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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Jun 14. 2020

쌀을 사 먹는다고?

체리도 사 먹지 말라고!



“쌀을 왜 사 먹어?” 

집에서 가져온 쌀을 다 먹어서 쌀을 샀다고 이야기하면 엄마의 반응은 항상 이렇다. 집에 넘쳐나는 게 쌀인데 왜 사 먹느냐는 것이다. 집에 갈 시간이 없어서 쌀을 보내달라고 하면 엄마는 내가 굶주린 지 1년은 된 것처럼 가마니째로 보내기 때문에 택배로 쌀을 보내달라고 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처음 둘째 동생과 자취를 하던 시절, 쌀이 떨어졌다는 한마디에 부모님이 보내온 쌀은 무려 20킬로그램이었다. 좁아터진 원룸에 두기에 민망한 20킬로그램의 쌀포대에 우리는 망연자실했더랬다. 결국 햇빛도 잘 들지 않던 베란다에 두고 삼시세끼 쌀밥만 먹어도 쌀벌레가 생기는 속도를 쫓아가지 못했더랬다. 까만 쌀벌레들이 베란다 여기저기 기어 다니는 모습에 기함한 우리는 그 쌀을 내다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 엄마에게 쌀이나 김치를 보내달라고 할 때면 정확하게 보내야 할 양을 이야기해주었다. 쌀은 딱 한 봉지(위생봉투 기준)에 김치는 두 포기만, 사과는 다섯 알만 보내달라고 이야기를 해주어도 택배 상자를 열어보면 내가 말했던 한 봉지의 쌀은 아주 큰 비닐봉지 하나 가득(위생봉투에 나누어 담으면 족히 세네 봉지의 양이다), 보내온 김치를 합치면 배추 두 포기, 사과는 열다섯 알이 택배 상자에 가득 들어있기 일쑤이다. 그래서 이제는 쌀이 떨어지면 집에 가기 전까지 엄마 몰래 쌀을 사다 먹는다. 어쩌다 쌀이 떨어져서 사다 먹었다고 하면 엄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욕을 한다. 많이 가져가랬더니 왜 쌀을 사 먹는 거냐고. 김치를 한 두 포기 챙기는 나를 보면 김치냉장고를 사라고 한다. 그래서 한 번에 많이 가져가서 먹으라고. 저기요 어머니, 저 혼자 산다고요! 


한때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고구마만 먹을 거라고 선언했던 때, 당시 우리 집은 고구마 농사를 짓지 않았는데 내가 다이어트 식단으로 고구마만 먹겠다고 이야기하자 아빠는 “지랄한다”라고 했었다. 그렇게 말해두고서 그다음 해에 밭 하나 가득 고구마를 심어두었다. 이제 고구마는 물려서 잘 먹지도 않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집 밭에는 고구마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과수원 농사만 짓기에도 바쁜 그들인데 자식들이 먹고 싶다고 한 농작물을 매년 봄이면 심어두는 그들의 마음이 고맙다. 물론 가을이면 한 박스씩 보내오는 고구마는 3분의 1만 겨우 먹고 나면 모두 골아서(상해서) 버리는 못된 딸이지만 말이다. 한창 다이어트에 빠져있던 나는 또 철없이 이제는 흰쌀밥만 먹는 시대는 지나갔다면서 현미를 먹어야겠다고 한 봉지만 현미 도정을 해달라고 했을 때 아빠는 왜 현미 도정을 할 수 없는지 구구절절 이야기를 했었다. 보통 정미소에서는 한 가마니씩 쌀을 도정하는 게 기본이라 현미를 도정하게 되면 한 가마니를 도정해야 하기때문에 한 봉지만 도정을 할 수 없다고 했었다. 현미는 사 먹으라고 했었는데, 그 다음번 집에 갔더니 현미 한 가마니가 창고에 있었다. 내 앞에선 절대 안 된다고 하더니 결국 아빠는 또 나 외에는 먹지 않을 현미를 한 가마니나 도정해두었다. 물론 내가 가져다 먹은 건 위생봉투 한 봉지뿐이었는데 말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집은 6월이면 체리를 수확한다. 셋째 동생이 체리를 자주 사 먹는 걸 본 아빠는 이렇게 맛도 없는 걸 왜 사 먹냐고 툴툴거리더니 어디에선가 체리 나무를 구해와서 심어두었고, 매년 여름의 초입에 빨갛게 열린 체리를 수확해서는 우리들을 기다린다. 마트에서 사 먹던 수입산 체리보다 모양도 예쁘지 않고 크기도 작지만 그 맛은 수입산 체리와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제 마트에서 체리를 사지 않고 우리 집 과수원 한편에 있는 체리가 익기를 기다린다. 


친한 대학교 친구가 몇 년 전에 우리 집 과수원에 와서 일을 도운 적이 있었는데 부모님은 그 친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지 가끔 그 친구는 잘 있는지 물어보는데 한 번은 엄마가 물어보았다. 

“걔는 쌀은 사 먹는다니?”

“당연히 사 먹겠지”

“걔는 왜 쌀을 사 먹는대?”

이런 맙소사. 모두 우리 집처럼 쌀을 직접 재배해서 먹지 않는다고! 결국 부모님은 그 친구에게 쌀을 보내주었다. 쌀을 사 먹는 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부모님은 사과 과수원을 운영하시지만 사과를 드시지 않는다. 그저 맛이 들었는지 확인할 때만 사과를 한 알 드신다. 과수원에 있는 배나무에서 딴 배도 안 드시고, 체리도 안 드신다. 가을이면 할아버지께서 심어놓으신 감나무의 감을 따서 예쁘게 깎아 처마 밑에 매달아 놓고 하얀 분이 나올 때까지 곶감을 말린다. 그 곶감도 두 사람은 먹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집에 가면 한 봉지씩 싸주는 게 일이다. 참 신기하다. 두 사람이 먹는 과일은 집에서 기르지 않는 것들이다. 엄마는 참외를, 아빠는 청포도를 좋아하신다. 정작 본인들이 좋아하는 과일은 기르지 않고, 우리들이 좋아하는 것들은 정성껏 기르는 부모님이 참으로 신기하고 이상하다. 아빠는 엄마가 좋아하는 참외를 자주 사다주신다. 엄마는 가끔 우리에게 아빠가 잘 드시는 청포도를 사 오라고 부탁한다. 


며칠 전, 엄마가 체리를 보내주셨다. 택배를 받자마자 체리를 씻어서 맛을 봤는데 올해도 여전히 봉화산 체리는 달콤했다. 이 작은 체리들을 따기 위해 엄마는 몇 번의 노동을 했을까? 본인들은 먹지도 않을 체리를 심고, 체리가 익어가는데도 오지 못하는 자식을 위해 이 더위에 노동을 더해 바구니 가득 체리를 수확해 놓고 그들은 뿌듯했을까, 조금은 슬펐을까? 다디단 체리를 입에 넣으면서 조금은 울컥했더랬다. 엄마가 전화를 해서 욕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야 이년아, 너는 체리를 받았으면 전화를 해야 할 거 아니야? 맛있는지 맛없는지 전화해서 이야기는 해줘야지. 싸가지 없는 년” 

하아, 다음 달에 있을 이사 때문에 너무 바빠 정신이 없어서 엄마에게 전화하는 것을 까먹었더니, 역시 엄마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구나. 그치만 욕을 먹어도 아빠가 심고, 엄마가 딴 체리는 무척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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