 코치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코치다움의 마인드셋이다. 지금 이순간, 고객과 함께 춤 출 준비가 되어 있는지 매무새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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