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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Oct 03. 2021

고구마 시즌의 강아지

개도, 사람도 살찌는 계절.




부모님이 보내신 고구마 한 박스가 도착했다. 바로 캔 고구마는 수분을 머금고 있기 때문에 신문지를 깔고 이틀 정도는 말려야 한다. 서둘러 박스를 열고 몇 개를 씻어 바로 냄비에 쪘다. 그리고 바로 방 한구석에 신문지를 깔고 고구마를 펼쳐두었다. 나도 고구마를 무척 좋아하지만 우리 집에는 나보다 고구마에 진심인 녀석들이 있다. 나의 강아지들이다. 택배 박스에 고구마 들었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 집 강아지들은 빙글빙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찜통에서 고구마 냄새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이들은 부엌을 떠날 줄을 모른다. 이 날따라 봄이는 주방에 가만히 앉아 고구마가 다 쪄지기를 기다리는데 꽃님이는 이상하게도 텐트에 앉아 내 눈치만 살피고 있는 것이다. 고구마가 익기를 기다리며 당근 마켓에서 만천 원주고 구매한, 이케아 텐트 안을 정리하기 위해 꽃님이를 텐트 밖으로 내보내고 아이들 장난감을 정리하고, 담요를 펴고 있는데 꽃님이가 숨겨둔 고구마 하나를 발견했다. 내가 고구마를 씻고 냄비에 올리는 사이 꽃님이는 박스에 있던 고구마 하나를 물고 텐트로 들어가 먹으려고 시도하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담요 밑에 숨겨두었던 것이다. 고구마에 난 이빨 자국도 귀여웠다. 


고구마가 먹기 좋은 온도로 식기를 기다려 몇 개를 접시에 담아 테이블로 가져왔다. 내가 함께 먹을 우유도 한잔 준비했다. 봄이와 꽃님이는 내 양 옆에 앉아 내가 얼른 고구마 껍질을 까기를 기다린다. 이내 고구마 껍질을 벗겨 나도 먹고, 아이들이 먹기 좋게 잘라 양 옆에 앉은 아이들에게 하나씩 주었다. 티브이를 보면서 우리는 고구마를 맛있게 먹는다. 아무래도 먹는 속도가 고구마 껍질을 까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달려들지 않고 차분히 앉아 고구마를 기다린다. 까는 속도가 느리면 느릴수록 꽃님이의 입 주변에는 달랑달랑 달린 침의 길이가 길어진다. 마침내 고드름처럼 길게 달린 침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카펫에 꽃님이가 떨어뜨려놓은 침이 점을 찍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냈다. 엄마는 꽃님이에게 왜 고구마를 안 주냐며 나를 나무랐다. 쳇, 나도 먹어야 하는데, 우리 다 같이 사이좋게 먹고 있는데. 엄마는 나보다 개 손주들이 고구마를 맛있게 먹는 게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가을은 풍성하다. 숨 막히게 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선들한 바람이 부는 날씨도 좋다. 가을이 깊어지면 곧 긴 겨울이 올 것이기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아니지만 이런 환상적인 날씨와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고 다디단 고구마와 사과를 얻을 수 있는 가을을 아니 좋다 말할 수 없다. 아마 우리 강아지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사과도 우리는 함께 나누어 먹는다. 아이들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나눠주면 두 녀석은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는다. 나도 그들과 함께 아삭아삭 사과를 먹고 다디단 고구마를 나눠먹는 가을 저녁이다. 


고구마 시즌이 되면 봄이와 꽃님이는 조금씩 살이 찐다. 물론 나도 그들과 함께 살이 찌고 있다. 열심히 먹고 살을 찌워서 함께 뺄 계획이므로 크게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추석 전에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고구마를 다 먹기도 전에 엄마는 또 고구마 한 박스를 보내셨다. 셋이 먹으면 금방 먹는다며. 그래서 우리는 요즘 매일 고구마를 먹는다. 그리고 꽃님이는 매번 고구마를 보면 침을 흘린다. 나는 꽃님이의 입주변에 달린 침이 달랑거리면 서둘러 고구마 껍질을 벗긴다. 




아지트에 몰래 숨겨둔 고구마 발견!



고구마를 껍질을 벗기는 동안, 바닥에 떨어진 꽃님이의 침.



고드름처럼 달린 침도 귀여운 꽃님이.
고구마 먹고 살쪄서 몸통이 커진 꽃님이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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