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김광석, 서른 즈음에 -
안녕하세요. 인생 2막, 아니 3번째 30살을 맞이한 미아레코드의 2번째 챕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원래는 7-9편짜리로 짤막하게 계획했던 자전적인 과거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려 하였으나 브런치북 특성상 발행 최소 글감이 10편이더군요. 제가 또 브런치를 너무 쉽게 봤습니다..
그래서 이왕 그렇게 된 거 글을 좀 더 추가해서 20편 정도로 가던지 어쨌든 10편은 넘겨서 연재를 해보려고 해요. 지금까지가 디자이너 미아이자 홍인의 과거 이야기였다면 챕터 2에서부터는 예술가이자 아트 디렉터로 성장하고자 하는 저의 현재 모습을 그리고자 합니다. (물론 못다 한 가족이야기까지요)
저는 항상 넥스트를 고민해요. 넥스트라고 할 때면 벌써 기분이 좋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힘겹거나 지겹게 느껴져도 다음에 다시 잘할 생각을 하면 지금 일이 아주 가볍고 의미 있게 느껴져요.
지금이 그렇습니다. 7-9편 정도의 짤막한 에세이로만 글을 엮어가다가 현재 이야기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즐겁고 어쩌면 미래의 이야기까지 저는 더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겠죠.
왜 우리는 항상 다음을 생각해야 할까요. 저는 멀리 있는 다음도 생각하지만 바로 지금 이 프로젝트의 다음도 생각합니다. 그래야지 현재 하는 업무의 오답노트를 가장 빠르게 정리할 수 있거든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또 하자면 저는 수능을 마치고 바로 고3 실기를 맡아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사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그 당시에는 조금 그림을 그린다 싶은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그 알바를 했어요.
왜냐하면 이제 막 대학생이 된 학생들 입장에서는 파트타임 잡 치고, 시급도 아주 좋았고 원래 다니던 학원이라 선생님들이나 친구들도 익숙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학원 입장에서는 바로 가장 열 올려서 공부하던(그림) 친구들이 투입되니까 본 게임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병들이어서 퍼포먼스가 가장 좋은, 잘 길들여진 학생들이었거든요. 마치 전장을 바로 마치고 온.. 노병처럼..(물론 대학교 1학년인 상태입니다) 서로에게 윈윈 일 수밖에 없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입시가 끝나자마자 바로 선생(?이라는 감투를 쓴 학생으로 그 자리를 채웁니다. 사실 바로 고3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보니 1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요(이런). 그런데 선생소리를 들으면서 하려니 힘들고 저는 얼굴이 꽤나 동안인 편이라 이게 좀 멋들어지게 기강이 잡히지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묵묵히 아이들의 부족한 부분을 바로바로 캐치해서 고쳐주는 방법밖에 없었어요. 가끔 힘든 일이나 들어주고요.
그 친구들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들은 저를 (뽀로로)루피쌤이라고 불러주었습니다. 제가 그 캐릭터를 너무 닮았다고 해서 붙여준 별명이죠. 음.. 그 친구들은 그냥 재미로 즐거움으로 붙여준 별명이었겠지만 지금의 저에게 그 일화는 참 따뜻하고 어디 가서 든 책임감 있게 누군가를 가르치게 해요.
저보다 한 살이라도 어리다면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제가 무엇인가를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라면 저는 정말 귀엽고 멋진 스승이 되고 싶거든요. 다 그 친구들 덕분이에요. 그때는 참 귀여웠는데 지금은 나이가 많이 먹어서 귀엽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이야기가 조금 샜지만 어쨌든 그때 당시의 기억이 저를 항상 넥스트를 생각하게 합니다. 현재 하고 있는 그림의 오답정리를 하게 하고,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저와 타인의 강점이나 약점을 더욱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합니다. 한 그림, 캔버스의 완성을 함께하거나, 혼자 완벽하게 해내고 나면 그제야 우리는 다시 하얀 캔버스로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게 되죠.
완성하는 동안에는 홀로하든 함께하든 정말 너무 힘들어요. 누군가를 업고 가야 할 때도 있고 혹은 제가 짐짝처럼 느껴져서 자존감에 제대로 일을 수행하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어떻게든 그렇게 완성하고 나면 우리는 성취라는 달콤한 열매와 보상을 받고 한 템포 쉬고 나면 더욱 근사하고 훌륭한 다음 작품을 향해 달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열매와 보상이 우리가 생각하던 것과 다를 수도 있어요. 그래서 항상 다음을 생각할 때는 방향성 설정도 중요한 것이지요.
최근에 인테리어로 네이버 리빙 메인에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아주 큰 영광이고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그렇게 되고 며칠 뒤에 바로 저는 블로그의 메인 글감을 디자인/예술로 변경합니다.
어쩌면 제가 인테리어로 계속했으면 리빙 인플루언서로 쉽게 성공(?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것은 제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에요. 제가 블로그를 하고 네이버 리빙 메인에 오른 것은 저의 목표를 향한 수단일 뿐이지 제 삶의 목표는 아니었거든요.
뭐 더 크게 가자면 저의 삶의 목표는 그저 제 가족을 누일 수 있는 집과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경제력. 아늑함과 다정함을 가진 성정, 상식과 교양이 있는 지식인입니다. 정말로 그게 저의 최종 삶의 목표예요. 죽음조차 눈물이 아닌 즐거움과 따뜻함이 가득한 장례식이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30대인 지금, 저는 좀 더 예술적이고 공공적인 업무를 하고 싶습니다. 문화와 나눔이 공존하고 미적인 아름다움이 충만한 세상을 그려요.
이게 저의 목적이고 제가 하는 블로그, 브런치북, 인스타는 모두 그저 수단일 뿐이에요. 제가 혹시 어딘가에 회사에서 일한다고 하더라도 그 회사는 저에게 목적이 아닌 수단입니다. 무엇인가를 함께 배우고 나아가겠지만 저의 꿈은 더 멀리 있어요. 항상 먼 곳을 바라보면 세상은 넓게 보이고 현실의 좁은 답답한 원룸마저도 더 이상 저를 가로막을 수 없죠.
제가 한창 나만의 브랜드를 제작해야 한다라고 했을 때 저는 본가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처지에 모든 짐들이 박혀 있는 서울 작은 원룸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고 온라인 강의를 듣고 외주를 받습니다. 물론 회사도 다니구요. 많은 이들이 그렇게 자신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지지 않게 잘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내고 싶어요.
제가 그랬듯이.. 누군가에게 가이드가 되고 저 또한 그들의 힘을 받는다면 저는 더 잘 해낼 수 있겠지요.
저는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PS.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만큼 지금의 저의 심정을 대변해 줄 수 있는 곡은 없을 것 같네요. 정말 명반이자 희대의 명가수 입니다. 이런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