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만케Jan Mankes(1889.8.15-1920.4.23)
가슴이 뜨겁고 매운 공기로 가득 찬 것만 같고 머리는 싷누렇고 뿌연 연기로 가득 차 아무것도 내다볼 수가 없다.
당장에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나의 기분, 감정 상태뿐... 상대방의 눈빛은 살펴볼 여력이 없다.
‘너무 괴롭고 힘들어... 모든 건 다 저 아이 때문이야.’
결국 화는 내가 내면서 그 이유를 내가 아닌 것에 찾고 결정적인 이유를 아이에게 있다고 확신을 하고 아이를 원망하는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만 좀 해!!! 엄마가 지금 뭐라 그랬어!!! 왜 이렇게 엄마를 화나게 해?”
의도하지 않은 가래가 뱉어지듯 목에 걸려있던 말이 튀어나왔다. 사실 뱉은 말보다 속으로 곱씹고 있는 말들은 30년 된 위스키보다 더한 독을 품고 있었고 눈빛은 모든 것을 얼려버릴 엘사의 손끝보다도 차가웠다.
그러면서 나는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했다 생각했다.
‘나 지금 너에게 더 한 말을 했을 수도 있고, 아니 어쩌면 너를 때릴 수도 있었어. 그런데 나는 참고 또 참은 거야.’
하지만 눈물이 그렁그렁 해져서 나의 화난 모습을 눈물로 지우고 있는 아이를 보니 내 마음도 흘러내렸다.
아이의 눈물을 보자 엄청난 후회와 동시에 자괴감이 밀려온다. 화를 낸 자아와, 화를 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자아, 그리고 자책과 후회를 하는 자아, 그리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자아가 내 속 안에서 시끄럽게 싸우고 있으니 화를 내기 전보다 훨씬 마음이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었거나 다시 볼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뒤돌아버리면 끝날지 모르지만 내가 화를 낸 대상은 어이없이 나를 세상에 전부라고 생각하는, 나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아주 작고 약한 아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내 목숨도 내어줄 수 있는 존재이며 어쩌면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다. 그런 아이에게 화를 냈다는 건 정말 나 스스로를 내가 용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작은 화에도 하얀 백지 같은 아이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상처가 난다면 그 상처를 보듬어야 하는 사람도 나니까.
'미안해. 그렇지만 엄마도 너무 힘이 들어.'
화를 내기 전의 감정과 낸 후의 감정은 비교할 것도 없이 후자가 더 견디기 힘들지만 그걸 알면서도 화를 내는 건 순간의 나를 참지 못할 만큼 화나는 감정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화는 내기 전에도, 내고 난 후에도 변함없이 괴롭다. 그냥...‘화’라는 감정이 들어온 순간부터 내 마음은 쑥대밭이 되는 것이다. 그 대상이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상처를 내는 일이니까.
이런 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좋지 않다. 밤새 뒤척이는 아이의 몸짓에 죄책감에 눌려 제대로 잘 수도 없다. 그럴 때면 침대에서 뒤척이는 대신 과감하게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갈 적어본다. 애꿎은 공책에 잉크가 흐르는 고장 난 만년필로 쏟아내고 나면 좀 괜찮아질까.
고요하고 적막한 새벽.
잔잔한 음악조차 시끄러워지는 새벽.
새들도 자느라 지저귀지 않는 그런 적막한 새벽이다.
종이를 스쳐가는 만년필의 소리만이 들리는 조용한 새벽에 하얀 종이에 시꺼먼 마음이 왈칵 쏟아져 나온다.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휘감아 더 이상 아이에게 따듯한 눈빛을 보낼 수 없을 땐 이렇게 조용한 새벽의 시간. 나의 자아를 보듬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 있다.
사실 이 그림의 시점이 새벽인지 한밤중인지 아침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요하다 못해 적막이 느껴지는 이 시간을 대략 새벽 4시 직전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열심히 무언가를 하느라 밤을 새운 젊은이들도 지쳐서 자야 하는 시간, 일찍 일어나 세상을 깨우는 사람들도 아직은 자고 있을 그 시간, 아직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한 시간에 모두가 잠든 산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그림을 그린 얀 만케(Jan Mankes 1889– 1920)는 네덜란드의 화가였다. 안타깝게도 아주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생을 마감했다. 서른 살쯤 요절했으니 이 그림을 그렸던 나이는 어린 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깊이 있는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활발하고 생기 있는 젊은 시절을 보내기보다 짧은 생애에서 노년을 다 지나 본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핵 때문이었는지 문화와 사회 속에 떨어져 나와 수도승 같은 생활을 했던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림을 보면 정말 적막의 시간을 즐기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깊이 있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림을 보면 비어있는 공간도 많고 구도나 색감이 동양화 같은 느낌도 든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더 시끄러운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나는 그의 그림을 자주 본다.
그의 그림은 소음을 빨아들인다. 그림 속 대상은 태연하게 존재한다. 그래서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너무 조용해 온전히 내 마음의 소리만 집중할 수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알랭 드 보통 은 그의 책「영혼의 미술관」에서 예술은 마음의 균형을 이루게 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화나는 감정을 쉽게 다루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고 화가 나면 마음이 불편해서 어쩔 줄 모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럴 때마다 진정제를 삼키는 것 대신에 얀 만케의 그림을 눈에 한 번 담고 마음으로 한번 담으라고 말하고 싶다.
육아는 정말 도를 닦는 일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위 작가가 그랬듯 아이 키우는 일에 전념해야 하는 엄마라면 사회와 문화와는 동떨어진 곳에서 보이지 않고 티 나지 않는 성과 없는 일을 미친 듯이 해야 한다. 바쁘고 정신없고 여유 없는 상황에서도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야 하고 그렇지 못해 화가 났다면 그 감정을 잘 조절하고 어른답게 처리해야 한다. 아니 애초에 ‘화’가 생기지 않도록 끊임없이 나 자신을 다져야 한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 서툴고 미숙하고 느리고 작고 약하다. 그런 아이는 아무런 죄가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조차 자신의 의지가 아녔으니 말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고 나를 필요로 하지만 그것이 절대로 부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가끔은 그런 일상들이 매우 부담스럽고 버겁고 화가 나고 지치고 온갖 부정적인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둠이 올 때가 있지만 그럴 땐 가만히 앉아 이런 그림을 보며 내 안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그리고 그의 어둠에 내 어둠을 겹쳐두고 낮에 찍은 아이들의 웃는 얼굴 사진을 보자.
다시 아침이 밝아오면 아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웅크리고 있던 작은 몸을 활짝 펴고 날 보고 웃는다.
오늘은 정말 화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