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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웅 Sep 05. 2022

임원은 되고 넌 안 돼

꼬우면 임원 달라고요?

“이 홀은 하루에 물을 27만 리터 마십니다. 당신은 그만큼 마실 수 있나요?”


지난 8월 10일(현지 시각)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비에유 툴루즈, 가론데세트드니에 골프장 그린 엔 밤새 깃발 대신 위와 같이 적힌 팻말이 박혔습니다. 이는 기후 변화 위기에 맞서 행동하는 환경단체인 '멸종 저항(Extinction Rebellion)'의 툴루즈 지부가 야음을 틈타 침입해 벌인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팻말 아래 홀컵까지 시멘트로 메우고선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고, 이와 더불어 골프 산업을 규탄하는 멘트를 던졌습니다. "농업 부문은 가뭄을 이유로 관개를 금지하는데, 이 레저 산업은 가장 특권을 누리는 물을 독점하고 있다."


/멸종 저항 툴루즈 지부 트위터


멸종 저항에 앞서 프랑스 서부 앙제에서 활동하는 환경단체 '기후를 위한 청년’ 역시 지난 5일 한 골프장으로 이어지는 송수관을 막았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마실 물이 부족한 지역도 있는데 (골프장) 잔디밭에 물을 주는 것은 쓸모없고 유해하다"며 “골프장이 물 사용을 제한할 때까지 행동을 계속해 이어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유럽 대다수 나라와 마찬가지로, 프랑스는 올여름 들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상황입니다. 올해는 프랑스 기상청 측정이 시작된 1959년 이래 가장 건조한 7월 중 하나였습니다. 한 달 내내 강수량을 통틀어도 9.7㎜에 그쳐 1961년 3월 7.8㎜ 이후 가장 적었다 합니다. 


식수조차 떨어진 마을이 100여 개에 달하며, 송수관이 말라 물을 트럭으로 실어 나르는 동네가 속출했습니다. 세차는커녕 정원에 물을 뿌리는 것도 당분간 삼가 달라 청하는 지역 또한 한둘이 아닌 판입니다. 바르 일대에선 물을 1인당 하루에 150∼200L씩만 쓰도록 하며,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200만원 가까이 물어야 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예외는 골프장뿐입니다. 사흘만 물을 주지 않아도 잔디가 죽어 영업이 불가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골프장을 대상으로 한 규제라곤 야간 때에만 평상시에 비해 줄 수 있는 물을 30% 수준으로 제한한다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제라르 루지에 프랑스 골프 연맹 대표는 프랑스앵포와의 인터뷰에서 "잔디밭이 없는 골프장은 얼음이 없는 아이스링크와도 같고, 골프장에서 일하는 프랑스인은 1만5000명에 이른다"며 정당화 논리를 펼쳤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골프 업계의 주장은 폭넓은 지지를 받진 못했습니다. 물 없인 영업에 지장이 생기는 업종이 골프장 하나만일 리는 만무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 그르노블의 시장인 에릭 피올레는 골프장만을 대상으로 한 물 사용 제한 면제를 “프랑스 국민이 고통받는 동안 부자와 권력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기후 행동 단체들이 만든 플랫폼인 ‘그린 보이스’ 역시 “심각한 가뭄에도 불구하고 극히 일부만이 다른 세계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며 오로지 골프만이 누리는 비정상적인 특혜를 규탄했습니다.




절대적 빈곤보다 괴로운 것은 상대적 빈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손에 쥔 떡이 차라리 없는 때보다 커 보이는 남의 떡이 눈에 밟히는 상황이 오히려 더 고달프다는 것이죠. 게다가 프랑스 골프장의 사례처럼 그러한 혜택을 누리는 이가 고위직이나 특권층 등, 평소에도 나보다 향유하던 것이 많은 인물이라면 박탈감과 분노는 한층 더 부풀어 오르기 십상인데요.


서구 기업계에서도 얼마 전 비슷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지난 4월 19일 기업용 메신저 플랫폼인 슬랙이 만든 컨소시엄인 ‘퓨처포럼’은 '유연하지 못한 사무실 복귀 정책이 직원들의 경험 점수를 깎아 먹고 있다'는 제목으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올해 1~2월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호주 등 6개국에서 지식 근로자 1만818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를 정리한 자료였는데요. 


보고서의 핵심은 'C-Level의 이중잣대'였습니다. 퓨처포럼의 수석 리더인 브라이언 엘리엇 슬랙 수석 부사장은 CNBC방송에서 “임원들이 팀을 위한다며 사무실 복귀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으나, 정작 본인들은 유연한 하이브리드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퓨처포럼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주5일 전부를 사무실로 출근하는 비율이 임원은 19%, 직원은 35%로 크게 차이가 났습니다.


퓨처포럼은 사무실 바깥 근무를 직원보다 더 즐겼던 임원들이 되려 재택근무 종료를 밀어붙이는 이유로 ‘경험의 차이’를 들었습니다. 앨리엇 수석 부사장은 “직원들은 재택근무나 하이브리드 근무를 도입하고서야 비로소 시간과 공간의 자율성에 기반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았지만, 그것을 종전부터 누리고 있던 임원들은 원격근무를 계기로 긍정적인 경험을 추가로 하는 바가 적어 별다른 효용을 느끼지 못한 것”이라 해석했습니다. 임원 본인이야 어차피 재택근무제를 도입하건 말건 근무지를 비교적 자유롭게 택할 수 있으니, 직원들은 눈에 보이는 곳에 확실히 붙잡아 둘 수 있는 ‘사무실 전면 근무’를 훨씬 바란다는 것입니다.


퓨처포럼의 조사에 응했던 기업들은 대부분 임원급에 다다르면 근무지의 제약이 덜해지는 모양이군요./게티이미지뱅크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수석 파트너인 데보라 로비치는 "직원들은 이미 유연한 업무 환경에서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해냈다"면서 "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유연근무의 혜택을 한껏 누리던 임원들이 부하들의 재택근무는 막으려 든다면 직원들은 상당수가 이탈할 준비를 할 것"이라 내다봤습니다.




10여년 전 세계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은 금융가를 규탄하고자 민중이 봉기했던 ‘월가 점령 시위’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당시에도 사태의 진앙지인 대형 금융사들은 경영난을 빌미 삼아 직원들을 수천명씩 쳐내고선, 정작 임원들에겐 고액 연봉과 퇴직금을 지불하는 차별을 노골적으로 일삼아 공분을 샀었죠.


/게티이미지뱅크


이를테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그때 위기 타개를 명분으로 전체 직원 중 10.5%(약 3만명)를 감원하는 조치를 포함해 총 50억달러에 달하는 연간 비용 감축안을 발표했습니다만. 그 와중에 전(前) 임원이었던 샐리 크로첵에겐 600만달러(약 70억8000만원)를 지불하는 한편, 소비자금융 부문을 담당했던 임원인 조 프라이스에게도 봉급 85만달러를 포함해 총 500만달러(약 59억원)를 주겠다 해 엄청난 반발을 초래했죠. 


BoA 건물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이들은 "다수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급여와 상여금을 수백만 달러씩 긁어모으는데 직원은 매달 수천 명 단위로 해고하는 꼴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고 외쳤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마저도 "시위대가 분노하는 것은 우리의 금융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노골적으로 지적할 지경이었죠.




누군가는 기여도나 업무 중요도에 따라 보상에 차등을 두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정당한 것이 아니겠냐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두가 납득 가능할 정도로 설명이 충분히 된 이후 다수가 널리 인정해 주는 상황을 전제로 했을 때의 이야기죠. 


앞선 사례들처럼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인, 즉 이중잣대에 기인한 ‘내로남불’로 비칠 수 있는 상황에도, 별다른 설득이나 해명 없이 ‘이해 못할 차별이나 혜택 또는 불이익’을 시전하면 어느 회사일지라도 직원의 반발을 피하긴 어려운 것입니다. 더군다나 프랑스 골프장처럼 유달리 특혜를 줘야 할 이유를 수긍하기 어려운 경우나, 월가 시위처럼 성과는커녕 기업을 망친 주범 취급을 받는 인물에게도 임원이랍시고 오히려 돈을 듬뿍 집어 주는 꼴엔 저항이 한층 더 격렬할 수밖에 없죠.


그렇기에 조직을 운영하며 차등적인 보상이나 혜택 지급 구조를 설계할 땐, 누가 보더라도 납득이 갈 정도로 합리성을 넉넉히 내포하거나, 차별의 불가피함이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조직원들로부터 충분히 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느 날 사장실 퍼팅연습기 홀에 시멘트 덩이가 박히거나 사옥 로비 안팎에서 연좌시위가 터지는 광경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죠. 뭐 대개는 그렇게까지 극단으로까지 치닫진 않고, 불만을 품은 직원들이 보이지 않게 태업을 벌이거나 핵심 인재가 떠나가는 정도에서 그치겠지만, 회사 입장에서야 그것만 해도 분명한 아픔이고 타격이긴 하니까요.



더욱 많은 이야기가, '오늘도 출근중'에서 독자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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