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 본능
어느 날 임신을 해야겠다고...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이를 낳는 일.
그건 그토록 사랑한 남편과의 만남을 흔적으로 남는 일이기도 하고 그 아이에게 우리의 사랑방식을 물려주는 일이라 꽤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이는 우리가 일구어 놓은 사랑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앞으로 또 그렇게 사랑할 거기 때문에 우리의 사랑이 그렇게 지구 상에 영원히 남는 거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현실로 아이를 낳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아이의 이유는 너무나도 추상적이었다. 그리고 고되고 또 고된 육아는 추상적인 몇 가지의 이유만으로 견딜 수 있는 차원이 아니었다.
꿈에 부풀었고 상상에 젖어있던 임신과 출산은
임신을 하고 징그럽게 돋아난 두드러기와 출산하면서 미치도록 아팠던 고통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고된 육아는 아이의 존재의 이유를 묻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건지 알게 했다.
하루하루 나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존재 옆에서 나의 존재를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잃어버릴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나는 내가 왜 아이를 낳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되물었지만 결론은...
그냥이었다.
어떻게 보면 충동적이었고 어떻게 보면 아무 이유가 없었다.
남편과의 사랑이 달콤했었기 때문에 아이를 가졌다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이 예쁜 아이를 낳을 걸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며칠 전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아이와 함께 본 신민주 작가의 <추상 본능>이라는 전시를 보면서 그에 대한 어렴풋 답을 찾은 것 같았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근원적이고 날것의 감정이 어쩌면 엄마로서 가졌던 근원적인 물음에 대해 대답을 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한적하고 조용한 전시장에는 커다란 캔버스가 몇 개 띄엄띄엄 걸려있었고 그 위에는 작가가 온 힘을 다해 스퀴지로 밀어가며 표현했을 작가의 본능이 장엄하게 굉음을 내며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삶 속의 다양한 심리적 경험들과 성찰이 쌓여 '붓질'이라는 근원적인 예술행위를 통해 터져 나온 것들이었다.
이 작품을 하기 위해 작가는 얼마나 에너지를 쏟았을까.
아마 작가는 엄마가 지독한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는 이상으로 공을 들였고 작업을 하는 내내 그 과정과 결과물을 사랑했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만큼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작품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머리가 터지도록 연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림 앞에서 숨을 한번 거칠게 쉬고는 자신의 고뇌를 담아 온몸에 힘을 주고는 그렇게 본능적인 붓질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생생한 날것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엄마들은 사실 고민을 많이 한다. 그냥 우연찮게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엄마들도 많지만 대부분 엄마들은 아이를 가지기 전에 가족계획을 세우고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수많은 고민과 걱정 끝의 출산이지만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아이와 어떤 미래를 그려나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작가가 고민 끝에 보여준 날것의 작품들처럼 말이다.
결국 아이를 낳는 이유는 개인의 선택이나 고민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 그림처럼 본능적으로 그리고 운명처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작가의 고뇌가 담겨 있는 여러 획들이 모여 우연히 이뤄진 저 하나의 그림처럼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이 그림을 보고 있으니 감상용(金尙鎔. 1902~1951)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삶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찾기보다 그저 안분지족의 삶을 지향했던 작가의 대단한 배포가 삶의 이유를 웃음으로 대답하는 여유를 보여주는 시다.)
"왜 사냐건 웃지요."
그래. 그저 웃자.
누군가 아이의 이유를 묻거든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생각하며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지어지는 미소를 가만히 두자.
나는 매일 밤 아이를 재울 때 이 시의 이 구절을 떠올리며 하루하루 고된 육아의 마침표를 미소로 찍었다.
자고 있는 아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나도 모르게 지어지는 자애로운 미소.
그것이 바로 아이의 존재에 대한 답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을 참 갈이
괭이를 타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림이 꼬인다 갈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난 사실 전시장에 처음 이 작품을 만난 그날 작가의 작품 의도에 대해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추상 본능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어려움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집에 와 검색을 해보며 그의 작품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지만...
일단 작업의 의도나 혹은 작품세계를 이해하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보이는 시각적 표현이 쉽고 아주 박력 있게 표현되어서 그림 앞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어렵고 복잡하고 답답한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건 확실했다. 그래서 엄마들이 마음이 답답할 때 한 번씩 보았으면 좋겠다.
그냥 보아도 막 그린 그림. 날것의 그림. 속 시원한 그림이니까.
어떤 대상을 염두에 두고 그리지 않더라도 순수한 붓질로 인해 생긴 이미지들은 어쩌면 부모들이 아이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해하는 모습과 다를 게 없고, 작가의 삶의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작품이나 우리의 사랑이 쌓여 만들어진 아이나 다를 게 없기에 엄마들은 더욱더 공감하면서 이 작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왠지 이 작가에게 이 그림을 왜 그렸냐 묻는다면 작가는 나에게 아이를 왜 낳았냐고 되물을 것만 같았다.
(전시는 삼청동 pkm 갤러리 3월 29일까지 한답니다~ 어린 아기와 가시는 분들은 히프 시트나 아기 띠 혹은 미아방지가 방 챙겨가세요~ 작품 훼손 때문에 사실 어린아이들은 출입이 제한된답니다. )
작품 이미지 출처 www.neo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