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한국코치협회 KSC(Korea Supervision Coach)
"야~, KSC가 하는 말은 역시 정리가 잘 되어 있네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KSC가 될 수 있나요?"
불쑥 질문이 날아들었다. 일요일 새벽마다 철학을 공부하는 코치들 모임의 책거리 현장에서다. 작년 12월 중순, 합격자 발표가 나고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단연 화제에 올랐다. 모임 리더가 모임 내 합격한 두 명에게 축하를 겸하는 자리라고 공표한 차, 이런 대화가 자연스러웠다. 현장에는 이미 KSC인 분들이 3분, 그 타이틀만 없지 이미 코칭 경력이 10년 이상의 중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년차로 치자면 나는 한참 새내기여서 업계에서는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 허걱, 이제 국어사전에 실린 단어이다)에 속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KSC의 위상을 실감하기도 하는 순간이었다.
"저 미친 듯이 했어요. 그러게요, 제가 비즈니스 기반이 아니다보니 코칭 아워를 채우는 일도 장난이 아니었어요."
"그렇죠. 비즈니스 기반이 아니면, 코칭 아워를 버디(동료 코치들끼리 상호 역량 강화를 위해 코칭으로 실습하는 일)로 채우려면......"
"아뇨, 전 KSC시험 대비하기 전까지 버디 코칭을 거의 해본 적이 없어요. 막상 KSC 시험 첫번째 떨어지면서 따로 시험용 공부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버디코칭으로 연습하기도 했습니다. 유료 고객을 찾아 자격 요건 800h 이상 맞추느라, 또 자격 요건의 교육 시간을 수강하고 학습하느라 미친 듯이 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요즘 코칭이 확산되면서 오로지 자격증을 따기 위한 목표로 단기간에 이뤄내는 일들을 이름이었다. 실제 현장에서 쌓은 코칭 아워가 아니라 시험 준비를 하면서 응시자들끼리 상호 실습 겸 코칭 아워를 쌓아가는 세태를 예상한 반응인 거다. 그러고보니 2019. 12. 21 코칭 첫 교육을 받은 날을 시작으로, 인증코치 KAC07146의 자격으로 6개월 여, 전문코치 KPC02588의 자격으로 3년 여를 지냈다. 최종 합격까지 만 4년이 소요되었으니 아주 단시간에 취득한 게 맞다. 2023년 1월 KSC 최종 번호가 00073번이었다. 혼자 생각으로 한국코치협회 20년 역사에 2023년 말이면 100인이 탄생되겠구나 싶었다.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 99인으로 마감이 되었다. 그 99인 안에 내가 들어있고.
여러사람들이 함께 하는 자리에 대화의 독점권을 차지할 수 없어서도 삼킨 말들이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KSC 취득은 상징성이 굉장했다. 2017년부터 7년간 이어진 지난한 분투기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기에.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인간에 대한 절망적인 불신, 경제적 궁핍, 자신에 대한 극혐으로 널을 뛰던 감정. 운전대를 잡으면 그냥 벽을 향해 돌진하고 싶은 충동을 이겨야 해서 외출조차 꺼렸다.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을지 끝간 데 없는 절망의 시간 안에서 처음 2-3년은 진성리더십과 인권을 만나 '나는 누구이며,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탐구했다. 타인에 대한 원망과 억울함이 급기야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번지면서 삶을 놓고 싶었지만 학습하는 죄인으로 살면서 스스로를 구제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나에 대한 자기 인식으로 바닥에 엎딘, 아니 땅속으로 꺼졌던 마음을 겨우 일으켰다. 그제야 다시 타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타인도 살릴 수 있을 일은 무엇이 있을까? 나의 진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인문학, 인권, 리더십으로 강의를 하고는 있었으나 강사의 삶이 고달프기도 했고, 좀 더 뿌리내린 정체성이 필요했다. 평생 나를 관통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삶의 타임라인을 채워가다보니 일관되게 내가 잘 하고 좋아하던 영역이 있었다. 타인의 성장을 북돋우고 변화를 이끌고 창의적인 제안을 하는 일. 서브 잡으로 하던 코칭을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결심이 올라왔다. 멘토 코치님의 권유로 공인 코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실전에서 다진 세월이 있지만 일정 형식의 제도권 안에서 새로 정립하는 코칭을 위해서 이전의 습이나 인식들을 재정비해나갔다.
코칭 아워 1,100 여 H(자격 기준 800시간 이상), ACPK 인증프로그램 수강 331.5H(자격 기준 150시간 이상), 이 외 역량강화를 위한 숱한 자격유지보수 프로그램, 배경지식이 되는 철학, 심리, 리더십 관련 강의를 듣고 학습하고 궁구한 숨은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금전적, 시간적 투자가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공부하고도 '인간' 이해는 밑도 끝도 없는 난공불락의 영역이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부터 치열함이 있었다. 내면의 의식/무의식 속 생각, 감정, 욕구, 의도를 드러내고 헤아리는 일부터 시작하여 자기 수련의 의식으로 명상을 하고 학습을 이어갔다. 배운 것을 코칭 현장에 적용하여 어떻게 구현되는지 임상을 거쳐갔다. N분의 경우 수와 N분의 계획, N분의 실행이 다 다르게 나타나는 현장은 펄떡펄떡 살아있음이었다.
인생 최악의 위기를 겪던 시기라 어떤 교육보다 고가인 교육비를 마련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았다. 부끄럽게도 아들이 매월 200만원씩 지원해주지 않았으면 애당초 꿈도 못 꿀 상황이었다. 매월 지불해야 하는 대출 이자, 생활비, 교육비까지 감당하기에 현실은 언제나 혹독했다. 코칭업계는 기업 임원 출신이거나 HR 부서를 담당하다가 코치로 유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경제적 기반이 바탕이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이 도전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사치인 듯도 해서 중간에 그만 둘까도 생각했지만, 사람을 변혁시키는 근원적인 행위인 코칭은 절대 놓을 수 없는 삶의 철학이자 존재 이유가 되어버렸다. 나 자신을 비롯해 내가 만나는 고객들이 변신해가는 과정을 보면 속세에서 하는 수행이 되기도 했고, 가능성의 문이기도 했다.
비구조적이고 비계획적 비체계화, 목표지향지수가 거의 0에 가까웠던 내가 코칭을 하면서 큰 변화가 있었다. 삶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는 물론이거니와 목표지향성이 생기기 시작한 것. 삶의 위기에서 무너져 내렸던 자존감을 회복한 것, 비전을 품고 목표를 가지기 시작한 것, 목표 수행을 통해 얻는 성취감은 곧장 크고 작은 성공 경험으로 축적되어갔다. 전인적이며, 자기 안에 해답을 다 갖고 있고, 지금 여기에서 춤춘다는 코액티브 코칭 철학이 의미하는 바를 나를 실험대에 올려 끊임없이 증명하였다. 카페를 열어 재기를 시도해보기도 했으나 코로나 이슈를 견디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어도 마음은 단단해졌다. 실패는 또 하나의 피드백일 뿐이었다. 결핍 마인드로 염려와 걱정을 앞세우던 말습관도 바뀌고, 웬만한 상황에서는 유머를 잃지 않으려는 여유가 생겨나 풍요를 선택하는 일이 더 쉬워져갔다.
경제적 현실은 단박에 바꿀 수는 없지만 이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나 태도가 완연히 달라졌다. 목표를 정하고 하나씩 실현해가면서 자기 확신이 커져갔다. 셀프코칭은 물론, 상위 코치나 동료 코치들에게 코칭 받으면서 스스로 방안을 찾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일들이 눈에 잡히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코치가 필요하다 했던 말을 체감했다. 2023년은 1월부터 새벽기상을 하겠다 목표를 세우면서 요가를 다시 하고, 아침 운동을 나가기도 했다. 기간을 정하고 하는 일은 더욱 잘 지키고 있었다. 100일간 매일 글쓰기를 하면서 브런치스토리를 다시 살려뒀다. 마라톤대회를 나가보고, 브런치스토리에 올린 21일치 글을 묶어 전자책 <나도 된다, 브런치스토리 작가>도 발간했다. 지인들과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습관을 100일 동안 인증하는 챌린지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시즌2에 들어가서 일상적인 일로 글쓰기를 루틴화했다.
일요일 새벽 6시, 철학 스터디 모임을 1년 6개월 간 한번도 빠지지 않고 이어가고. 지금은 3주 글쓰기 챌린지 프로그램을 유료화해서 운영하고 있다. 올빼미로 살아온 사람이 새벽 루틴을 이어가서 얼리버드가 되다니 있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 진성리더십 도반들과 들뢰즈, 알랭 바디유, 데리다, 켄 윌버 등속의 철학자를 중심으로 하는 독서 토론회를 참여하거나 리딩하고 있다. 곧 양질의 유료 독서 모임회를 기획 중이다. 그 외에도 NLP로 세명의 분야가 다른 박사들과 심층 스터디하면서 전제부터 샅샅이 삶에서 코칭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임상 실험 중이다. 방학을 맞아서 중등 교사들이 중심이 된 독서모임에 초대받아 <논증의 탄생>으로 토론을 이어간다. 쓸모로 따지자면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이런 일들이 나로 살게 하는 힘이 되었고 KSC를 취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KSC 취득은 내게 변신이 가능하게 한 회복탄력성의 상징이 되었다.
암담했던 터널 속에서 한줄기 빛을 잃지 않았고, '그냥 너로 족하다'며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지인들의 존재론적 환대를 통해 나는 거듭났다. 결핍에 주목하기보다 풍요를 선택하고, 걱정을 앞세우기보다 일단 해보자는 시도를 얘기하고, 욕심을 품기보다 가능성에 기뻐하며,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나대로의 성장에 관심갖는다. 쓰러져서 옴짝달싹 못하던 나를 일으킨 스스로를 축하하고, 그 잠재력과 가능성을 믿어준 덕에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나의 태도를 바꾸고, 그 태도에 기반한 말이 힘을 만들고, 삶을 임하는 자세를 바꿔놓아 주체적인 나로 서게 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주체성을 가진 나로 내 삶을 디자인해가는 삶의 저자(Author)가 되어 진실하고 힘있는 나(Authentic-Self)로 생의 한가운데 뿌리를 내린다.
나를 실험대에 올려두고, 또 하나의 나인 코치가 선택했던 '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Yoy Do You."
참된 나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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