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릉국

공들여 만든 뜨끈한 국수 한 그릇

by 올리가든

누릉국은 적당히 찰지고 도톰하게 씹는 맛이 좋은 국수다. 기계로 빼는 국수는 칼국수고 손으로 수고해서 만든 손칼국수 정도는 돼야 누릉국 같았다. 누릉국은 손칼국수의 충청지방 사투리다.


우리는 여덟 남매다. 무엇을 하든 양으로는 식당의 단체 손님만큼이었다. 그래서인지 함께 먹은 음식에 대한 추억이 많다. 국수를 끓여 먹던 어느 여름 저녁이 생각난다. 둥그런 멍석 위에 둘러앉은 우리 가족의 소박하고 정겨운 저녁 식사였다.


누릉국은 밀가루 반죽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우선 밀가루에 소금간을 치고 물을 조금씩 넣어주며 손으로 섞어준다. 물을 한꺼번에 다 부으면 질어질 수 있다. 반죽 상태를 봐가면서 조금씩 부어줘야 한다. 허연 밀가루 뭉치가 매끈하고 탱탱한 반죽 덩어리가 될 때까지,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주며 두 손으로 계속 치대는 일은 무척 힘이 든다. 이 중요한 일을 언제부턴가 작은 언니가 물려받았다. 우리 남매 중 작은 언니가 가장 힘이 좋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손맛은 제일 좋았다.


일단 반죽이 만들어지면 얇게 펴야 하는데 마룻바닥에 두껍고 넓은 기름종이를 펼친다. 종이 위에 밀가루 한 줌을 기세 좋게 좍 흩뿌린다. 반죽이 종이에 붙지 말라고 하는 처방이다. 찰지고 반들거리는 동그란 반죽 덩어리를 가운데 놓고는 긴 홍두깨로 요령껏 눌러주며 펴줘야 한다. 할 수 있는 한 얇게, 그렇지만 두께가 균일하며 뚫어지지 않게. 요리조리 잘 눌러가며 홍두깨를 놀리다 보면 큰 멜론만 한 반죽 덩어리가 둥그렇게 보자기 모양으로 펼쳐진다.

그 위에 밀가루 한 줌을 더 뿌리고 계란말이 말듯이 예쁘게 말아준다. 그러고 나서 칼을 잡는다. 아버지가 숫돌에 갈아주시는 부엌칼로 한쪽 끝부터 칼질해 들어간다. 칼은 도마 위에서 똑똑…. 일정하게 묵직하지만 믿음직한 소리를 낸다. 동그랗게 말아 쥔 언니의 왼손이 옆으로 움직일 때마다 기특하게 예쁜 국숫발이 만들어진다. 면발의 굵기는 식구들의 식성에 따라 결정된다. 씹히는 맛을 원하면 좀 굵게, 보드랍고 훌훌 넘어가는 것을 원하면 얇게 자른다.


작은 언니는 나보다 열다섯 살 위다. 나는 딸 다섯 중 막내여서 음식을 만드는 일은 내 차례까지 오지 않았다. 밀가루 그릇을 가져오라던지 물을 떠 오라던지 만드는 과정에 필요한 조수 노릇을 하면서 달인의 솜씨를 구경하곤 했다. 가끔은 홍두깨로 반죽 미는 걸 해보겠다고 하거나 판판하게 잘 펴진 밀가루 보자기를 손바닥으로 두드려 보았다. 손에 닿던 살짝 찬 기운과 보드라운 감각이 생각난다. 칼질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언니든 엄마든 면 꼬랑지를 내게 주었다. 김밥 자를 때처럼 양쪽 끝은 모양이 없으니까. 나는 그것을 손으로 주물러서 길게 늘이며 장난을 했다. 부엌에서 큰 솥에 물을 끓이시던 아버지가 나뭇가지에 밀가루 꼬랑지를 끼워 구워주기도 했다. 별맛은 없는, 카레의 난 같은 맛이었다.


작은언니는 밀가루 묻은 두 손으로 면발을 가볍게 몇 번 들었다 놨다 했다. 면에 붙은 밀가루 털어내기다. 안 그러면 국수 국물이 탁해지니까. 대개는 멸칫국물을 내어 국수를 끓였다. 거기에 애호박과 감자를 썰어 넣고 끓이기만해도 맛있는 국수가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누릉국은 된장을 넣거나 고추장과 된장을 섞어 끓인 것이 최고다. 요즘 말하는 장칼국수가 비슷한 맛을 낸다.

엄마는 국수를 좋아했고 작은 언니는 국수를 잘 만들었다.

“작은애야, 저녁에 누릉국 할래?” 엄마가 작은딸에게 하는 말이다.

“오늘은 비가 오니 된장집으로 하자.” 된장을 넣고 구수하고 얼큰한 국수를 만들어 보라는 주문이다. 엄마가 말한 ‘장집’이라는 말은 된장을 넣은, 고추장을 넣은 이라는 말이다. 작은 언니 손은 금손이었다. 엄마의 주문대로 뚝딱 만들었다. 국수만 아니라 무슨 반찬이든 다 맛있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졸깃한 면발에다 구수하고 부드러운 된장 국물은 절대로 물리지 않는 맛이었다. 면을 건져 먹는 중간에 대접을 들고 후루룩 국물을 마셨다. 맛있은 음식을 먹을 때의 만족감은 각자 다르겠지만 내게는 그런 뜨끈함이나 포만감이 좋았다.


여름이면 고구마 순을 넣은 된장 칼국수도 별미였다. 멸치육수에 된장을 연하게 풀어 넣는다. 찧은 마늘과 고구마 연한 순을 뜯어 넣고 끓이기만 해도 색다른 맛이 났다. 먹던 국수가 반 이상 줄어들면 찬밥 한 숟가락 넣고 밥 말아 먹는 것이 맛있는 된장 칼국수의 완성이다.


작은 언니는 손맛만 좋은 게 아니라 손도 컸다. 여분의 칼국수가 넉넉히 양푼에 담겨있어서 국수 먹는 날 배가 고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식사를 마치면 누구는 참외를 깎고 또 누구는 설거짓거리를 마당 한쪽에 있는 샘터로 가져갔다. 아버지는 마당에 모깃불을 피우셨는데 쑥대를 태우는 냄새가 매캐하면서도 향긋하게 집안에 퍼졌다.


세월이 지나며 우리가 다 어른이 되어 부모님 집을 떠났다. 시골에 계시던 엄마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해서 형제들이 함께 내려간 적이 있었다. 모두를 위해 작은 언니가 국수를 만들어 주었다. 이제 언니도 나이가 들어 밀가루 반죽을 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혼자 계신 엄마가 걱정되었을 테고 좋아하던 것을 손수 해드리고 싶었던 거다.


지금도 어쩌다 남매들이 만나면 우리가 함께 살던 때 이야기를 한다. 수다에는 ‘그때 그것참 맛있었지!’라며 시작하는 음식 이야기가 나오게 마련이다. 모두가 공감하다 못해 분위기가 완전 활기를 띠고 웃음이 까르르 터진다. 언니들은 엄마가 해 주던 음식 이야기를, 나는 언니들 음식 맛을 생각한다.

내가 작은 언니에게 물었다. “누릉국 미는 것 힘들지 않았어?”

“처음엔 그랬지. 근데 엄마가 꼭 나한테 그걸 시키더라.”

“아, 그런 거였구나! ” 우리는 웃음을 터트리며 작은언니를 향해 엄지 척을 보냈다.


가끔은 휴일 점심에 누릉국을 대신할 장칼국수를 만들어 먹는다. 엄마의 누릉국 작은언니의 손맛은 아닐지라도, 가난하지만 모두가 모여 살던 시절 부모님이 살아계시던 그때를 추억하면 다정한 미소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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