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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Dec 19. 2021

새 관찰이 취미인 강아지.

마! 우리 조상이 새 잡던 개 아이가!



카발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면 ‘조렵견’이라는 정보가 뜬다. 나의 강아지, 꽃님이는 카발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이다. 견종을 나누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나이지만 꽃님이를 보면 영국의 너른 들판 어딘가에서 새를 잡던 강아지의 후손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산책 중 새소리가 들려오면 꽃님이는 잔뜩 흥분한다. 새와 놀고 싶어서 흥분을 하는 것인지, 새를 잡고 싶어서 흥분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새소리에, 빠르게 눈앞을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에, 또는 강에서 유유히 목욕을 즐기는 오리 떼에 흥분하는 것이다. 


문과생인 나는 DNA의 특성에 대해 잘 모르지만 꽃님이를 보면 유전자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꽃님이의 조상이 언제 영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것인지 짐작할 수 없지만 꽃님이는 여전히 새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움직여가며, 눈으로는 새를 찾는다. 날이 좋은 날에 거실 창을 열어두고 각자 낮잠을 즐기고, 책을 읽는 평화로운 날에 건너편 아파트 지붕에 새가 날아올랐다가 앉아서 울고 있으면 꽃님이는 바로 베란다 창으로 가서 새를 구경하는 것이다. 


꽃님이를 입양하고 얼마 되지 않은 주말 낮에 강아지들과 함께 산책을 하던 중, 새소리를 들은 꽃님이가 전속력을 뛰는 바람에 나와 봄이는 영문을 모르고 끌려다닌 일이 있었다. 꽃님이의 세상은 호기심으로 가득했고, 세상의 모든 새에 대한 호기심이 특히 대단하다. 이런 꽃님이를 위해 넷플릭스에서 새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틀어주면 꽃님이는 티브이 속의 새에 집중하다가도 집안에 새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 집안을 탐색하고 다닌다. 


부모님은 닭을 키우시고 그 닭들이 낳은 달걀을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시는데 가끔 족제비들이 닭장을 훼손하고 닭을 몰살시키는 일이 있는데 그럴때면 직접 병아리를 부화시키곤 하신다. 그럴 때 시골집을 방문하면 아직 닭장에 들어갈 수 없는 병아리들을 거실 한편에 박스에 넣어 일종의 유치원처럼 키우는데, 꽃님이는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런 모습이 신기해서 병아리 한두 마리를 꺼내 주면 킁킁 냄새를 맡아보는 것이다. 평화주의자 꽃님이가 그들을 공격한 적은 없음은 물론이다. 


지난봄, 집 근처 강변을 산책하다 오리 두 마리를 발견했더랬다. 한 부부가 오리 두 마리를 강가에 내어놓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훈련을 하던 중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그 부부는 몇 달 전 이곳을 산책하다 죽어있는 오리 옆에서 오리알 두 개를 발견했고, 그것을 집으로 가져가 부화를 시켰고, 시간이 될 때마다 자연으로 돌려보낼 준비를 하기 위해 이곳에서 훈련을 하고 계셨다. 가까운 곳에서 헤엄치는 오리를 보자 꽃님이는 잔뜩 흥분했다. 시선을 떼지 못하고 계속해서 오리를 관찰했고, 길을 가던 사람들은 강아지가 무엇을 저토록 집중해서 보는가 하여 다들 발걸음을 멈추고 오리를 구경하는 꽃님이를 구경했더랬다. 오리가 이쪽으로 가면 꽃님이도 이쪽으로 가고, 오리들이 저쪽으로 가면 꽃님이도 부리나케 저쪽으로 달려갔다. 그 덕에 나와 봄이도 함께 이쪽저쪽으로 부지런히 움직였더랬다. 그분들이 오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자 꽃님이도 아쉬워하며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큰 비가 오고 나면 집 근처 작은 시냇가에는 다양한 새들이 모여들었다. 그런 날에는 꽃님이를 달래기가 힘들다. 아무리 목줄을 당겨도 그 꽃님이는 작지만 다부진 몸으로 버티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새들에게 관심이 없는 봄이는 지겹다는 듯이 멍하니 서있고, 나도 그런 봄이 옆에서 꽃님이의 목줄을 잡고 함께 서있어야 한다. 이십 분이든 삼십 분이든 본인이 만족할 만큼 구경을 하지 않았다는 판단이 들면 꽃님이는 절대 집으로 가지 않는다. 그쯤 되면 나도 포기한 채로 꽃님이와 함께 새를 구경하는 것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쓴 정세랑 작가의 취미가 새 관찰이라고 했던가. 나도 꽃님이와 함께 새 관찰을 하다 보면 언젠간 정세랑 작가처럼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 이내 내 머릿속에 펼쳐지는 것이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에는 다양한 새를 보기가 힘들다. 저녁 산책은 물론이고, 주말에 하는 낮 산책에도 말이다. 눈이 내려 차가운 조용함이 가득한 이런 날에 새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 것일까. 꽃님이는 산책을 할 때마다 새를 만나기를 기대할 텐데 말이다. 오늘은 꽃님이를 위해 넷플릭스에서 새가 잔뜩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지겹도록 틀어줄까. 다시 초록의 이파리들이 피어나는 계절이 오면, 나뭇가지마다 새들이 내려앉아 마음껏 노래를 부르는 그런 날이 오면 나도 꽃님이 옆에 앉아 새 관찰을 해볼까. 꽃님이의 세상이 호기심으로 가득하다면, 나의 세상은 호기심으로 가득한 꽃님과 무관심한 봄의 행복을 관찰하는 즐거움으로 가득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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