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쌀과 한국 쌀은 다르다
최근 각종 방송 및 신문에 현미에는 발암물질인 중금속 비소가 백미보다 많이 검출되니 조심하라는 기사가 나와 현미밥을 건강식으로 알고 있던 많은 분들의 우려가 있다 [1, 2].
비소(arsenic)는 중금속(heavy metal)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 금속과 비금속 사이의 특성을 가진 붕소, 규소, 셀레늄과 같은 준금속(metalloid)이다 [3].
비소는 토양(흙, soil)과 지하수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며 유기 비소와 무기 비소로 나뉜다. 유기 비소는 인체에서 빠르게 배출돼 문제가 안 되지만, 농약이나 살충제에 들어있는 무기 비소는 많은 양을 섭취하거나 오랜 기간 축적되면 발암 위험이 있다.
쌀은 자라면서 뿌리를 통해 토양에 존재하는 비소를 흡수한다. 비소는 지역에 따라 불균질하게 땅 속에 분포되어 있어 농약과 비료 사용, 산업 오염 등으로 오염된 지역에서 난 쌀에는 비소 함량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세계 경작지의 약 15%가 비소, 카드뮴, 납 등 한 종류 이상의 독성 중금속에 심각하게 오염됐다는 보고도 있다 [4].
토양의 중금속 오염은 제거가 어렵고 수십년 이상 지속된다. 오염된 지역에서 난 농작물은 일부 중금속을 포함하기에 체내로 유입되면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
토양에서 흡수된 비소는 쌀의 안쪽보다는 바깥층인 쌀겨(bran)에 더 많이 축적된다. 백미는 정제 과정을 거치며 쌀겨를 제거하기에 비소 농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현미 구조 상세 설명 -> https://brunch.co.kr/@mhsong21/41 )
최근(2025년 2월) 미시간 주립대학의 미국산 쌀 연구 결과, 백미보다 현미의 비소 함량이 더 높게 나왔는데, 현미의 무기 비소 평균 함량은 0.138mg/kg으로 백미(0.093mg/kg)보다 48.4% 더 높았다 [5].
쌀의 비소 함량은 지리적 위치에 따라 현저하게 다르다. 미국 내에서만도 최대 6-7배, 국가 간에는 최대 40배까지 차이가 난다 [5].
2018년 국립농업과학원의 연구에 의하면 현미와 백미의 무기 비소 평균 함량은 각각 0.11mg/kg 과 0.07mg/kg 이었다(*백미에도 무기 비소가 들어있다). 이들 함량은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식량기구(FAO)가 주관하는 식품기준 오염물질분과위원회(CCCF)의 기준인 현미 비소 함량 0.35mg/kg 보다 훨씬 안전한 수준이었다 [6].
2016년 미국 FDA 발표에 의하면 미국산 현미의 무기 비소 평균 함량은 0.15mg/kg 로 나와 한국산에 비해 약 36.4% 더 높았다 (아래도표) [7].
미국 남부 지역(특히 텍사스, 루이지에나, 아칸소)은 과거 면화 재배 시 사용된 비소계 농약(arsenical pesticides) 잔류물로 인해 토양에 비소가 많이 남아 있어, 캘리포니아 지역 쌀에 비해 비소 함량이 높다. 참고로 미국 쌀의 80%는 남부지역에서 생산된다 (아래도표) [8].
영국에서 조사한 미국 쌀의 비소 평균 함량은 0.25mg/kg 으로, 미국 쌀은 다른 나라 쌀에 비해 일반적으로 더 높은 비소 함량을 보였다 (아래도표) [8] .
우리나라는 쌀을 자급하고 있어 미국산 쌀을 수입해 먹지 않으니, 사실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재 WHO 등 국제기관에서 정한 무기 비소의 안전한 섭취량 기준은 없고, 발암 물질의 발암 가능성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니 가능한 노출량을 줄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완전히 노출을 피할 수는 없기에, 과거 WHO에서 정했던 무기 비소 주간 섭취 허용량 (Provisional Tolerable Weekly Intake, PTWI = 0.015 mg/kg bw/week)을 참고로 [9], 체중 60kg인 한국인이 하루 어느 정도의 현미밥 섭취까지 허용 범위에 들까? 를 추정해 보았다.
WHO 주간 허용량은 체중 1kg당 15µg/week. 체중 60kg이면 900µg/week.
하루로 환산하면 900/7 = 129µg/day -> 0.129mg/day.
한국산 현미에 든 무기 비소 함량은 평균 0.11mg/kg. 현미밥 한공기(220g)에 들어가는 현미(100g)에는 0.011mg 함유.
하루 허용량 0.129mg/day 를 0.011mg 으로 나누면 0.129/0.011 = 11.7
즉 11.7 공기 이상이면 허용량을 넘는다. 하루에 현미밥 11.7 공기를 먹을 수 있을까?
참고로만 생각하면 된다. 한국 쌀은 매우 안전한 식품이다.
2016년 하버드대학 발표에 의하면, 암이 없던 약 4만5천명의 남성과 약 16만명의 여성을 최대 26년간 추시 관찰하는 동안 약 3만1천건(남성 1만1천건, 여성 2만건)의 암이 발생했다. 암이 발생한 환자 중 주당 최소 5회 이상 쌀을 섭취한 분들을 주당 1회 미만 섭취한 분들과 비교하여 쌀이 암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전립선암, 유방암, 대장암, 직장암, 흑색종, 방광암, 신장암 및 폐암을 포함한 특정 부위의 암 발생에 유의미한 연관성은 없었다. 미국인이 장기간 쌀, 현미, 백미를 섭취하는 것은 암 발병 위험과 무관했다 [10].
비소가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지만, 쌀에 든 미량의 비소가 사람에게 해를 끼칠 정도는 아니다.
논란이 된 미시간 주립대학 연구의 저자들도 성인이 매일 쌀을 통해 섭취하는 비소 수치는 건강에 위험을 높일 만큼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5세 미만 어린이들은 체중당 식품 섭취량이 성인보다 많아 비소 같은 독성 물질에 취약하니, 다양한 곡물을 선택하는 등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있지만 "현미를 섭취하지 말라는 경고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11].
약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16세기 의사 파라셀수스는 “모든 약은 독이다. 용량이 독인지 아닌지를 결정한다(Dosis sola facit venenum)”라는 명언을 남겼다. 비소는 독성 물질이 맞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미로 섭취하는 비소는 매우 낮은 농도이기에 독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현미에 든 비소는 체내에 들어오면 간에서 대사되어 대부분 소변을 통해 배출된다. 간이나 신장 기능이 떨어진 환자인 경우 분해 및 배설 장애로 체내 축적이 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하지만, 건강한 사람인 경우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된다면, 아래와 같은 팁을 활용하기 바란다.
현미 속 비소는 피틴산과 마찬가지로 물에 쉽게 녹는 수용성(水溶性) 물질이다. (*피틴산 상세 설명 -> https://brunch.co.kr/@mhsong21/58 )
현미 양보다 4배 많은 물을 냄비에 붓고 끓인 후, 현미를 넣고 5분간 더 끓인다. 뜨거워진 이 물은 버린 다음 새 물(현미 양의 2배)을 넣고 밥을 하면 현미 속 무기 비소를 54% 줄일 수 있다(아래 그림) [12].
미리 물을 끓이는 과정이 번거롭다면, 현미 양보다 6배 많은 물을 붓고 1시간 동안 불린 후, 이 물은 버리고 현미 양보다 1.5배 많은 새 물을 붓고 밥을 하면 현미 속 비소를 35% 줄일 수 있다 [13].
현미에는 비타민, 미네랄, 식이섬유가 많이 함유된 쌀 바깥층인 쌀겨와 쌀눈이 포함되어 있기에, 이를 제거한 백미에 비해 훨씬 건강한 식품이다. 특히 백미보다 2배 많은 식이섬유는 당뇨병, 심장병, 고지혈증, 비만 및 각종 암 예방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4,15]. (*현미의 장점 5가지 -> https://brunch.co.kr/@mhsong21/41 ) )
식이섬유는 체내 중금속 배출에도 효과적이다.
카드뮴이나 납과 같은 중금속의 인체 노출은 생선이나 조개 등 해산물 섭취가 주요 원인이다. 일주일에 2회 이상 해산물을 섭취하는 성인 422명의 혈중 중금속 농도를 측정한 결과 통곡물, 과일, 채소 등 식이섬유가 많은 식품을 자주 섭취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혈액 속 중금속 수치가 낮았다. 식이섬유 섭취량이 10g 추가될 때마다 혈중 카드뮴과 납 수치는 각각 6.29% 및 5.35% 씩 낮아졌다 [16]. 이유는 인체가 소화할 수 없는 식이섬유가 중금속을 끌어당겨 흡착하기에, 장에서의 중금속 흡수가 줄고, 대변으로 배출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17].
현미에 미량의 비소가 존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비소는 지각, 토양, 지하수 등 자연계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ubiquitous) 원소이기 때문이다 [18]. 단 분포도는 각 지역마다 다르기에 현미에 비소가 나왔다고 과잉 반응 할 필요는 없다. 다행히 우리나라 현미에 든 비소는 극소량이기에 더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식품에 든 미량의 독성물질 하나만 보고 확대 해석하는 이런 환원주의(reductionism)는 예전부터 끊임없이 사람들을 불안과 공포에 빠지게 하고 사회적 스트레스를 야기했다. (*참고로 환원주의란 전체를 잘게 쪼개 각 부분의 성질을 알면 전체를 알 수 있다고 믿는 패러다임으로, 너무 부분에 치중한 나머지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결점이 있다. 상세 설명 -> https://brunch.co.kr/@mhsong21/39 )
그러나 생물학적 관점으로 보면 이건 호르메시스(Hormesis)로 볼 수 있다.
호르메시스란 자극 또는 촉진을 뜻하며 해롭지 않은 수준의 가벼운 스트레스, '미량의 독소' 등 다양한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방법으로 생명체에 자극을 주면 면역기능 증진, 질병 감소, 수명 연장과 같은 유익한 효과가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호르몬과 같은 활동을 한다’는 의미로 호르메시스란 이름이 붙었다 [19].
호르메시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 책의 일독을 권한다.
따라서 비소 같은 유해한 물질이라도 소량이면, 인체에 좋은 호르메시스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니체는 말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현미 속 비소도 그 하나일 뿐이다.
*에필로그: 서울대 연구에 의하면, 한국인 식단에서 무기 비소 섭취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식품은 어패류(56.7%)가 가장 높았으며, 다음으로 곡류(19.7%), 해조류(12.4%), 채소류(6.5%) 순이었다 [20]. 즉, 쌀 보다 어패류에서 훨씬 더 많은 무기 비소를 섭취한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현미가 아니라 생선이나 조개류 등 해산물의 과도한 섭취가 아닐까?
참고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이 발표한 ‘2016 세계수산양식현황’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 1인당 연간 수산물 섭취량 58kg은 24개 주요국 중 세계 1위로, 노르웨이(53kg)나 일본(50kg)보다 많았다 [21]. (*2022년 Our World in Data 통계: 한국(56kg), 노르웨이(50kg), 일본(45kg) [22].)
참고문헌
1. YTN https://www.youtube.com/watch?v=ShqcT_Ovazs
2.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medical/2025/04/22/APLGQMIIRFFTJNYBZKR5IYOG3U/
3. 위키피디아 https://ko.wikipedia.org/wiki/%EC%A4%80%EA%B8%88%EC%86%8D
4. 동아사이언스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71222
5. CK Scott, F Wu. Arsenic content and exposure in brown rice compared to white rice in the United States. Risk Anal. 2025 Feb 28. doi: 10.1111/risa.70008.
6. DY Kim, JY Kim, KH Kim, et al. Arsenic species in husked and polished rice grains grown at the non-contaminated paddy soils in Korea. Journal of Applied Biological Chemistry 2018;61(4):391-395.
7. U.S. FDA, 2016b, Arsenic in Rice and Rice Products Risk Assessment Report, accessed online at https://www.fda.gov/media/96071/download
8. AA Meharg, E Adomaco, Y Lawgali, et al. Levels of arsenic in rice–literature review. Food Standards Agency Contract C, 2007, 101045.
9. FAO/WHO Expert Committee on Food Additives https://inchem.org/documents/jecfa/jeceval/jec_159.htm
10. R Zhang, X Zhang, K Wu, et al. Rice consumption and cancer incidence in US men and women. International journal of cancer 2016;138(3):555-564.
11. 아시아경제 https://www.asiae.co.kr/article/2025042209195072693
12. M Menon, W Dong, X Chen, et al. Improved rice cooking approach to maximise arsenic removal while preserving nutrient elements. 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 2021;755:143341.
13. MBC뉴스 https://imnews.imbc.com/replay/2020/nwtoday/article/6009357_32531.html
14. MM Kaczmarczyk, MJ Miller, GG Freund. The health benefits of dietary fiber: beyond the usual suspects of type 2 diabetes mellitus, cardiovascular disease and colon cancer. Metabolism 2012;61(8):1058-66.
15. Y He, B Wang, L Wen, et al. Effects of dietary fiber on human health. Food Science and Human Wellness 2022;11(1):1-10.
16. J Guo, LL Knol, X Yang, K Kong. Dietary fiber intake is inversely related to serum heavy metal concentrations among US adults consuming recommended amounts of seafood: NHANES 2013–2014. Food Frontiers 2022;3(1):142-149.
17. Z Raji, A Karim, A Karam, S Khalloufi. A review on the heavy metal adsorption capacity of dietary fibers derived from agro-based wastes: Opportunities and challenges for practical applications in the food industry. Trends in Food Science & Technology 2023;137:74-91.
18. S Majumder, P Banik. Geographical variation of arsenic distribution in paddy soil, rice and rice-based products: A meta-analytic approach and implications to human health. Journal of environmental management 2019;233:184-99.
19.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Hormesis
20. 서울대 대학원 논문 https://s-space.snu.ac.kr/handle/10371/154948
21. 조선비즈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12/2017021200995.html
22. Our World in Data, Fish and seafood consumption per capita 2022 https://ourworldindata.org/grapher/fish-and-seafood-consumption-per-capi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