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과 함께 사라진 수습사원

세계는 넓고 갈 회사는 많다

by 문현웅

이것은 한창 벚꽃 피는 차례 따라 대학은 물론 언론사도 위태로워지던 시절, 지방에서 기자 노릇을 하던 친구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지역지 중 뿌리가 얕고 재정 수준이 하찮은 곳은, 사원들에게 월급 대신 기자증만 덜렁 쥐여주고 광고주와 관공서를 알아서 뜯어먹도록 종용하는, 동네 조폭과 유사 다단계의 끔찍한 혼종 비스무리한 스타일로 회사를 굴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어느 날 그런 계통의 신문사 중 한 곳에서 새로 부릴 기자를 모집했습니다만. 이들은 대담하게도 수습 기간엔 봉급을 전혀 줄 수 없고 광고를 따오면 그 수익에서 일정 부분을 떼어 주겠다며, 최종합격 전까진 그저 선량한 시민이었던 대졸 신입에게도 막무가내 영업을 강요했다 합니다. 물론 이를 거부하면 채용을 취소하겠다며 으름장도 놓았고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작 당사자들에겐 그러한 위협이 썩 와닿진 않았던 모양입니다. 장비 지급 절차가 끝나자마자 수습사원 중 넷이 노트북을 들고 잠적해 버렸거든요.


GettyImages-1328982141.jpg /게티이미지뱅크


경영 상황이 영 좋지 못한 지역 신문사 입장에선 노트북 네 대도 무시 못 할 재산인지라 황급히 색출에 나서긴 했죠. 하지만 공권력의 도움을 받지 못한 탓에 들인 노력과 열정에 비해 성과는 영 미진했다 합니다.


왜 신고를 하지 않았느냐고요? 그야 월급은 못 주니 알아서 뜯어먹으라 했다가 기물을 탈취당한 사연은 아무래도 경찰서에서 자랑스레 풀어놓을 이야기는 못 되니까요.




일단 휘하에 들인 직원이라면 마냥 갑의 위치에서 통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기업이나 조직이 의외로 드물지 않습니다. 하지만 첫걸음을 디딘 직장에서 쭉 성장하는 것이 커리어의 미덕이었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이직과 전직이 활발해진 데다 핵심 인재 확보에 적극 나서는 기업이 많아진 요즘엔 회사가 직원을 일방적으로 휘두르기가 쉽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며느리를 시험한답시고 보리 두 되와 쌀 두 되로 한 달을 지내도록 종용하는 옛 시절 전래동화에 비유해 보자면요. 과거엔 아껴 먹건 장사를 해 불리건 이래저래 문제를 해결해 좋은 인상을 주고 시집을 가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지만, 이제는 아들 가진 집이 너희 하나뿐이냐고 외치며 곡식을 들고 도주해 버리는 선택지도 고려에 넣는 셈이죠. 특히나 모두가 탐내는 며느릿감으로 치환할 수 있는, 회사 바깥에서도 능력을 알아주는 핵심 인재 입장에선 갈 곳도 많아진 판이니 굳이 치사한 꼴을 참고 견딜 의리가 없는 것이고요.


물론 회사도 할 말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못 해준 것이 뭐냐고요. 앞서 언급한 사례에 빗대 보자면, 너희 나이대에선 감히 넘보지 못할 수준의 명예와 권력을 주는데 왜 알아주지 않냐고 항변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언론사에서 흔히 하는 말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실제로 지역지 기자가 그만큼의 명예와 권력을 누리는지는 일단 차치하고라도요. 수습기자들 쪽에선 반대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죠. '아니 돈 달랬지, 누가 명예와 권력 달래요?'


아직도 많은 기업이 '사원이 바라는 것'을 파악해 제공하기보다는, 단지 '회사가 줄 수 있는 것' 내지 '회사가 주기에 편하고 유리한 것' 위주로 시혜를 베풀려 합니다. 임직원은 워라밸을 바라는데도 정작 도입하는 복지 혜택은 석식 제공이라든가, 월급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에 복지포인트 추가 지급을 협상 카드로 내미는 식이죠. 하지만 누구인들 바라지도 않는 혜택을 생색내며 던져 주는 직장에 굳이 충성하며 머무르고 싶을까요. 그러니 인재는 인재대로 정나미를 떼며 떠나고, 회사는 회사대로 섭섭해하는 것이죠.


요점은, 선발을 마친 인재라 한들 온전히 회사 것은 아니며, 안정적인 조직 관리를 위해선 항상 임직원과 소통하며 니즈를 살필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그저 내가 주기에 편하거나 유리한 것만을 골라 제공하면서 상대가 늘 감사하며 만족하길 바라서도 곤란하고요.


남녀가 교제할 때에도 이미 잡은 고기랍시고 그런 태도를 견지하면 좋은 소리를 듣긴 아무래도 힘들 텐데요. 하물며 연애만큼이나 정과 신뢰를 두텁게 쌓긴 어려운 회사-직원 관계에선 어떻겠습니까. 사귀기로 약조한 순간 이후로도 연인의 마음을 붙들기 위한 배려는 계속되듯, 인재 또한 채용 이후로도 관계 유지와 발전을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어질 필요가 있지 않나 합니다.



*이 글은 플랜비디자인의 제안으로 출간된 '솔직히 당신 열정엔 관심 없어요' 서적의 일부입니다.

브런치북을 통해 이어지는 작가의 길은 여러분께도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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