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사단장이 말했다

우리는 왜 '훌륭한' 프로젝트에 진심으로 동참하지 않을까

by 문현웅

아마도 2010년 즈음이었을 것입니다. 강원도 모처에서 시급 300원 정도를 받으며 국경 방위에 임하던 중, 문득 환경과 진급에 관심이 지대하던 사단장께서 예하 부대에 샴푸 사용을 금하는 령을 내리셨다는 비보를 전해 듣게 됐습니다. 아름다운 조국 산천이 독한 화학 제품에 긁히고 상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합니다.


아니 그럼 머리는 뭐로 감나요? 따위 반론은 통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군복과 식판과 사람의 위생 유지를 돕고자 오이 향 나는 비누를 꾸준히 보급해 주고 있었으니까요.


0101 이토랜드.png /이토랜드


이견도 있기야 하겠으나, 사실 제 생각엔 보급 비누의 퀄리티 자체는 아주 저질로 매도 당할 수준까진 아니었던 듯합니다. 어디까지나 ‘비누’로선 말이죠. 그저 샴푸 대신 쓰면 머리칼이 뻣뻣해지는데다 자칫하면 닿는 피부의 수분까지 뺏는, ‘비누’라는 물질의 태생적 한계가 문제였을 뿐이었습니다. 실제로 당대 훈련소에선 잘 익은 대춧빛으로 얼굴에 홍조가 오르거나 덜미 언저리에 서리가 앉은 신병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요. 대개는 사회에서 샴푸와 클렌징 폼 등으로 곱고 단아하게 관리되던 육신이 거친 비누에 적응하지 못하는 바람에 벌어지는 사태였죠.


아무튼 사단장의 명령은 지엄했고, 예하 부대의 조치는 신속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생활관 침상 구석마다 박힌 목욕 바구니에서 샴푸가 깔끔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저희는 이따금 방향제 대신 소변기 바닥에 던져 두기나 했던 그 녀석들을 두피에 고루 문지르는 신세가 됐습니다. 부대 주변 하천은 맑아지는 만큼 영내에 갇힌 장병들의 머릿결은 박살 나는 나날은 그렇게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답을 찾았습니다. 늘 그랬듯이 말이죠. 얼마 뒤 휴가를 맞아 나갔던 누군가가 군용 보급 비누와 외양이 유사한 ‘고형 샴푸 바’를 사회에서 발견하고선 부대 내로 반입했고, 휴가와 외출·외박 시즌이 한소끔 지나자 그 제품을 쓰지 않는 부대원을 찾기가 오히려 어렵게 됐습니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라 그랬는지 단속을 맡은 간부나 분대장마저도 살짝 닳으면 겉보기엔 보급품과 별다를 바가 없는 유사품까지 일일이 색출하진 않았고요. 이 와중에도 머리칼에 향긋한 오이 내음을 꿋꿋이 두르는 이는 장기 복무를 노리는 장교나 부사관뿐이었죠.


하지만 사단장도 결국엔 일선에서 지시를 어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야 말았습니다. 무엇이 계기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어느 날 스쳐 지난 흔들리는 병사들 속에서 샴푸 향이 느껴지거나 했던 것이겠죠. 아무튼 심기가 불편해진 투스타께서는 휘하 부대 전체를 방송으로 연결하고선 준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삼천리 강산의 미려함을 해하는 너희들에게 몹시 실망했다, 나이가 60줄인 사단장도 샴푸를 끊고 비누를 쓰는데 젊고 건강한 너희들이 조금 불편하다고 환경을 위협하는 제품을 쓰느냐, 뭐 대략 그런 정도의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이미 두발이 희박하셨던 장군님께서 굳이 세안 비누와 샴푸를 구분해 쓰시긴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저희에 비해선 예전부터 샴푸 사용량이 그다지 많지 않으셨을 것은 뻔했죠. 게다가 군대가 생업이고 운명이며 세계관의 전부인 투스타에 비해, 두 해를 온전히 채우지 않고 사회로 돌아가 연애 혹은 면접에 임해야 하는 장병이 머리칼에 두는 관심과 정성 수준은 애초부터 차마 비교할 바가 아니긴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훈시 이후로도 일선에서의 고형 샴푸 사용은 계속됐고, 윗선에서도 결국엔 강압까지 해 가며 실적을 낼 프로젝트는 아니라 판단했는지 제한을 어느덧 흐지부지 풀었습니다. 군에서 잊을 만하면 벌이는 여타 잡다한 캠페인들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0102.jpg 무려 국방부 공식 인증을 받은 가혹행위로 유명했던 '웃음벨 캠페인'./SBS News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이처럼 야심 차게 추진한 이벤트가 별 호응이나 실효 없이 유야무야되는 꼴을 여럿 봤는데요. 묘하게도 결국 그렇게 흘러가는 이유는 장병 시절 경험했던 캠페인들과 맥락상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첫째로, 열심히 따른들 발주한 높으신 분 이외 참여자에겐 메리트가 없다는 것입니다. 샴푸 안 쓰기 운동이 성공하면 사단장이야 지역 사회에 생색도 내고 윗선에도 잘 보이며 진급 내지 영전할 토대를 마련할 수 있겠으나, 병사들에겐 가려운 머릿가죽 말고 남는 것이 무어 있겠습니까. 직장에서 벌이는 프로젝트 또한 그런 성격인 녀석들이 상당수고요.


둘째로, 프로젝트 수행으로 인해 입는 대미지가 다릅니다. 이를테면 탈모 진행이 끝난 장군과 한창 머리숱이 많을 나이 청년 중 어느 쪽이 비누를 사용해 입을 피해가 더 클까요. 또한 집에 일찍 가도 TV 보기 이외엔 할 게 없는 사람과 함께할 가족도 만날 친구도 많은 이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프로젝트로 인한 야근’을 더 손해라 생각하겠습니까.


셋째로, 조직 충성도가 다릅니다. 이미 군과 혼연일체가 된 투스타와 마지못한 군 생활을 스쳐 지나듯 하는 의무복무자를 비교한들 조직에 대한 충심이 강한 쪽은 너무나도 뻔할 것이고요. 직장에서도 회사에 뼈를 묻었거나 앞으로 묻을 예정인 고위 간부라면 모를까. 아직은 그래도 꼬우면 나갈 여지가 꽤 있는 말단 입장에선 참으로 아니꼬운 일을 접했을 때 굳이 억지로 참고 견딜 만한 유인이 얼마나 있을까요. 이직이 활발해지고 스타트업도 늘어 옛 시대에 비해 운신의 폭이 넓어진 요즘엔 더더욱이나 말이지요.


요점은, 군에서건 직장에서건 그저 자기 좋은 일만 벌이고서 아랫것들이 도통 따르질 않는다며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프로젝트의 지향점이 얼마나 아름답건 실상 그 내용은 ‘환경 지켜야 하니 샴푸 쓰지 말아라’는 식인, 정작 수행자에겐 별 이득이 없는 허울 좋은 이상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프로젝트가 성공했을 때 얻는 것의 차이까지 감안하면 그 이상조차 위선처럼 느껴질 여지도 있고요.


그런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높은 분들은 ‘이런 대단한 사업에 왜 그따위 태도로 임하냐’고 소리치고, 아래에선 ‘아니 내가 그걸 따라서 남는 것이 무언데’라 반발하는 구도는 영영 바뀔 가망이 없지 않을까 합니다. 군에서건 바깥 사회에서의 직장에서건 말이죠.



*이 글은 플랜비디자인의 제안으로 출간된 '솔직히 당신 열정엔 관심 없어요' 서적의 일부입니다.

브런치북을 통해 이어지는 작가의 길은 여러분께도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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