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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Nov 15. 2020

미식가? 대식가? 미대식가 강아지들

먹성 다른 강아지들




처음 봄이를 구조했던 날, 동물병원에서 확인한 몸무게는 겨우 890그램이었다.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1킬로도 되지 않는 아이가 몇 달을 길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에 무척 마음이 아팠더랬다. 복길이에게 눈칫밥을 먹긴 했지만 봄이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2킬로 가까이 살이 쪘다. 안정된 생활을 하니 앙상하게 드러났던 갈비뼈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고 복길이와의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는 깡다구 있는 강아지가 되었다. 봄이는 아팠던 때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2.3킬로에서 2.5킬로의 체중을 유지하는데 사실 나는 봄이가 좀 더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랐으면 하고 바라지만 누굴 닮아 입이 짧은 건지 봄이는 잘 먹지 않는다. 출근 준비로 정신없는 아침마다 봄이를 앉혀놓고 입에 사료를 넣어주거나, 바닥에 사료를 한알씩 뿌려주며 먹기를 유도하는데 봄이는 좀처럼 먹지 않는다. 입에 넣어준 사료를 뱉어버리고, 바닥에 뿌려놓은 사료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어떤 날은 화가 나서 먹지 말라며 사료 그릇을 치워도 별 반응이 없다. 


꽃님이를 입양한 날, 동물보호 단체의 직원이 꽃님이를 나에게 인계해주었는데 그 무게에 흠칫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봄이는 2킬로 초반, 복길이는 4킬로 후반 정도로 평생을 살아왔으니 7킬로에 육박하는 꽃님이 무게 놀란 것도 당연했다. 어쨌든 꽃님이는 나와 6.7킬로의 몸무게로 만났는데 그때 당시 그녀는 맛없기로 유명한 심장 사료를 먹고 있었다. 내가 다니는 동물병원에서 꽃님이의 심장병에 대해 상담을 했는데 원장님은 꽃님이의 심장병이 아직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니기에 맛없는 심장 사료 말고 일반사료를 급여해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꽃님이는 맛없는 심장 사료도 세상 맛있는 사료처럼 먹는데 이제 꽃님이에게 맛있는 사료를 줘도 된다고 하니 나는 조금 설렜다. 역시, 일반 사료는 심장 사료보다 더 맛있게 먹었다. 입 짧은 강아지만 키우다 무엇이든 잘 먹는 꽃님이를 만나니 나는 손주들 배고플까 봐 이것저것 챙겨주는 할머니의 마음으로 꽃님이의 밥을 챙겨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꽃님이는 허리를 잃었다. 


우리는 매달 병원에 가는데, 6월쯤이었나 아이들 몸무게를 확인했더니 봄이는 살을 더 찌워야 했고, 꽃님이는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입 짧은 봄이의 식욕을 돋워줄 사료를 따로 주문해서 봄과 꽃님이의 사료를 구분해서 주었다. 꽃님이는 밥그릇을 보자마자 달려드는 편이라 내가 봄이만 다른 사료(좀 더 맛있는)를 챙겨주어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꽃님이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인지 사료 그릇을 내려주어도 먹지 않고 기다렸다. 물론 봄이는 다른 사료에도 금방 질려 먹지 않던 시점이라 꽃님이와 같은 사료를 다시 주었는데 꽃님이는 봄이 사료그릇을 확인하고 나서야(자기와 같은 사료라는 것을) 제 밥그릇으로 가서 밥을 먹는 것이 아닌가! 아, 소름 끼치도록 치밀한 꽃님이었다. 그 치밀함은 몇 달간 이어졌다. 


과수원을 운영하시는 부모님 덕에 우리 집 냉장고에는 1년 내내 사과가 있는데, 복길이와 봄이는 사과를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사과를 먹을 때면 아이들과 나눠먹었는데, 꽃님이에게 처음 사과를 준 날, 꽃님이는 먹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아마도 사과를 먹어본 기억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봄이가 아주 야무지게 사과를 아삭아삭 씹어 먹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 사과를 먹었는데, 나는 보았다. 꽃님이의 큰 눈이 더 커지고, 침이 질질 흐르는 모습을. 훗. ‘야 인마, 이게 고당도로 유명한 봉화사과라는 것이다.’ 나는 또한 수박을 무척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혼자 살다 보니 수박 한 덩이를 사 먹는 일이 어려웠고, 마트를 잘 가지 않는 나에게 ‘자른 수박’을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매년 여름만 되면 ‘아, 수박이 먹고 싶은데’라며 아쉬움을 표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던 와중에 ‘쥬씨’에서 수박 도시락을 출시했다는 소식을 듣고 ‘쥬씨’로 달려가 수박 도시락을 사 왔다. 이제 힘겹게 수박을 소분해 냉장고에 넣어놓지 않아도 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라니! 수박 도시락을 사 온 날, 나는 또 아이들과 나누어 먹었는데 이번에도 꽃님이는 약간 주저하더니 봄이가 세상 맛있게 수박을 먹는 모습에 자극을 받았는지 한입 먹어보더니 더 달라고 성화를 내었다. 수박을 먹다 보면 흰 부분이 좀 많은 수박 조각들이 간혹 있는데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분이어서 나는 기꺼이 그런 부분을 아이들에게 ‘양보’했다. 두 녀석 모두 수박이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하니까 말이다. 흰 부분을 먹으라고 나눠줬는데 꽃님이가 수박조각을 입속에 넣어보더니 다시 뱉어내어 흰 부분은 먹지 않고 남겨두는 것이 아닌가! 뭐든 잘 먹는 아이가 이제는 맛있는 부분만 먹겠다고 의사표시를 한 것에 나는 또 기분이 좋아졌다. 


6.7킬로의 몸무게로 우리 가족이 된 꽃님이는 최근 8킬로를 기록했다. 7.6킬로 즈음해서 다이어트를 하라고 해서 사료를 계량해서 급여한 지 3주가 되던 날, 꽃님이의 몸무게는 8킬로가 되어있었다. 당황해하시던 의사 선생님 앞에서 무척 황당했더랬다. 그도 그럴 것이 사료도 계량해서 주고, 간식은 주지 않았는데 몸무게 더 늘어난 기이한 현상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결국 다이어트 사료로 바꾸었고 그 덕인지 요즘엔 꽃님이의 허리 라인이 되살아나고 있다. 나는 꽃님이가 강아지 공장에서의 기억, 길에서의 기억, 보호소에서의 기억을 빨리 잊고 맛있는 사료를 달라고 당당히 요구했으면 좋겠다. 언제 밥을 먹을지 몰라, 무엇이든 허겁지겁 먹어야 했던 과거를 잊고 내가 맛없는 수박 흰 부분을 주었을 때 먹지 않고 남겨두었던 날처럼, 다이어트 사료가 맛이 없으면 나에게 맛있는 다이어트 사료를 찾을 때라고 알려주면 좋겠다. 물론 요즘, 고구마를 주지 않는 날은 바닥에 오줌을 싸며 항의를 하는 덕에 매일 고구마를 뇌물로 바치고 있지만 그 수고스러움은 꽃님이가 나를 믿기에 보여주는 당당한 요구의 고마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나의 대식가, 미식가, 합쳐서 미대식가인 강아지 두 녀석을 위한 고구마를 오늘 저녁에도 삶아야겠다.



수박 흰부분은 먹지 않고 남겨두는 꽃님.



나의 사랑스러운 뱃살 요정.



내가 먹으려 챙겨둔 사과를 몰래 반쯤 먹은 꽃님.


고구마 찐 날은 그녀들의 축제일



사과 먹는 꽃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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