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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Aug 09. 2016

대학로 학림다방_Since1956

오래된 것은 맛있다


     


대학로 학림다방_Since 1956


 

밖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 어디서 만날까? 

내가 태어나기 전 시대에는 빵집에서 많은 이들이 만났(소개팅을 했)고, 그 지위를 빵집에 이어 다방이 꿰찼다. 그 다음이 커피숍인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나도 커피를 엄청나게 좋아하고, 생활권 곳곳에 분포한 스타벅스와 커피빈 등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많이 찾는다. 하지만 대학로에 일이 있어서 들를 때 가장 먼저 제안하는 만남의 장소는 이곳이다. 

 

“학림다방 어떠세요? 거기 커피가 마시고 싶은데”


여기야말로 수없이 많은 가게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대학로에서 유일하게 시간이 멈춘 공간이다. 입구부터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지나 올라가면 생각보다 큰 볼륨으로 틀어주는 베토벤의 음악이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다. 

오래된 목조 복층 구조에 오래된 테이블이 있고 계산대 뒤쪽 선반에는 오래된 레코드 음반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창밖으로는 가로수와 사람들이 다들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한 층 올라왔을 뿐인데 여기가 그 번잡한 혜화동 같단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아,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왔다.

볼륨이 미묘하다. 멍하니 앉아 있으면 음악이 잘 들린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 칸막이는 없지만 남들의 이야기는 들을 생각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다.

그저 멍하니 앉아 음악을 감상하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핸드폰을 보지 않아도 순간순간이 지루하지 않다. 이곳에서는 클래식과 커피만으로도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블렌드 원두를 핸드드립으로 진하게 내린 ‘스트롱’ 한 잔을 시켜 놓고 홀짝이며 음악을 듣는다. 오래된 잿빛 소파에 몸을 묻고 시간에 몸을 맡긴다.


 아, 이런 평일 대낮의 여유라니. 약속 시간보다 일찍 와서 즐길 수 있는 한정된 여유다.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단 맛이 필요할 때에는 비엔나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비엔나 커피는 커피 위에 크림 세 덩어리와 계핏가루가 뿌려져 있다. 진한 커피 맛과 어우러지는 크림 맛이 칼로리 측면에서는 죄책감이 들지 몰라도 맛은 보장한다.

이곳의 간판 메뉴는 로열 블렌드. 다섯 잔 분량의 원두를 한 잔 분량의 물로 내려낸 커피다. 에스프레소만큼 진하고 강렬한 맛을 내는 이 커피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다.



가끔 커피를 좋아하는 분을 만나게 될 때 학림다방 원두를 선물하기도 한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는 많은 곳에서 판매하지만 잘 로스팅된 원두는 찾기 힘들다. 한식의 맛을 논할 때 ‘장 맛’을 가장 먼저 꼽듯이 커피를 파는 곳에서 ‘로스팅한 원두 맛’이 중요한 게 아니겠는가.     

대학로 학림다방은 나보다, 부모님보다도 나이가 많다. 1956년 개점해 올해로 60년이 됐다. 그동안 주인도 세 번이나 바뀌었다. 현재 주인은 이충렬 대표. 사진작가인 그는 1986년 학림다방의 주인이 됐다. 가게에 걸려 있는 사진은 그의 작품이라는 애길 들었다.


학림다방은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글 쓰는 이들과 옛날의 대학생들이 많이 찾던 장소다. 요즘은 그 글 쓰는 이들은 없지만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작년에는 드라마 촬영지로 사용되며 한동안 중국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자리가 없어 몇 번을 돌아가기도 했다. 



맛과 분위기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장소가 주는 느낌이 맛을 좌우한다. 커피나 술 같이 배를 불리기보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소비하는 음료들은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학림다방은 전통의 맛이 주는 ‘모범답안’같은 장소다. 앉아 있을수록 편안하다. 옛 정취를 찾지 않아도, 유명한 이들이 찾지 않아도 이 장소만으로도 충분하다. 



아, 문이 열리며 만나기로 한 분이 오셨다. 이제 일 얘길 해야지.






오래된 집들은 맛있다. 


1년 이내 문을 닫는 음식점이 50%고 5년 이상 살아남는 음식점은 30%라고 하는 시대다. 요식업계는 이렇게 경쟁이 치열하다. 그럼 이 수많은 음식점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뭘까. 
식품업계에 몸담은 이들을 만나 이 질문을 던지면 한결같이 가장 먼저 말하는 핵심은 '맛'이다. 오랜 시간 동안 고객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점들은 뭐가 있을까. 이 글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오래된’이라는 말의 정의를 고민했다. 
사전적 정의로 ‘오래되다’의 뜻은 아래와 같다.
[형] 오래-되다 ‘시간이 지나간 동안이 길다.’ 

한국에서 음식점이 15년 이상 되면 한 지역(동네)에서 터줏대감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더 오랜 시간 동안 운영된 가게들이 많긴 하지만, 일단 15년 이상 맛을 지켜온 가게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맛과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각기 다를 수 있으나, 글의 성격상 최대한 경험에 의거해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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