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을 재정의하다
ICF(국제코칭연맹)의 우리나라 최초 MCC 박창규 코치님과 1년 MBA 과정을 이행 중이다. 운 좋게도 원래 예정에 없었던 '역량3: 합의를 도출하고 유지한다'에 대한 특별 강의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멀리는 전남 영광에서, 경남 진주에서 일요일을 밝힌 12기 동기들. 박창규 코치님의 저서 <임파워링하라 : 우리 안의 파워를 끌어내라!> 중에서 주제와 목표를 선명히 드러내는 특훈이 강행된 셈이다.
선형의 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셨는지 공간을 활용한 임파워링 코칭을 시연해주셨다. 코치와 고객이 포커싱이 잘 된 주제가 향후 결과를 어떻게 이끄는지 전체 프로세스 안에서 체험한다. 동시에, 공간을 이동하면 또 어떤 역동을 느끼는지 체화하는 과정이었다. 평면적 공간 이동 뿐만 아니라 모서리의 의자 위에 올라가서 전체를 조망할 때 관점은 또 어떻게 변화하는지 느껴보았다.
위치를 바꾸고 입장을 바꾸면 사람의 의식은 신기하게도 새로운 생각과 감정을 느낀다. 지금-여기에 집중하고 몰입하면서 잠자리 눈을 가진다. 붕새처럼 높은 곳에서 전제 그림을 조망하는 메타뷰를 작동하거나 매미처럼 눈앞에 마주하며 정밀한 알아차림으로 깊이를 더한다. 주제 합의를 위한 포커싱의 단계에서 고객은 이미 그저 문제만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자기 삶에서 성장을 경험하고 싶어하는 가능성의 존재들이다.
자신의 여러 사안들 중에 무엇을 우선 순위로 주제로 삼을 것인지, 자신의 삶과 정렬시켜 원하는 상태를 만들 것인지를 골몰하며 주제탐색을 한다. 코치님은 수시로 고객에게 지금의 상태는 어떠한지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물었다. 선형의 대화로만 진행할 때와 공간을 쓰면서 체화되는 과정은 완전히 다르다. 바닥에 지금의 상태를 표시하는 블록들을 하나하나 펼쳐가면 고객은 공간 사이를 오가고 머물면서 에너지의 흐름이 달라짐을 느낀다.
아주 간단한 추임새만으로도 고객에게 지지와 인정을 하고 계신 코치님은 고수의 향기가 흠씬 풍긴다. 성찰력이 뛰어난 고객에게는 고객이 사용한 키워드를 반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고객이 주제를 잡을 때 스치듯 말했던 단어인 '용기'를 코치는 서랍에 잘 간직하고 있었다. 방안 탐색하고 실행 계획을 세워가는 고객이 장애 요소 앞에서 머뭇댈 때, 코치는 마법같은 단어를 떠올리게 했는데 고객은 이내 충전한 느낌을 받았다
"아까 용기를 말씀하셨는데 지금의 이 상황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요?"
"맞아요. 전 주제를 좁혀나갈 때 이미 제 마음 속에 그려지는 목표의 결과가 있었어요. 결국은 예상되는 장애물을 잘 환대할 수 있도록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 용기를 내고 싶어서 지지가 필요했나봐요."
고객에게 전적으로 온몸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인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체계가 잘 잡힌 성찰은 고객 스스로 더욱 큰 존재로 느끼게 하고 잠재성을 확 끌어낼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포커싱을 거친 주제의 명료화, 주제를 바라보는 제3의 포지션, 선명한 목표 설정,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는 의미 확장, 가능성을 실현할 실마리를 찾는 대안 탐색, 그 중에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 실행력을 높이려는 체계를 잡아가기.
자연스러운 프로세스의 흐름이 몸으로 느껴진다. 굳이 질문을 외울 필요도 없었고, 고객의 언어에서 실마리를 풀어 맥락대로 흐르면 될 일이었다. 다시 자기성찰로 자신의 정체성과 삶에 통합시키는 과정을 마무리로 깔끔하게 체험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의 윤곽이 더더욱 선명해져감을 느끼면서 장면 장면을 복기해나갔다.
코칭이 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최대한 쉬운 말로 설명하기 위한 여러 버전이 있었는데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그 대답이 달라진다. 전문성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한국코치협회나 ICF, 혹은 코액티브 코칭을 기준으로 자세히 설명을 한다. 코칭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호기심으로 다가서는 이들에게는 "코칭은 사랑 체험이에요."라고 감히 말한다.
사랑의 정의가 다양할 수 있지만, 내가 여기에서 얘기하는 '사랑'이란 아무 조건없이 생명가진 이들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와 관심을 말한다. 코칭이 진행되는 순간만이라도 고객은 전적인 수용과 존중을 느껴보는 시간이라고 정의한다. 실제 그런 무차별적이고 무조건적 수용을 받아보는 고객들은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새삼 발견한다. 모두를 일반화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고객을 맞고 임하는 자세는 이러하다.
나는 어려서부터 나와 관계를 맺는 이들과는 서로의 '격(格)'을 높일 수 있길 바랬다. 함께 시간을 나누고 공간을 나누면서 아무 변화가 없는 소모적인 관계라면 금세 피로감을 느낀다. 학구적으로 파지는 않더라도, 놀러 가는 상황에서도 의미 있는 문화 활동이 가미가 되어야 했다. 만남에서도 시를 읽을 수 있는 소스를 가져가거나 그림을 보고 얘기하는 등 그 너머의 지향점을 늘 가지고 싶어했다.
나의 이런 지향점이 코칭을 하면서 정리가 되었다. 내가 오래도록 인간에 대해 가진 Compassion(긍휼감)이 가장 잘 발현되는 모습은, 그를 '그의 격'으로 살게 하는 일. 그리고 성장과 성숙을 향해 가는 본성을 잊지 않도록 자극을 주는 것이었다. 이런 지향점 덕분이었는지 내 대화법은 독특했다. 질문해오는 이에게 재질문을 하면서 관점을 달리 하도록도 했고, 수시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의도인지 묻길 잘 했다.
서로의 격을 높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은 코칭에서 얘기하는 온전한 '나'로 살기이자, 그 온전한 나는 이미 자신 안에 가능성과 잠재성이라는 자원을 다 갖고 있으며, 지금 여기에서 존재의 춤을 출 수 있는 존재라는 전제를 가졌다. 그래서 성장할 수 있고 성숙해가는 존재임을 믿었다. 가르쳐줘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너 안에 있는 걸 발견하라고 자극 주기를 좋아했다.
오늘 코칭 워크숍을 마치면서 한 줄 정리로 "코칭 과정 자체가 성장 경험이다."라고 적고 있었다. 코칭으로 고객의 상태를 성장의 문에 데려가지 못한다면 코칭한 것이라 여길 수 있는지를 묻던 멘토코치님. 나는 답한다. "그렇습니다. 코칭 세션 프로세스 상에서도 고객의 성장을 이끌지 못하는 대화라면 일반 대화와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상태란 분명히 지금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끊임없이 다른 차원에 대해 자극하고 고객이 스스로 갈 수 있도록 성숙해가는 것이 코치의 모습입니다."
"코칭은 사랑 체험이다"라는 내 정의 위에 다시 하나를 더한다. "코칭은 과정 자체가 성장 경험이다."
나는 또 어떤 성장과 성숙을 통해서 나만의 코칭 정의를 내리게 될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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