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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Aug 16. 2021

우리는 무슨 사이니?

나에게 관심이 있기나한 거니?내 강아지들아!


평화롭게 잠든 강아지들을 보면 나는 궁금해진다. 이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어째서 나를 이토록 믿고 깊게 잠들 수 있을까. 한 번씩, 혹은 그 이상 버려진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어째서 나를 믿는 것일까. 잠시 감상에 젖어 강아지들의 등을 살살 쓸어내리면 두 녀석은 반쯤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고는 다시 잠드는 것이다. 그만 귀찮게 하라는 눈빛에 나는 슬그머니 손을 거둔다. 봄이를 만난 지 십 년이 되었고, 꽃님이를 입양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우리는 서로 맞추어 가며 가족이 되었다. 


최근, 나는 불면증 때문에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일이 늘어났다. 시계를 보지 않으려 해도 자꾸 눈을 떠서 시간을 확인하며 ‘아, 잠들어야 하는데! 제발 잠이여 오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눈을 감고 잠을 청해봐도 쉬이 잠이 오지 않는 밤들이 이어진다. 평소에 하지 않던 운동을 해봐도, 술을 마셔도 오라는 잠은 오지 않고 정신만 또렷해지는 것이다. 이런 날이면 꽃님이의 코골이는 유독 더 귀에 꽂힌다. 결국 나는 몸을 일으켜 꽃님이를 안고 말한다. “꽃님아, 오늘은 코를 좀 덜 골아주면 안 될까?” 나의 간절한 부탁에도 꽃님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코를 골고 마는 것이다. 나는 회유를 포기하고 조용히 베개를 안고 거실로 나가 소파에서 잠을 청해 본다. 그러면 곧이어 봄이와 꽃님이는 나를 따라와 가뜩이나 좁은 소파에 누워 다시 코를 골며 잠을 자는 것이다. 결국 나는 다시 베개를 안고 침대로 이동한다. 다시 나의 강아지들은 나를 따라 침대로 온다. 매일 새벽 침실에서 거실로, 다시 침실로 이동을 하며 잠을 자는 우리들이다. 


며칠 전, 나의 계속되는 뒤척임에 꽃님이는 불편함을 표하며 일어나 앉아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침대를 내려가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멀리서 꽃님이의 신나는 코골이 소리가 들려왔다. 조명을 켜고 봤더니 꽃님이는 나를 피해 옷방에 혼자 들어가 잠을 자고 있었다. 하, 이때의 배신감이란! '나는 지난 1년 반 동안 너의 코골이를 다 참아주었는데, 너는 나의 불면을 참지 못하는 것이냐.' 하지만 신나게 코를 골며 곤히 잠든 꽃님이가 너무 귀여워 나는 불평을 하지 않았다.  


침대에 누운 지 두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냉장고를 열어 맥주 한 캔을 꺼내 마셨다. 빨리 잠들고 싶은 마음에 가장 도수가 높은, 그래도 5도가 넘지 않는 맥주를 마셨다. 심지어 한 캔을 전부 다 마시지도 못하고 너무 빨리 오른 취기에 당황해서 바로 침대로 가서 누웠더랬다. 심장이 콩닥거리고, 숨을 거칠게 내뱉으면서도 잠은 오지 않았고 나는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서 몇 발자국을 뗐는데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지면서 뒤통수를 벽인지, 문틀인지에 박고 엎어져서 한참을 누워있었는데,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던 두 녀석 중 한 녀석도 나의 안부를 물으며 내게 달려오지 않았다. 바닥에 엎어져서 꽃님이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니 내가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맥주 한 캔에 인사불성이 된 것도 우스꽝스러웠고 그 와중에 잠은 오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에는 가고 싶었으니까. 내가 넘어지면, 내가 다치면 나를 걱정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이 녀석들이 나의 상태에는 관심이 없는 상황에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비척비척 걸어갔더랬다. 


꽃님이는 요즘 편식을 한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맛없는 사료도 세상 맛있게 먹었던 아이인데 이제는 사료에 있는 맛없는 부분, 브로콜리나 콩 같은 것은 뱉어내고, 간식도 가려먹는다. 나는 매번 아이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실험적으로 간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꽃님이가 뱉어놓은 사료를 치우면서 나는 조금 뿌듯해진다. 꽃님이가 더 이상 버림받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편식을 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봄이는 나보다 꽃님이를 더 졸졸 따라다닌다. 셋이 집안에 있으면 봄이는 내 옆에 앉아 있기보단 꽃님이 옆에 딱 붙어 앉아있는다. 내가 불러도 오지 않고 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만 있으면 ‘하! 십 년 세월이 이렇게 무상한 건가’ 하다가도 꽃님이에게 의지를 하는 모습이 귀엽다.   


얼마 전, 아이들의 건강검진에서 봄이는 희귀 심장병 진단을 받았다. 어릴 때 어떤 질병을 앓았던 것인지 폐 한쪽이 없고, 그 자리에 심장이 비대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심장 기능이 현저히 떨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희귀 심장병이지만 다행히 약으로 관리가 가능하다. 나의 또 다른 걱정은 봄이에게 약을 어떻게 먹이지 하는 좀 더 현실적인 일이었는데, 이는 꽃님이로 인해 생각보다 쉽게 해결이 되었다. 입이 짧은 봄이는 밥도 잘 먹지 않고, 간식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면 먹지 않았고, 약은 봄이가 제일 좋아하는 삶은 고구마에 숨겨서 줘도 귀신같이 약만 뱉어놓는 아이였는데 요즘은 하루에 두 번 심장병 약을 먹일 때면 꽃님이가 옆에 와서 “나도! 나도! 나도 약 줘!”하며 고개를 들이대면 봄이는 뺏길세라 세상 맛있게 약을 받아먹었다. 매일 꽃님이를 졸졸 따라다니면서도 꽃님이에게 먹을 것을 양보하긴 싫은 마음 씀씀이라니. 역시 새침데기 봄이다. 


꽃님이는 무언가 불만이 있으면 나 몰래 아무 데나 오줌을 갈겨두는 것으로 나에게 소소한 복수를 하는데, 비가 계속되어 산책을 못한다거나, 목욕을 한 날에 특히 그런 행동을 한다. 이제는 화도 나지 않고, 꽃님이가 오줌을 갈겨두면 조용히 카펫을 세탁하고, 바닥을 청소하며 이 아이를 열 받게 한 나의 행동을 반성한다. 그런데 꽃님이가 목욕을 하고 혼자 집안을 뛰어나며 열 받음을 표현하다가 내가 보는 앞에서 카펫에 오줌을 쌌다. “앗! 안돼!”라고 외치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다 짜내어 오줌을 싸고는 총총 사라졌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방금 지나간 상황에 황당해하다 얼른 휴지를 가지고 와서 꽃님이의 오줌을 닦아내고 있는데 갑자기 봄이가 해맑은 표정으로 뛰어오더니 꽃님이가 오줌 싼 자리 바로 위에다가 오줌을 싸는 것이다. “으악!” 봄이는 한 번도 이렇게 소변 실수를 하지 않았던 아이인데! “너네, 나를 대체 뭘로 알고 이러는 거야!” 나의 절박한 외침들은 이내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내가 카펫을 걷어 세탁기에 넣고, 바닥을 청소하는 동안 이 두 녀석은 소파에 나란히 누워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오줌을 싸는 것으로 불만을 표현하면 미안해하며 산책이든 간식이든 원하는 것으로 보상을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맛없는 음식을 남겨도 억지로 먹이려 하지 않고 조용히 치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내가 넘어져서 바닥에 누워있어도 곧 알아서 일어날 사람이라고 믿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에게 이 아이들은 어떤 존재일까. 내 오랜 불면의 밤을 함께 하고, 게으른 나를 부지런히 청소하게 하고, 집순이인 내가 하루에 한 번씩은 산책을 해 조금 더 건강한 몸으로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게 해주는 가족일 테지. 우리는 이런 사이인 거지. 때론 짜증 나고, 때로는 소중한 가족 사이. 누가 뭐래도. 



잘 때마다 치열한 자리싸움! 
참 나, 나만 빼고 둘만 다정히 손잡고 있을 거야?
목욕 후, 개 화남을 표현하는 모습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오줌 싸기 ㅠ 다급한 카메라 앵글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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