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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Apr 11. 2021

낳아줘서 고마워.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았던 내 생일날에.


내 생일은 4월이다. 벚꽃이 절정인, 이미 지고 난 개나리에 푸른 잎이 돋아나는 그때, 봄의 한가운데에 나는 태어났다. 연인도 없고 가족들과도 멀리 떨어져 지내는 나에게 생일은 생일이 아닌 날과 별다를 것이 없는 날이다. 굳이 하나 다른 것을 찾는다면 케이크를 먹는다는 것, 친구들에게 1년 만에 또 축하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번 생일은 어쩌다 보니 보고서 마감 주간이라 야근이 예정되어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회사 시스템이 다운되었고, 시스템이 다운되면서 보고서 작업을 할 수 없던 터라 어쩔 수 없이 정시 퇴근을 했다. 친구가 보내준 케이크가 집 앞에 배달되어있었고,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강아지들 밥을 먹이고 산책에 나섰다.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산책을 하던 와중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의 용건은 미역국은 끓여먹었는지, 혼자 무엇을 하며 생일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것. 나는 미역국을 끓여먹지 않았지만 엄마에게 간단히 편의점에서 미역국을 사서 아침 출근 전에 먹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엄마는 안도했다. 우리들의 생일날이 되면 엄마는 미역국을 끓인다. 먹을 사람이라고는 아빠와 엄마뿐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멀리 떨어진 자식들의 생일을, 본인이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견뎌가며 낳은 자식들의 생일을 멀리서라도 축하해주고 싶은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들의 생일에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한 것인지는 몰라도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는 친구들과 케이크도 먹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생일을 챙긴다며 뭐하러 그렇게까지 하냐고 핀잔을 주었던 무심했던 나를, 나는 기억한다. 엄마는 무척 서운했을 것이다. 우리가 태어난 날이 우리들에게도 중요할 테지만 엄마와 아빠에게도 우리가 태어나던 순간들이 무척 중요했을 터, 나는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먹지 않더라도 엄마 아빠는 첫 딸을 낳은 날을 기념하며 미역국을 챙겨 드시리라는 생각을 하면 왜인지 든든해지는 것이다. 


“엄마, 나 낳아줘서 고마워”

느닷없는 내 말에 엄마는 흠칫 놀라더니 이내 

“푸하하하하” 웃기 시작했다. 나도 엄마의 웃음소리를 흉내 내어 공원에서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아니, 왜 웃어? 어? 딸내미가 이렇게 감동적인. 풉. 이야기를. 크크. 하는 데에~! 하하하하”

“야, 니가 너무 웃긴 이야기를 하잖아! 하하하하”

전화기를 통해 우리의 웃음은 끊어질 듯 이어졌고 한참을 그렇게 서로 웃어댔다.

“엄마, 아빠한테도 전해줘. 풉. 나 낳아줘서 너~무 고맙다고. 푸하하하하”

“크하하하 알았어. 풉. 아빠한테. 큭. 꼭. 풉. 말을.. 푸하하하하. 해줄게. 하하하하”


스무 살 때였나. 갑자기 아빠에게 말하고 싶어 졌다. 나는 아빠한테 무척 많이 맞고 자랐기 때문에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무엇에 홀린듯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 고마워요. 사랑해요.’

문자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먼 일 있나?”

아마 내가 보낸 문자 하나에 아빠의 머릿속엔 온갖 드라마와 신문기사가 펼쳐진 모양이었다.

“아니. 아무 일도 없는데?”

“돈 떨어졌나?”

“아니야. 용돈 있어.”

“그래. 알았다”

전화는 이내 끊어졌고, 아빠는 바로 내게 용돈을 보냈다. 평소엔 용돈을 받으려면 전화를 열 통 가까이해야만 온갖 잔소리를 하며 용돈을 주던 아빠였지만, 내 문자에 놀랐던 것인지, 좋았던 것인지 아빠는 먼저 용돈을 보낸 것이다. 


엄마에게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한 것은 처음이었지만, 진심이기도 했다. 힘들었던 청소년기에, 이십 대에는 왜 나는 우리 부모님같이 가난한 부모를 만난 것인지, 왜 이기적인 나를 첫째로 낳아 굳이 맏이다움을 요구하는 것인지 원망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삼십 대에 들어서면서 내 삶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졌고, 다시 태어나기는 싫지만, 다시 시간을 돌려 반짝반짝 빛나던 십 대로, 이십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만하면 한번 살아보는 것도, 나의 미래도 기대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지금의 내 삶이 대단히 불만족스럽다면, 불행하다면 내가 엄마에게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말에는 단순히 내게 인생을 선물해주어서 고맙다는 의미 외에도 두 사람이 내 부모라는 사실에도 감사한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생일이 되면 가족들에게서, 친구들에게서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날아든다. 나는 ‘고마워’라고 타이핑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삐딱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나이까지 무엇하나 이룬 것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도 없이 이렇게 나이만 든 것이 무에 축하받을 일인가.  그렇게 삐딱한 생각으로 ‘고마워’라는 대답을 타이핑 해 ‘전송’을 누르면서 나는 다시 생각한다. 그래. 작년부터 올해까지 별 탈없이, 큰 일없이 이렇게 살아온 것은 축하받아 마땅하다고. 수많은 봄날 중, 내가 태어난 날을 잊지 않고 축하해준 나의 친구들에게, 나의 가족들에게 더욱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라고.


산책을 마치고 친구가 보내준 달콤 쌉싸름한 녹차 케이크를 먹으며 생각했다. 지난 한 해, 나에겐 씁쓸한 일들이 많았지만 그런 시간들 와중에도 달콤한 시간들이 섞여있었다는 것을. 그러니 이렇게 생일을 맞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내년 생일까지도 달콤 쌉싸름한 시간들을 무사히 지나 또 한 번의 생일을 맞을 수 있기를. 그때엔 엄마 아빠 두 사람 모두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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