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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record Aug 09. 2023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엘리멘탈]

브랜딩, 인공지능, 저작권 문제에 관한 상념

디자이너의 속성을 따라 걷다 보면
결국 직업을 떠나
사람은 모두가 디자이너이다.

스스로를 설계하고 취향을 고르며
철학을 찾는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한 것 같다.
인간인데 계속 더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나는 이미 디자이너였지만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고
내가 디자이너임을 공부하고 생각해야 했다.



위 문구들은 제가 디자이너 일기 맨 마지막 일기, [모두의 디자이너]에서 발췌해 온 문구입니다. 






이제는 또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결국 직업을 떠나 사람은 모두가 예술인이라고.


요즘은 그래요. 요즘은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고 물건을 판매할 수 있고 자신을 브랜딩 하여 시장에 내놓을 수 있어요. 아이디어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플리마켓 등 많은 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렇게 계속해서 작은 사장님들이 늘어나면 우리나라는 더욱 부강해질 수 있겠죠? 저는 그렇게 믿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좋은 방향으로 잘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잘된다고 해서 제가 나아가려는 방향성에 파이가 주는 게 아니에요. 세계를 무대로 하고 우주를 무대로 한다면 모두가 잘되는 것이 더욱 유리한 일입니다. 경쟁하려 하지 않고 공생하려 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방식의 전혀 다른 문제해결력을 갖추게 될 거예요.






요즘 많이들 대두되는 문제가 하나 있어요. 인공지능 저작권과 그걸 사용하는 사용자 간의 문제 그리고 많은 저작권의 사용 방식에 대한 표절문제. 디자인과 예술인들의 영역이 침범받는다는 그런 무서운 기사들이요.


음.. 하지만 저는 꼭 그렇게 생각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한 어떤 경쟁도 인간이 나아가려는 방향성의 파이가 주는 것은 아니에요. 인공지능이 늘고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다고 해서 인간의 입지가 사라진다고 생각해 본 적 정말 한 번도 없습니다. 사람은 더욱 편하게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취향을 표현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더 건강한 방식으로요. 과거에 많은 기술과 혁명들이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주었듯이요.






하지만 원래 인간이란 새로운 것에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기 마련이에요. 그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이 최초의 불을 무서워했고 다른 곳에서 온 최초의 인간들을 두려워했듯이 인간은 원래 그래요.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리는 어떻게 불을 안전하고 잘 활용할 수 있을지 씹고, 뜯고, 맛보며 알아가게 되는 것이죠. 지금의 인공지능 chat GPT, 달리, 자율주행 등등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잘 활용한다면 우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미아이기 이전에 당연히도 한국 이름을 가진 한국인입니다.


저는 자잘한 기억을 잘 못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이메일 주소조차도 간단하게 만들고자 한 것이 그냥 제 이름을 영문으로 치게 됩니다. 구글 이메일은 더 웃기게도 문 여는 법이라는 ID예요.

쉽게 기억하려고 하다 보니 제 이름을 쓴다.. 이것이 바로 브랜딩 아닐까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아이디에 생년월일을 꾸역꾸역 넣어요. 그래서 옛 코난 같은 추리 소설들을 보면 금고의 비밀번호는 사랑하는 이의 생일이거나 하는 일이 빈번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주민등록번호가 있고 여권번호가 있고 저 자신을 인증해 줄 코드가 필요한 것이에요. 세상 하나밖에 없는 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서류상으로 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저는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누군가에겐 황당한 일일수도 있어요. 아니 내가 이렇게 버젓이 존재하는데 출생신고 좀 안 했다고 없는 사람이 됩니까?라는.. 하지만 세상이 그래요.


철학에 이런 말이 있죠. 



If a tree falls in a forest and there's nobody around, does it make a sound?

만약 숲 속의 나무 하나가 쓰러졌는데 아무도 그걸 몰랐다면, 그 나무는 쓰러지는 소리를 냈다고 할 수 있는가? 

조지버클리_유아론




다소 철학적이다 못해 지나치게 아리송해지죠?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자주 곱씹고는 했어요. 제 존재에 대해서.






제가 여기 살아있고 살아갔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겠구나. 원래는 내적 자존감은 또 센 편이라(제가 최 씨 고집이거든요) 누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내 작품을 제대로 보지 못하더라도 나는 이미 내 가치를 알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하거나 누구한테 평가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니에요. 많은 대가조차 그들을 인정해 주는 팬, 평론가들이 없다면 그는 그냥 무명의 작가, 예술가, 가수 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블로그에 기록을 하고 브런치에 글을 남기기로 결심한 것이에요. 브런치 북을 만든 것도 정말 책을 내고 싶은 욕심에서였어요. 인정받고 싶었거든요. 사회적으로.


물론 저는 이미 저 자신 그대로 완벽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는 추호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사회라는 것이 그렇더라고요. 그리고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어요. 나를 더 열심히 브랜딩 해야겠구나. 사람들이 더 이해하기 쉽게 적어야겠다.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하니까, 저를 어렵게 표현하기보다 쉽고 단순하게 표현하되 저의 신념만큼은 깊이 있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구나. 많은 컨텐츠들을 접하면서.






만약 세상이 정말 더 발전하여 저와 똑같은 아바타를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과연 그는 정말 저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네. 저는 그렇다고 믿어요.

제가 더 이상 어떤 일을 수행하기 어려울 때 그 아바타가 대신 그 일을 수행해 준다면 저는 감사할 것 같습니다. 인간의 존재나 존엄성, 인권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겠지만 그것을 통해 제가 세상에 남기고자 했던 것들을 이루어 나가 준다면 저는 좋을 것 같습니다.


음.. 그것은 자식을 낳는 것, 유전자를 전달하는 것과 결국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자연적인 형태는 아니겠지만요. 


저는 초등학교인가 중학교 초 시절에 혼자 이런 생각을 해요. 언젠가 어른이 되면 입양을 해서 아이를 제대로 양육시키고 싶다. 어린 나이에 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당시 저는 부모를 믿지 못하는 평범한 사춘기 소녀였고 그들보다 제가 양육에 능할 것이라 자신합니다. 그래서 제가 낳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를 키운다면 분명 그들이 저를 키운 것보다 더 훌륭히 키울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죠.


참 귀여운 사춘기 친구죠?




그런 의미에서 저의 사상, 저의 생각, 저의 가치관을 가진 기계 혹은 캐릭터, 아바타, 영상 무엇이든지 저를 대체해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죽음조차 두렵지 않고 때때로 지금 순간순간의 저의 생각과 담대함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미아. 그리고 홍인. 네 저의 이름은 홍인입니다. 한자가 지금은 바뀌었지만 원래 친할아버지가 살아생전 지어주셨다는 한자는 넓을 홍, 어질 인입니다. 재밌죠?


왜 재밌냐고요? 제가 어릴 때 홍익인간으로 얼마나 놀림받았을지 그냥 상상이 가잖아요.

그래서 어릴 때는 이름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습니다. 최 씨라서 안 그래도 뒷 번호 인 데다가 이름도 놀림받고. 그래서 혹여 아이가 생기면 세상에서 제일 평범한 이름으로 지어줘야지 하고 생각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큰 뜻도 모르고...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자 네. 바로 그게 저 미아예요. 저는 너무 작고 힘이 없는데 이름의 무게가 짓눌려 올 때가 많네요.


하지만 저는 이제는 알아요. 혼자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많은 고양이 손들을 빌려 저의 문제도 다른 사회의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들이 떠올라요. 저는 모든 곳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곳에 전문가들이 얼마나 힘들게 그곳에 올라갔는지는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존경하거든요. 


그런 모든 이들에게 항상 감사하며

오늘도 긴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저를 이 자리에 이 글을 쓰게 해 주신 모든 분들께.

때로는 친구, 때로는 스승, 때로는 부모, 때로는 연인의 모습으로 저를 길러주신 모든 분들께...







PS

과거 정말로 사실은 인간은 인간에게 구원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일 뿐이라고. 타인은 오로지 서로를 위해 보살펴주고 응원해 주고 다정한 말 한마디만이 남겨줄 수 있을 뿐이겠죠. 그뿐이지만 그 모든 것들이 모여 구원이 될 수 있다고 지금은 믿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인간은 인간에게 구원이 될 수 있겠지요. 비록 그것이 정방향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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