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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가든 Apr 10. 2021

유행가

저녁 찬거리를 사러 마트에 들렀다. 매장에서 친숙한 노래가 나온다. 저 노래 얼마 만에 듣나 싶어 반가웠다. 감자를 골라 봉지에 넣으며 작게 따라 부르고 있는 나. 마스크를 쓰고 있어 다른 사람이 듣진 못했겠지만 웃음이 나왔다. 카운터를 지나 마트를 벗어났다. 개울 길을 걸어 집으로 간다. 신호등을 기다리면서도 노래를 멈출 수 없다. 내가 나이를 먹었나 보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 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 분...’


잊고 지내다가도 언제든 들으면 즉시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 유행가다. 어릴 때부터 익숙해진 것이라서 그런가 보다.


큰언니는 열여섯 살 위다. 언니들이 다 노래를 자주 불렀다. 짜근 언니(우리는 언제나 작은 언니가 아니고 짜근 언니라고 불렀다)는 유행가를 잘 불러서  콩쿨대회 나간 적도 있다. 아마 노래를 좋아한 것이 집안 분위기였던 것 같다. 부모님이 노래하시는 건 별로 듣지 못했다. 아버지가 ‘번지 없는 주막’을 부른 적이 있다. 노래 잘하셨는데 자주 부르진 않았다.


우리 자매들은 여름이면 마당에 큰 멍석을 깔고 나란히 누워 라디오 연속극을 들었다. 그때 연속방송극 성우로 김자옥 씨가 인기 많았다.(이 분의 상냥한 목소리가 좋았다.) 연속극 듣고, 유행가 부르고, 언니들과 함께라서 배운 것들이다.


유행가에 반응하는 나의 기질은 평소 잠잠히 가라앉았다가 언제라도 이름 부르면 즉시 살아나는 감성인 듯하다.


마트에서 대전 블루스를 듣자마자 내 마음은 광속으로 옛날로 달려갔다. 반복 부르기를 하면서 집까지 와서는 라디오 클래식에 주파수를 맞춘다.


토글키를 누르듯 쉽게 모드가 바뀌는, 나는 그런 사람인가.

'유행가'를 부르면 가끔 촉촉한 감성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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