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빵
달콤하고 따뜻한 것이 그리운 날엔 팥빵을
내가 처음 먹어본 팥빵에 대한 얘기다. 농번기는 아니어도 날씨가 좋을 때였으니 5월쯤은 되었으리라. 엄마는 아침에 동네 아줌마들과 놀이를 간다고 정신없이 바쁘셨다. 불을 때서 솥밥을 하던 때였다. 아마 나는 초등 저학년 정도 됐을 듯하다. 엄마가 얼마나 바빴는지 뜸 들일 겨를도 없이 밥을 퍼서 도시락에 담고 계셨다.
“엄마, 어디 가?”
“오늘 여자들끼리 차 타고 놀러 가는 데 아침에 잠깐 들에 나갔다 왔더니 이렇게 됐네.”
놀러 가는 날 조차도 농사일을 조금이라도 해놓으려고 밭에 나갔다 온 거였다. 차를 대절해서 멀리 가는 거라 마음이 더 급했던 것 같았다. 그 시절 시골에서 장거리 여행을 간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었을까. 밥을 차려 먹으라며 부산하게 부엌을 나가셨다.
오후에 집에 온 엄마에게 재밌었냐고 하니 “그래, 좋긴 좋더라.” 하며 웃으셨다.
“내가 아침에 뭘 담아 갈 시간이 없어서 반찬으로 고추장만 퍼갔잖니. 점심시간에 차에서 멀미를 한 여자들이 여기저기서 고추장을 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 고추장만 금방 동이 났지 뭐야. 밖에 나가면 칼칼한 고추장이 제일이라면서.”
“그럼 엄마는 뭐하고 먹었는데?”
“그 여자들이 자기들 싸온 음식도 주고 빵도 주고 그랬지.”
흡족해하는 엄마를 보고 내가 물었다.
“엄마, 또 가게?”
“뭐 자주 가겠니. 이번에도 서촌 여자들 가는데 자리가 있으니 갈 거냐고 하길래 간다고 한 거지. 하여튼 잘 갔다 왔다.” 우리 동네는 동촌과 서촌이 있었고 동쪽에 있는 우리 마을은 동촌이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계획하고 간 나들이가 아니라 후다닥 따라나선 하룻길 여행이었던 듯하다. 엄마가 밥을 담아 갔던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네모난 노란색 양은 도시락이었다. 밥풀이 몇 개 붙어있는 도시락 안쪽으로 동그란 빵 세 개가 모여 있었다. 요즘의 경주빵이나 팥앙금 만주 정도 되는 것이었다. 한입에 넣어도 될 작은 것이었다.
"엄마, 이거 빵이네?” 나는 도시락 앞에 다가앉으며 눈을 반짝였다.
“같이 간 사람이 준 건데, 내가 하나 먹어보니 맛있더라.”
“왜 안 먹고 가져왔어?”
“니들 먹어 보라고 냉겨왔지.”
빵을 맘껏 먹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아니, 우리는 이런 걸 사 먹을 생각도 안 했다. 소풍 가는 날은 무쇠솥에 불 때서 엄마가 만들어 준 찐빵을 가져간 적은 있었지만 빵을 사 먹은 적은 없었다.
나는 밥풀을 떼어내고 갈색 빵을 반쪽으로 나누었다. 속에 팥이 들어있는 그것은 달큼한 냄새도 환상적이었다.
“엄마도 더 먹어봐.” 나는 반쪽을 엄마에게 내밀었다.
“너나 먹어. 나는 하나 먹었다.”
내 안에서는 한입에 다 달라고 아우성쳤지만 나는 부뚜막에 걸터앉아 빵을 조금씩 먹으며 음미했다. 엄마의 대답을 궁금해하며 물었다.
“엄마, 이거 두 개는 남길까?”
“그걸 누구 코에 붙여. 니나 다 먹어치워.”
“응, 그래.”
남은 두 개를 엄마 말대로 아낌없이 먹어치웠다. 도시락 속에서 살짝 습기를 머금었지만 팥소의 달콤함과 잘 구워진 빵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날 많은 우리 형제 중에 여행 가는 엄마를 어째서 나만 봤으며, 엄마가 남겨온 빵 세 개를 또 나만 먹게 되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엄마가 어디로 갔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버스 타고 멀리 가는 일이 흔하지 않은 시절 관광차를 타고 멀미를 하면서 놀이를 갔다 왔다는 것 밖에는.
고추장만 가지고 가서 맛난 점심을 먹었다고 말하던 것과 당신 입에도 달았을 귀한 빵 세 개를 자식들 생각에 남겨왔다는 사실만이 그립게 떠오르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