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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Jan 22. 2021

코골이 개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사람보다 더 우렁차게 코 고는 강아지.



강아지도 코를 곤다. 푸들인 복길이는 코를 잘 골지 않았고, 몰티즈인 봄이도 코를 잘 골지 않았다. 그러나 복길이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코를 고는 일이 늘어갔고, 봄이도 가끔씩 코를 골았다. 이들의 코 고는 소리는 나의 숙면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고 쌔근쌔근 숨소리가 오히려 백색소음 역할을 해서 나의 숙면을 도왔다. 한동안 코를 골지 않으면 제발 코 좀 골아달라고 사정하는 일도 있었다. 오히려 나의 코 고는 소리가 이들의 숙면을 방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일찍이 알고 있었다. 강아지도 코를 곤다는 사실을. 


몇 년 전, 명절에 강아지들과 부모님 집을 찾았을 때의 일이었다. 가족들과 안방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복길이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이었던 사촌동생이 작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복길이가 코를 골아!"

"개가 무슨 코를 골아. 복길이가 코 고는 거 아니야. 거실에서 큰 아빠가 코 고는 소리야"

나는 웃음이 나왔다.

"작은엄마. 복길이가 코 고는 거 맞아요."

개도 코를 곤다는 사실을 몰랐던 작은 엄마와 사촌 동생은 놀라워했는데, 꼭 사람이 코를 고는 것 같다고 말이다. 


꽃님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꽃님이를 보호소에서 구조하고 치료해서 임시보호를 하고 있던 구조자님이 나에게 말했다. 꽃님이가 코를 곤다고. 본인은 잠귀가 밝아서 잠을 잘 못 잤다고. 그 말에 나는 자신 있게 대꾸했다. 우리 봄이도 코를 골고, 나도 코를 골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잠귀가 어두워서 한번 잠들면 아침까지 잘 깨지 않는다고. 그러나 내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나는 베개에 머리를 대면 바로 잠드는 사람이 아니라 삼십 분 정도는 뒤척여야 겨우 잠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낯선 환경에 놓여 많이 불안했을 꽃님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날부터 우렁차게 코를 골았는데 나는 그 모습이 마냥 귀여웠다. 새로운 집이 낯설어서 눈치를 보며 걸어 다니면서도 눈만 감으면 바로 시동을 걸고 코를 고는 모습에 첫날부터 꽃님이에게 푹 빠졌다. 꽃님이가 얼마나 우렁차게 코를 고냐면, 꽃님이가 소파에 누워 코를 골기 시작하면 나는 티브이 볼륨을 높여야 했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일주일에 세 번 전화영어를 하는데, 나의 전화영어 선생님인 Jake는 꽃님이의 코 고는 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리지 않으면 꼭 꽃님이는 지금 무얼 하느냐고 물어본다. 가족들과 통화를 할 때도 꽃님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면 아무리 심각한 이야기가 오가는 중이라도 이내 웃음이 터지고 만다. 


몇 달 전부터 꽃님이의 코 고는 소리가 더욱 우렁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침대에 올라가 잘 준비를 하면 봄이와 꽃님이도 함께 올라와 자는데 어떤 날은 한 시간 넘게 뒤척여도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꽃님이를 끌어안고 내가 잘 때까지만 코를 골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도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나를 쏘아보고는 다시 우렁차게 코를 곤다. 혹시 집안이 건조해서 코골이가 심해진 건가 해서 가습기를 틀어놓아도 꽃님이의 코 고는 소리는 작아지지 않았다. 결국 아이들 심장사상충 약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 원장님께 꽃님이 코골이가 너무 심하다고 하소연하며 꽃님이가 코 고는 동영상을 보여드렸더니 원장님은 흠칫 놀라셨다. 이토록 심하게 고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결론은 다이어트였다. 구조적으로 코를 심하게 경우에는 수술을 해볼 수도 있지만 우선은 입양 당시보다 불어난 꽃님이의 몸무게가 원인일 수 있으니 다이어트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얼마 전, 꽃님이를 입양한 이후 부모님께서 우리 집을 처음 방문하셨는데, 다 함께 점심을 먹다가 꽃님이의 코 고는 소리에 아빠가 놀라셨다. 

"꼭 사람맨키로 코를 고네"

결국 그날 밤, 아빠는 꽃님이의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

내 강아지들과 5일을 함께 지내고 난 후 엄마는 나에게 물었다.

"자가 저래 코를 골아대는데 니는 밤에 우에 자노?"

아빠보다 더 심하게 코를 곤다며 꽃님의 코 고는 소리를 평가하기도 했다.


봄이는 귀가 무척 밝은 편이라 잠을 자다가 약간의 소음에도 눈을 뜨고 무슨 일인가 쳐다보는 아이인데 꽃님이가 아무리 시끄럽게 코를 골아도 바로 옆에 기대서 잠을 잔다. 내가 핸드폰을 테이블에 올려놓는 소리, 컵에 물을 따르는 소리에도 눈을 가늘게 뜨고서 왜 시끄럽게 하냐며 눈총을 주는데 그보다 몇 배나 시끄러운 꽃님이에게는 한껏 아량을 베푼다. 그럴 때면 나도 눈을 가늘게 뜨고 눈빛으로 대꾸한다. ‘나 별로 안 시끄러웠든! 너는 왜 나한테만 이렇게 싸가지가 없니?’ 소파에 기대앉아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꽃님이가 코를 골지 않으면 나는 슬그머니 뒤돌아본다. 이내 꽃님이가 숨을 몰아쉬며 코를 골기 시작하면 다시 고개를 돌려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꽃님이가 없었다면, 봄이와 나만 있었다면 적막했을 우리 집은 항상 꽃님이의 코 고는 소리로 채워지고 있다.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꽃님이의 코 고는 소리가 줄어들면 나는 꽃님이에게 부탁할지도 모르겠다. 가끔씩은 우렁차게 코를 골아달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이어트에 성공해야 할 텐데. 우리 앞에 놓인 길이 참 멀고도 험해 보인다.  



자는데 자꾸 깨우지 말라개



아 뭐 왜! 시끄러우면 니가 다른 데 가서 자던가! 깨우지 말라니까.


꽃님이가 코를 골아도 함께 자는 봄이


맘껏 코골개. 나의 꽃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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