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예산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변명을 위한 변명

by 문현웅

핑계로 성공한 사람은 김건모뿐이고 변명으로 역사에 남은 인물은 소크라테스뿐이라는 말도 있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핑계 대지 마라, 변명하지 말라는 질책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는 굉장히 드문 편입니다.


이번 연휴 기간에 문득 다시 돌려 보았던 1994년작 애니메이션(국내 방영은 1996년) ‘몬타나 존스’에서도 비슷한 뉘앙스의 장면이 매번 보이더군요. 니트로 박사가 만든 발명품이 무리한 기동을 감행해 박살 날 때마다 “시간과 예산을 조금만 더 주신다면…”이라 말하고, 상관인 제로 경은 “변명은 죄악이라는 것을 모르는가!”라며 꾸짖는 구도로요.


0101.jpg /애니메이션 '몬타나 존스' 中


실제로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초년병들도 이러한 질타를 거듭 받다 본인의 능력 부족을 한탄하며 자괴감에 시달리는 경우도 꽤 흔히 볼 수 있습니다만. 하지만 문책을 당하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상황이 나빠진 데에 하급자 책임만 있냐 하면, 사실 막상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때가 대부분이긴 합니다.




제가 해외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지라 타국 분위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빠듯한 예산과 촉박한 일정 등 갖가지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프로젝트 실패 리스크를 의지와 노력으로 때우도록 종용하는 곳이 상당한 듯합니다.


이를테면 타사가 거액을 투자해 장악한 납품 루트를 별도 예산 배정 없이 영업 조직의 친화력만으로 탈취하라 지시하거나, 대기업이 만든 프로그램과 유사한 상품을 턱없는 인력으로 개발하도록 요구하고서 결국 실패에 이르면 일선 담당자들의 의욕과 책임감 부족을 들먹이는 식이죠. 나름의 사정을 말하며 해명해 본들 어차피 변명과 핑계를 늘어놓는 놈이라는 오명만 더해질 뿐이고요.


하지만 세상엔 정신력만으론 해결이 난감한 일도 엄연히 존재하는 법이죠. 고도로 훈련받은 사관학교 출신 엘리트 장교들마저도 소총만 쥐여 주고 적진에 무작정 뛰어들게 하면 한낱 고기방패 이상의 활약은 기대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굶주림과 피로와 날아오는 총탄을 의지와 노력만으로 틀어막는 것도 분명 한계는 있을 테니까요. 이렇게 악전고투한 장교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거나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을 과연 공정하다 말할 수 있을까요.


0103.jpg /만화 '지팡구' 中


실제로 앞서 언급한 ‘몬타나 존스’의 니트로 박사 역시 시대를 뛰어넘는 수준의 발명품을 연달아 설계해내는 상당히 유능한 기술자였습니다만. 제로 경이 시간과 예산을 지나치게 빡빡하게 배정하는데다 악조건을 딛고 간신히 만든 발명품마저 매뉴얼을 고려하지 않고 멋대로 다뤄 망가뜨리는 바람에 ‘똑바로 만드는 제품이 없는’ 무능한 인물로 폄하 당하는 신세가 됐죠. 하지만 진정 반성이 필요했던 인물은 과연 니트로 박사와 제로 경 중 어느 쪽이었을까요.


0102.jpg 아닙니다./애니메이션 '몬타나 존스' 中




직장에서는 물론, 이번 명절 연휴 동안에도 의지가 박약하고 성품이 게으른 탓에 제대로 일궈 낸 성취가 없다는 꾸지람을 들은 분이 그리 적지 않을 것입니다. 여건이 좋고 지원이 넉넉했음에도 오로지 본인이 모자란 탓에 일을 망쳤다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명확히 존재하는 객관적인 불리함이나 한계를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이를 그저 변명이나 핑계로 치부하고서 이어지는 질책이라면, 그 누가 하는 말이라도 너무 귀담아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안개로 배를 채우며 하룻밤 만에 만리장성을 쌓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인간의 체력과 정신력엔 한계가 존재하며, 의지와 노력은 결코 모든 것을 극복해 낼 정도로 위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떳떳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면 ‘변명한다’거나 ‘핑계 댄다’는 말에 위축될 이유가 없습니다. 지원을 제대로 해 주지 못한 사람이 책임을 전가하고자 내뱉는 말에 휘말려, 괜히 마음 상하거나 자책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이 글은 플랜비디자인의 제안으로 출간된 '솔직히 당신 열정엔 관심 없어요' 서적의 일부입니다.

브런치북을 통해 이어지는 작가의 길은 여러분께도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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