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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Jan 25. 2021

언제든, 언젠가는 다시 아리산!

오래전 아리산 여행기를 지금 다시. 2



그랬다. 이 할머니는 내가 대만 배낭여행을 준비하면서 참고했던 수많은 블로그에서 언급되었던 아리산 호텔을 호객하는 할머니였다. 아, 조금 전 두 남자에게 사기를 당한 내가 이번에도 속을쏘냐! 나는 애써 할머니를 외면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왼쪽으로 몸을 틀면 어느새 할머니는 내가 몸을 튼 왼쪽 방향에서 호텔 팸플릿을 내밀며 뭐라 뭐라 중국어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내가 오른쪽으로 몸을 틀면 이 할머니는 다시 재빠르게 내가 고개를 돌린 방향에서 호텔 팸플릿을 내밀며 큰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내가 뒤돌아 서면 할머니는 다시 빠르게 내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팸플릿을 내밀며 중국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잠시도 조용히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할머니에게 화가 나서 나도 한국말로 이야기를 했다.


나: 할머니. 지금 아리산으로 가는 버스도 끊겼는데 나한테 호텔을 예약하라고 하면 어떡해요! 

할머니: 중국말-

나: 할머니! 버스가 없잖아요! 버스가!

할머니: 중국말-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이 할머니는 내가 호텔을 예약하겠다고 할 때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을 기세였고, 나는 아리산행 마지막 버스를 놓쳐서 이 할머니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이 상황을 할머니에게 통역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정류장을 둘러보니 젊은 남자애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영어로 혹시 영어를 하는지 몰어보았다. 그는 대답 대신 웃었다. 그래서 돌아섰는데 이 청년은 계속 미소를 띤 채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니까 나는 혹을 떼려다 혹을 하나 더 붙인 격인데, 내 옆에는 계속 중국말로 이야기하며 팸플릿을 내미는 할머니와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하는 청년이 함께 있었다.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어쩌면 이 할머니한테 답이 있을지도 몰라. 결국 나는 할머니가 내미는 팸플릿을 받아 들었다. 팸플릿 속 호텔은 나름 깔끔해 보였다. 내가 이 호텔을 예약한다고 하면 호텔에서 버스를 보내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할머니에게 말했다.


나: 할머니. 저 이 호텔 예약할게요. 그런데 제가 아리산에 어떻게 가야 하죠? 걸어서 가나요? 아니면 버스 타고 가나요? 어떻게 이 호텔에 가나요?

내 말에서 ‘버스’를 들은 할머니는 내 손을 이끌고 티켓 부스로 갔다. 표를 파는 직원에게 버스가 끊겼다고 말해주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 직원은 다시 친절히 나에게 아리산행 버스가 없다고 이야기해준다. 아, 저기요. 나도 안다고요. 이 혼돈의 카오스에서 기적처럼 영어를 하는 남자가 나타났다. 나는 그에게 그간의 답답한 사정을 쏟아냈다. 그 청년에게서 나의 답답함을 전해 들은 할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택시!”

아, 택시? 택시가 있었구나. 허탈한 마음에 약간 웃음이 났다. 나는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이리 걷고 저리 걸으며 호텔비를 흥정하고, 택시비를 흥정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택시 뒷좌석에 앉아 구불구불한 아리산 길을 오르고 있었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이렇게 깊은 산을 택시로 이동해도 되는 것일까. 인상 좋아 보이는 이 기사님이 나에게 나쁜 마음을 품으면 어쩌지. 왈칵 무서워졌다. 그런데 그것보단 이차선인 이 길을 곡예 운전하는 이분의 운전실력이 지금은 더 무서웠다. 커브길에서 추월은 기본이고, 추월하다 앞에서 차가 나타나면 거짓말처럼 후진도 한다. 시속 80킬로에서 100킬로는 족히 되는 것 같았다. 옆은 낭떠러지이고, 이 기사님은 계속 과속을 한다. 나는 슬그머니 안전벨트를 맸다. 그런 나를 백미러로 보더니 기사님은 자지러질 듯이 웃었다. 나도 따라 웃는 척을 했다. 


기사님은 계속해서 나에게 중국말로 이야기를 했다. 중간중간 ‘버스’라는 단어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내가 놓친 버스를 추월하겠다는 것 같았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저 창밖으로 펼쳐진 아리산 자락을 눈에 담았다. 그렇게 미친 듯이 달리다 보니 내가 탔어야 했던 버스가 저 앞에 보인다. 택시기사님은 버스를 세웠다. 그리고 나더러 택시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라고 했다. 하아, 나는 또 사기를 당한 것이다. 젠장. 따질 기운도 없고, 나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멈춰 선 버스에 탄 승객들도 있고, 뒷따라 오던 차들도 모두 정차해있는 상황에서 나는 무거운 배낭을 둘러메고 말없이 버스에 올랐다. 택시기사님은 웃으며 버스기사님께 내 요금을 내주었고, 앉을자리가 없었기에 나는 버스기사님 옆 통로에 배낭을 내려놓고 앉았다. 결국 나는 불편하게 버스 바닥에 앉아 그토록 소망했던 아리산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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