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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Jul 26. 2020

결국 집을 샀다.

'30대 영끌'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30대 영끌’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부동산을 구매하는 30대를 이르는 신조어. 그 대열에 나도 함께 하게 되었다.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집을 산 이유는 부동산이 아니면 돈을 벌 수 없다는 절망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집주인이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을 팔겠다며 이사비와 복비를 지원해줄 테니 집이 팔리면 이사를 나갔으면 좋겠다는 의사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까짓것, 나와 강아지 두 마리가 지낼 전셋집이 없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에 쉽게 동의를 하고 전셋집을 알아보았더니 전세가 없었다. 그게 올해 2월이었다. 절망에 휩싸인 나는 부동산에서 집을 보러 와도 보여주지 말까? 하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2018년 9월에 분당에서 지금 살고 있는 이 동네로 이사를 오고 이제 좀 적응이 되어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었기에 이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자주 가는 반찬가게도, 이제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꿰고 있는 미용실이 있는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전세가 없는 상황에서(내가 원하는 금액대의) 이 동네에서 살기란 불가능했다. 우연히 24평형 아파트의 매매 가격을 보았고 전세가와 별 차이가 없었기에 매매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입주한 지 17년이 지난 이 아파트는 주변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신규단지들과 비교하면 가격이 저렴했고, 집을 알아보기 시작한 지 한 두 달 사이에 천만 원, 이천만 원씩 매매가는 급등하기 시작했다. 부동산에서는 기본 평형대인 32평을 구매해야 나중에 시세차익을 올릴 수 있다며 더 오르기 전에 계약을 할 것을 추천했다. 


내가 원하는 집의 조건은 고층일 것과 저렴할 것, 단 두 가지의 조건이었다. 아무래도 강아지를 키우기 때문에 저층이면 인기척에 강아지들이 많이 짖을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고층이길 바랐고, 많이 낡았다면 고치고 들어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집 값이 저렴해야 했다. 집이 구해지지 않아 시름이 쌓여가던 4월 초, 부동산 사장님이 급히 보여줄 집이 있다고 오늘이 아니면 볼 수 없을 거라며 시간 맞춰오라고 해서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서 집을 보게 되었다. 그때 당시 살던 집과 같은 층의 24평 아파트는 시세보다 저렴하게 나와있었다. 알고 보니 집주인 할아버지께서 1년 전에 세입자의 동의를 받고 집을 내놨는데 세입자가 그동안 집을 보여주지 않았던 터라 팔리지 않았던 집이었다. 할머니 혼자 사시던 집은 깔끔했고 손볼 곳이 많았지만 가격이 좋았기 때문에 나는 바로 계약을 했다. 집주인 할아버지는 집이 계속해서 팔리지 않자 부동산에 전화를 했고, 부동산에서는 세입자가 집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분노하신 할아버지가 출동한 날, 그 집을 내놓고 집을 보러 온 첫 번째 사람인 나는 바로 그 집을 계약했다. 


잔금일은 6월 말 경으로 계약을 진행하기로 하면서 매도자가 세입자 측에 그렇게 통보를 했더니 세입자 쪽에서 노발대발했다. 상의도 없이 이러는 경우가 어딨냐는 것이었다. 집주인은 1년 전에 동의하지 않았냐고 이제 와서 이러면 어쩌냐고 화를 냈다. 부동산 사무실에 앉아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나는 불안했다. 알고 보니 사정은 이러했다. 1년 전, 발코니 타일이 망가져서 집주인 할아버지가 수리를 해주러 가면서 집에 계시던 할머니께 집을 내놓을 것이라고, 집이 팔리면 나가주시면 좋겠다고 이야길 했고 할머니는 알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전세계약은 그 할머니의 아들이 했었고, 아들은 전세계약을 하자마자 그 집에서 주소를 뺐고 할머니 혼자 그 집에 살고 있었던 것. 할머니는 그 이야기를 아들에게 하지 않았고, 계약일 당시 전세계약자였던 아들에게 연락을 하자 마른하늘의 날벼락으로 받아들였던 것이었다. 결국 집주인 할아버지는 이사비와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합해 350만 원을 주기로 했고 그쪽에서 이사일을 통보해왔다.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일은 오히려 쉬웠다. 은행에서 요청하는 서류를 제출했고, 대출은 별 무리 없이 승인되었다. 잔금일 전 날, 잠이 오지 않았다. 세입자 측에서 짐을 안 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한숨도 못 자고 부동산으로 향했다. 매도자 측에서도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고 했다. 나와 같은 이유로 말이다. 결국 그들은 부동산에 도착하자마자 그 집으로 가서 이삿짐을 내리는지 확인까지 했다고 했다. 이삿짐을 내린 세입자 할머니의 딸이 부동산으로 왔고 내가 대출을 받는 은행에서 지정한 법무사가 와서 잔금을 입금하고 정리하는 와중에 세입자 측에 주소 이전도 곧 진행해주셨으면 한다고 하자 갑자기 그녀가 돌변했다. 책상을 내리치고 소리를 지르며 갈 데도 없는데 어떻게 주소를 이전하냐며 이렇게까지 할 거냐고, 우리 동의도 구하지 않고 니들끼리 이렇게 하는 법이 어딨냐고, 너네 우리 오빠 오면 가만히 안 있는다고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니들끼리 이삿날을 지정해놓고 본인들이 집을 구할 틈도 주지 않았는데 이렇게 까지 하는 거냐며 소리를 질러댔다. 결국 매도자가 전세계약 당사자(아들)가 보내온 문자(이사일을 지정한)를 그녀에게 보내주고 나서야 목소리는 낮아졌다. 집을 사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던 가. 보다 못한 부동산 사장님이 따님 집으로 우선 주소를 이전해 놓으면 어떻겠느냐고 (그분들은 한 달 반 뒤에 이사를 들어가기로 되어있었다.) 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오 귀찮으니까 그러지!” 정말 대책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계속해서 주소를 이전하지 않으면 강제로 이전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주소 이전을 하지 않았고 결국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내 뜻을 전했다. 강제퇴거를 진행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면 주민등록이 말소될 수 있어 더욱 복잡해질 것이라고. 그리고 주말 내내 연락이 닿지 않던 그들은 나의 재촉에 못 이겨 주소를 이전했다. 


집을 구매하는 것은 물건을 구매하는 것과는 무척이나 달랐다. 전세가 아니라 매매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나의 걱정은 과연 주택담보대출이 별 무리 없이 승인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집을 계약하면서 가장 크게 부딪혔던 것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집을 구해야 했고, 그들의 이사 일과 나의 이사일, 내 뒤에 내가 살고 있던 집으로 이사 오는 사람들과 일정을 맞추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 어쨌건 나는 공사를 마친 내 집에 무사히 이사를 왔다. 그동안 이사와 공사로 인한 스트레스로 나는 한동안 많이 아팠고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다. 이제 더 이상 2년마다 이사를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어졌고, 새로운 공간으로 갈 때마다 적응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나의 강아지들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기에 나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으련다. 불과 한 두 달 사이에 내가 이 집을 산 가격보다 4,5천만 원이 올랐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내가 살 집인데. 


관짝으로 나갈 때까지 나는 이 집에서 나가지 않을 테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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