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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Sep 30. 2019

안녕 나의 복길

우리의 작별의 날




그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았다. 15년을 함께 한 내 강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왜인지 기분이 좋았다. 내 옆에 누워 함께 기지개를 켜던 또 다른 강아지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날씨는 맑았고 집안은 고요했다. 오랜만에 누려보는 주말의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복길이는 나이가 많았다. 한 살이 되던 해에 나를 만났고 나와 15년을 함께 살았으니 이제 16살이었다. 누가 봐도 노견이었다.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었지만 복길이는 건강했다. 그녀가 어렸을 때 나와 그녀는 산책에 중독된 상태였다. 매일같이 두 시간가량 산책을 했고 그 덕분에 그녀의 뒷다리는 보통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푸들과는 다르게 탄탄한 근육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그때 당시에 내 허벅지도 흔히 말하는 꿀벅지가 되어있었다. 


그 15년 동안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직업을 갖게 되었으며, 오래된 연인과 헤어졌고, 다른 연인이 생겼다 사라졌고, 또 다른 강아지를  가족으로 받아들였고, 경주에서, 구미로, 분당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나의 모든 시간 속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같은 속도로 우리를 흘러가지 않았다. 내가 서른 중반이 되는 동안 그녀는 노견이 되어있었다. 두 시간의 산책에도 끄떡없던 그녀였는데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했고, 새까맣고 맑았던 그녀의 눈동자는 혼탁해졌고, 소나무 기둥처럼 짙은 갈색이었던 그녀의 털은 점점 연해져 갔으며, 목욕을 시킨 직후에도 그녀의 몸에서는 개 비린내가 났고, 내 발걸음 소리만으로 내가 오는 걸 알고 현관에서 기다리던 그녀는 내가 그녀를 만져줄 때까지 내가 집에 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랬다. 내가 한창 바쁘게 일하며 연애도 하며 내 인생의 나이테를 만들어가는 사이, 시간은 그녀를 너무나도 빠르게 노견으로 만들어버렸다.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했던 날들보다 함께 할 날들이 더 적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가 집안 곳곳에 배변 실수를 해도 나는 말없이 청소를 했고, 오줌을 밟거나 똥을 밟아도 나는 화를 내는 대신 그녀를 안아주었다. ‘너도 이러고 싶진 않았을 거라고, 나도 다 이해한다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머지않아 그녀를 보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고, 그 시간이 오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녀의 모든 이상 행동들을 노견이므로, 인지장애가 있다는 이유들로 나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넘겨왔다. 무더위가 시작되던 7월의 첫 주, 그녀는 밥을 먹지 않았고, 화장실도 가지 않았으며 그 때문인지 그녀의 몸은 점점 말라갔다. 내가 그녀의 이상행동들이 정말로 이상하다며 병원에 데려간 지 정확히 삼 일 후에 내 품에서 떠났다. 그녀를 입원시키고 온 날 밤에 나와 봄이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낙관하지도 않았다. 가족들에게 복길이의 입원 소식을 전하고 나자 실감이 났다. 눈물이 별로 없는 편이었지만 그날은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잠을 잘 수도 없었다. 혹시 내가 잠을 자는 사이에 그녀가 떠나버릴까 봐 핸드폰을 품에 안은 채로 쪽잠을 잤다. 다음날 병원을 찾았을 때, 그녀가 지난밤 사투에서 승리했으며 이제 희망을 가져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두 시간가량 그녀를 내 품에 안고 있었다. 팔은 저려왔지만 내 품에서 편안히 숨을 쉬는 그녀를 다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침보다 커진 희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아침, 기분이 좋았다. 커피 한잔을 내려 마시고 집안 곳곳을 청소했다. 평소엔 잘하지 않던 베란다 청소까지 마치고 나니 뿌듯함마저 느껴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복길이를 만나러 갔다. 그날의 복길이는 흉수가 별로 차지 않았고, 기흉도 많지 않았다. 다시 그녀를 안아 올리자 코까지 골며 내 품에서 잠을 자는 것이었다. 담당 선생님과 긴 논의 끝에 통원치료를 받기로 결정을 했다. 그렇게 그녀는 입원한 지 3일 만에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집안 곳곳을 돌아다녔고, 봄이는 그런 복길이를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서로의 냄새를 공들여 맡았고, 복길이의 표정은 한없이 밝았다. 얼마나 좋았던지 복길이는 잠시도 앉아있지 않고 계속해서 집안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에서야 나는 그녀가 그리 오래 걷는 일이 드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를 품에 안고 다시 병원을 향했다. 한 손으로 운전하며 나머지 한 손으로 그녀를 쓰다듬어주며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아직 나는,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의 고개가 내 팔 아래로 떨어졌고, 곧이어 내 옷 틈으로 그녀의 오줌이 새어들었다. 


그녀의 죽음을 병원에서 확인한 후, 혼자서 가까운 동물 화장장을 찾았고, 그녀를 담은 유골함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15년 동안 함께 했던 내 강아지가 죽었는데 나는 다음날 출근을 위해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병원에 가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지난 3일 동안 병원에 있었기 때문인지 그녀의 빈자리가 어색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유골을 시골집 과수원 한켠에 묻고 나서도 나는 그녀가 없다는 사실이 별반 와 닿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를 해왔었으므로, 내가 보통사람들보다 정이 없는 편이라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실은 나는 아직 그녀를 보내지 못했음을 요즘 들어 자꾸 깨닫게 된다. 그녀는 세 달 전에 나를 떠났지만 나는 아직 그녀를 잡고 있는 것 같다. 눈물이 없었던 나는 요즘 자주 울고, 자주 그녀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자꾸만 그녀의 옷을 꺼내본다. 경황없이 그녀를 보냈지만 우리에게 단 하루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그녀에게 차분하게 인사를 보내고 싶다. 


‘언제나 나를 지켜주던 나의 여전사, 항상 고마웠어. 너로 인해 내 이십 대, 삼십 대는 너무나 행복했어. 나와 봄이를 만나는 날까지 조금만 기다려줘. 그때까지 우리를 기억해주렴. 절대로 우리를 잊으면 안 돼. 나 또한 너를 잊지 않을 테니. 우리 서로 다시 만나면 그때 또 지칠 때까지 산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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