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의 사랑과 무인 세탁소의 해변
주변에서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나는 먼저
그 사람의 취향을 묻는다.
사람 냄새나는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범죄 추리 소설에 관심이 있는지,
SF나 판타지처럼 상상력이
확장되는 이야기에 끌리는지,
아니면 조금 난해하더라도
작품성이 높은 소설을 찾고 있는지.
대략 이 네 가지 기준을 두고
책을 추천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소설을 좋아하는가.
나는 위 네 가지를
골고루 읽는다.
이렇게 읽다 보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장과 분위기,
그리고 이야기를 바라보는 태도가
내 결과 맞는 작가들.
오늘은
수많은 한국 소설가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두 작가와
그들의 작품 중 꼭 읽었으면 하는
작품을 소개해보고 싶다.
정세랑,
상상력이 뛰어난,
재치 있는 이야기꾼.
현실 속 이야기와
상상의 세계가 절묘하게 섞여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이다.
소설의 소재도 독특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내는 구조가 탄탄한 작가!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힌다.
정세랑의 작품 중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소설,
바로
『지구에서 한아뿐』이다.
어떤 이야기인가요?
이 소설은
저탄소 생활을 실천하는
의류 리폼 디자이너 한아의 이야기이다.
한아는 작은 가게에서
누군가의 옷을 고치며 살아간다.
지구를 아끼는 태도가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반면
오랜 연인 경민은
그녀와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진 인물이다.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때로는 무심한 그.
그러던 어느 날,
혼자서 캐나다 여행을 다녀온 경민이
달라졌다.
사라진 흉터,
달라진 식성,
전보다 더 다정해진 태도.
그리고 결국 그는 고백한다.
자신은
그녀가 알던 경민이 아니라
2만 광년을 달려 지구에 온 존재라고.
설정만 들으면 낯설다.
남자친구의 몸에 외계인이 들어왔다니?
몸의 절반이 광물로 이루어진 존재가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우주를 건너왔다는 고백.
기억이 같으면 같은 사람일까?
모습이 같으면 충분할까?
아니면 나를 향한 태도가 더 중요한 걸까?
이 소설을 추천하는 이유
첫째, 사랑의 기준을 다시 묻는다.
외계인과의 사랑이라는 설정은
처음엔 엉뚱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사랑이란
정체성의 문제일까,
아니면 선택의 문제일까.
내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이
아니라는 고백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여전히 “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억이 같다면 충분한 걸까.
모습이 같다면 괜찮은 걸까.
아니면 나를 향한 태도와 마음이 더 중요한 걸까.
이 소설은 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그 질문을 조용히 남긴다.
읽다 보면
나 역시 쉽게
단정할 수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래서 더 오래 생각하게 된다.
둘째, 엉뚱한 설정인데도 따뜻하다.
남자친구의 몸에
외계인이 들어온다는 설정.
솔직히 말하면 조금 황당하다.
그런데 그 외계인의 사랑이
이상하게도 참 다정하다.
한아를 이해하려 애쓰고,
그녀가 지켜온 삶의 태도를 존중한다.
우주를 건너왔다는 과장된 설정보다
그 다정한 태도가 더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사랑은
비현실적인데도 설득력이 있다.
엉뚱한 이야기인데
읽는 동안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셋째, 재미있는데 사회적 문제를 품고 있다.
이 소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자주 외면하게 되는
사회 문제를 소재로 삼는다.
탄소 배출, 저탄소 생활,
소비의 방식 같은 이야기들.
중요하지만
자칫하면 무겁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 문제를 앞세워 주장하지 않는다.
사랑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
환경을 지키는 삶이
거창한 운동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상이고 태도로 그려진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아, 나도 조금은 생각해 봐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남는다.
무겁게 경고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인식하게 만드는 힘.
사회 문제를 소재로 삼았지만
빳빳하지 않게,
재미있게,
이야기답게 풀어냈다.
조해진,
우리 주변 인물들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작가.
조해진의 작품에는
우리 사회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노동자, 여성,
가난한 사람들, 동성애자처럼
쉽게 ‘약자’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사람들.
그런데 이 작가는
그들을 드라마틱하게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바라본다.
타인의 아픔을
쉽게 이해했다고 말하지 않고,
섣불리 위로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 아픔을
한 사람의 삶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나는
조해진의 소설을 읽고 나면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게 된다.
최근에 읽은
『여름밤 해변의 무무 씨』 도
그런 조해진의 시선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어떤 이야기인가요?
이 소설은
인권센터에서 일하는 활동가 김은희의 이야기다.
은희는 장애인과 미혼모를 지원하고,
빈곤 문제를 다루며 노숙인을 돕는다.
제도권 바깥에서 가난과 불평등의 구조를
오랫동안 고민해 온 인물이다.
동시에 그는 환자이기도 하다.
2년간 항암 치료를 견뎌냈지만
암이 재발했고,
요양병원으로 향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집을 비우게 된 은희는
동료 활동가 동준의 소개로
함수연을 만난다.
집에 머무르며 고양이들을 돌봐줄 사람.
잠시 스쳐 갈 인연일 수도 있었던 수연에게
은희는 자신의 연인,
한상무, ‘무무 씨’의 이야기를 건네고 싶어진다.
공장에서 일하다 병을 얻고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애썼던 사람.
그리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연인.
은희와 무무 씨는
무인 세탁소를 해변처럼 상상하며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누구에게나 평범한 공간이
그들에게는 바닷바람이 부는 장소였다.
이야기는
은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수연이 알게 되는 두 사람의 사연을
번갈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추천하는 이유
첫째, 타인의 아픔을 바라보는 태도와 중년의 사랑.
이 소설은
‘타인의 아픔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은희는 사회적 약자를 돕는 활동가이지만
동시에 병을 앓는 1인 가구 여성이다.
돕는 사람이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 복합적인 위치가
이 인물을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
또한 이 소설 속 사랑은
젊은 연인의 서사가 아니다.
마흔 후반의 중년 여성과
삶의 무게를 함께 견뎌온 그 연인의 이야기이다.
화려하거나 격정적이지 않다.
대신 조용하고 단단하다.
암의 재발과 연인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사건이 등장하지만
소설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눈물을 짜내려 하지 않고
슬픔을 부풀리지 않는다.
그저 차분히 따라간다.
둘째, 인상 깊은 서사 구조.
소설 속 이야기는
은희의 이야기만 전개되지 않는다.
함수연이라는 인물이
그 사랑을 알게 되고,
그 기억을 이어받는다.
은희의 사랑은
타인의 기억 속으로 건너간다.
이 구조 덕분에
이 작품은 개인의 연애담을 넘어
공감과 연대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셋째, 무인 세탁소라는 공간 설정.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장소가
해변으로 변하는 순간,
공간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힘.
그 안에서 사랑은
조금 더 조용하고,
조금 더 오래 남는 감정이 된다.
이 소설은
격렬한 감동 대신
잔잔하지만 무게 있는 슬픔을 남긴다.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이야기.
그리고 누군가의 삶을
끝까지 바라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정세랑과 조해진.
한 사람은 상상력으로
사랑을 낯설게 만들고,
한 사람은 현실 속 인물들을 통해
사랑을 깊게 들여다본다.
한쪽은 유쾌하게 묻고,
다른 한쪽은 조용히 바라본다.
결은 다르지만
두 작가 모두
결국 사람을 이야기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타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갈 것인지.
가볍게 읽히지만 생각이 남는 소설과,
담담하게 읽히지만 마음이 깊어지는 소설.
이 두 사람의 작품을
함께 읽으면
사랑과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넓어진다.
그래서 나는
이 두 작가를 나란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한국 소설은
생각보다 가깝고,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도
부담 없이 읽히는 한국소설을
함께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