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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Nov 29. 2020

산책 중 뱀을 밟은 강아지

다행히 물리지는 않았지만.


주말 산책 코스는 집 근처의 직리천에서 시작해서 경안천까지 이어지는 산책로이다. 이 동네에 이사를 온 지 2년이 넘었지만 이 산책 코스는 몇 달 전에야 발견했다. 그전까지는 동네의 아주 작은 공원이 우리의 산책코스였다. 하지만 이 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 주방 창문으로 보이는 직리천 산책길에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는 것을 보았고 그 후, 우리도 이 강변 산책로를 자주 이용하게 되었다. 처음 이 산책길을 들어설 때 ‘뱀 출몰 주의’라는 안내문을 보고 코웃음을 쳤더랬다. 그도 그럴 것이 두메산골인 내 고향에서도 뱀을 못 본 지 십 년이 넘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산책로에 뱀이 나올 리가 없다는 것이 내 경험에 근거한 결론이었다. 어린 시절 고향마을에서 어쩌다 뱀을 만나게 되면 내가 먼저 도망가기 전에 뱀이 먼저 줄행랑을 쳤기 때문이었다. 부모님께 뱀을 봤다고 하면 원래 뱀은 사람을 보면 도망가게 되어있다며 걱정할 것이 없다며 나를 안심시켜왔었다. 어쨌든 그 경고에도 불구하고 경안천의 지천인 직리천을 통해 경안천으로 이어진 산책길은 무척 좋았다.


이 산책로에서 처음 뱀을 본 것은 약 두 달 전쯤이었다. 산책을 할 때면 나는 항상 에어팟을 꽂고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듣거나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하고, 호기심이 많은 꽃님이는 항상 내 앞에 서서 산책을 하고, 겁이 많은 봄이는 내 뒤에서 산책을 한다. 그날도 그렇게 1열 종대로 산책을 하던 중 저 앞에 무언가가 빠르게 산책로를 가로질러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움직이는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은 꽃님이는 다행히 뱀을 보지 못했고, 우리는 뱀이 사라진 수풀에서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무척 놀랐지만 아마 우리보다 뱀이 더 놀랐을 거라 생각하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산책을 마쳤다. 그리고 얼마 후, 직리천에서 경안천으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다 다리 아래 있는 뱀을 보았다. 강 중앙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모래탑에 갇힌 아주 작은 뱀이었다. 뱀 한 마리가 물을 건너려 하는지 모래탑 이곳저곳을 탐험하듯 방황하고 있었다. 우리 셋은 다리 위에 서서 그 뱀의 다음 행보를 궁금해하며 지켜보고 있었고, 지나가시던 분들 중 몇몇은 우리가 무엇을 보는지 궁금해하며 같이 뱀을 내려다보았다. 두 번 모두 우리와 떨어진 곳에 있는 뱀을 보았기 때문인지 고작 뱀을 두 번 보았다고 해서 이 멋진 산책로를 포기할 수 없었던 우리는 그 이후로도 계속 이 산책로를 자주 이용했다.


어제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이들 밥을 챙겨주고 내 점심을 챙겨 먹고 여느 주말과 마찬가지로 직리천에서부터 경안천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로 산책을 나섰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에어팟을 귀에 꽂고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1열 종대로 산책을 했다. 추울 줄 알았는데 걷다 보니 땀이 났다. 한 손에는 꽃님이가 싼 똥을 넣은 배변봉투를 든 채로 한 시간 가량의 산책을 마치고, 배변봉투를 버리기 위해 쓰레기봉투가 있는 배드민턴장 쪽으로 걷고 있는데 저 앞에 누군가가 버려 놓은 듯한 호스가 보였다. 대체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산책로에 누가 쓰레기를 버려두었나 하며 아무 생각 없이 걷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호스가 아니라 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꽃님이가 뒷발로 호스를, 아니 뱀을 밟았다. 놀라서 리드 줄을 당겨 꽃님이를 내 근처로 오게 했다. 꽃님이가 밟았는데도 아무 움직임이 없길래, ‘아 호스였구나’ 하며 다시 걸으려고 하는데 우리를 앞질러 걸어가시는 분이 그 호스 근처로 걸어가자 호스라고 생각했던 뱀이 바로 머리를 쳐들고 지나가는 사람을 물려고 일어서는 게 아닌가. 등줄기에 식은땀이 났다. 영문도 모르고 멈춰 선 나 때문에 봄이와 꽃님이는 빨리 걷자고 성화였고, 다리가 후덜 거리는 나는 한 걸음도 떼기가 어려웠다. 꽃님이는 자기가 밟은 게 뱀인 줄도 모르고 여전히 신이 난 상태였다. 추측해보자면, 그러니까 그 뱀은 햇볕이 좋은 주말이어서 햇볕을 쬐기 위해 산책로 중앙에 자리를 잡고 누워있었고, 꽃님이한테 밟히자 죽은 척을 했었을 것이다. 그 뱀에 독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주말이어서 사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산책로 중앙에 누워 일광욕을 할 정도면 여간 자신감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터,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뒷걸음질을 쳤고, 직리천을 건너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도망을 쳤다.


운동을 좋아하지만 달리기라면 질색 팔색인 나에게 달리기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그날에서야 알게 되었고, 걷지 않고 뛰게 되어 더 신난 아이들은 오히려 더 뛰자고 난리였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꽃님이가 물리지 않은 것을 현장에서도 봤지만 혹시 몰라서 꽃님이의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물리지 않았고, 화장실에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거실로 나오자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실소가 나왔다. 자기가 밟은 것이 뱀이었다는 것도 모르는 꽃님이는 태연히 거실 테이블에 올라가 산책의 피로함을 낮잠으로 풀고 있었다. 하아, 이토록 태평한 강아지라니. 나 혼자 그토록 마음을 졸였던 것이었구나. 두메산골인 내 고향에서도 뱀을 못 본 지 10년이 넘은 것 같은데, 그 10배의 인구가 살고 있는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산책로에서 뱀을 보다니.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꽃님이가 뱀을 밟았다고 해서 그 산책로를 포기하기엔 너무 멋진 코스이기에 다음부터는 등산스틱이라도 들고 산책을 나가야 할까 보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등산스틱으로 땅을 한 번씩 치며 뱀이 먼저 알아서 도망을 가달라고 빌면서 말이다. 제발 미친 사람이라고 오해받지 않아야 할 텐데. 휴우. 어쨌거나 뱀은 너무 무서워.



신난 뒷모습



물고기 구경에 정신 팔린 나의 강아지들



뱀을 밟은 강아지가 맞는지요? 어쩜 이리도 태평이신지!
뱀을 밟고도 잠은 잘 자는 꽃님이



우렁차게 코 고는 소리에, 나의 놀란 가슴도 진정되었던 햇살 좋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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