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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단걸 May 02. 2021

아빠, 왜 우세요?

이 좋은 날에!



셋째 동생의 결혼식을 앞두고 나는 동생들에게 자신했다. 아빠는 셋째의 결혼식에서 반드시 울 것이라고. 그러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 아빠는 둘째의 결혼식에서 울지 않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관광버스 안에서 기분이 좋다고 노래를 불렀던 사람이니까. 더군다나 아빠는 사람들 앞에서 좀처럼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결혼식 전날, 일찍 도착한 나와 동생들은 또 한 번 이 이야기를 했는데 그 누구도 아빠가 울 것이라는 내 이야기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쯤 되자 나도 슬그머니 아빠가 울지 않으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딸 셋을 가진 우리 아빠는 유난히 셋째를 예뻐했다. 욕심 많고, 지기 싫어하고, 귀엽지도 않은 셋째를 어째서 제일 예뻐하는지 어렸을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빠는 셋째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귀담아 들었고 반응을 해주었다. 우리는 아빠에게 부탁할 일이 생기면 셋째를 앞세우곤 했다. 내가 이야기를 꺼낼 때 아빠의 감정 상태는 ‘화남’이 디폴트라면 셋째가 이야기를 꺼내면 ‘기분 좋음’이 디폴트였다. 어쩌다 가족들이 모여 우리의 어린 시절이 대화의 주제가 되면 아빠가 꺼내는 이야기의 대다수는 셋째에 대한 기억이었다. 


셋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빠 옆에서 붙어자던 그날 밤에 대한 이야기는 어찌나 많이 들었던 지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다. 한밤 중, 이불이 축축해진 것을 알아챈 아빠가 잠에서 깼다. 셋째가 오줌을 쌌다고 생각한 아빠가 셋째의 내복을 갈아입히려고 내복을 만져보니 어쩐 일인지 내복이 보송보송하더라는 이야기. 아빠는 잠결에 설마 내가 오줌을 쌌나 하며 갸우뚱했다는 이야기. 일어나 앉아 방 안을 둘러보니 셋째가 입고 잤던 내복은 오줌이 흥건한 채로 둘둘 말려 윗목 어딘가에 던져져 있더란 이야기. 셋째가 자가다 오줌을 싸고서는 자기는 내복을 싹 갈아입고 아빠를 축축한 이불 쪽으로 밀어두었더라는 이야기. 삼십 년이 지난 그때의 이야기를 할 때의 아빠의 얼굴에는 사랑스러운 눈빛이 장착되어있다. 


아빠가 과수원에 체리 나무를 심은 것도 셋째가 좋아하는 과일이기 때문이었고, 체리가 열릴 때면 다른 자식들에게 연락하기 전에 셋째에게 가장 먼저 전화해서 체리가 익었으니 먹으러 오라고 이야기하고, 딸기 철이 되면 셋째가 좋아하는 딸기를, 제사상에 올릴 법한 큼지막한 딸기를 두 팩씩 사 온다. 나는 아빠의 이런 셋째 사랑이 전혀 서운하지 않다. 항상 부모님 가까이 있는 셋째가, 아빠가 부르면 투덜거리면서도 한달음에 달려오는 셋째가, 집에 오면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해놓고 집안 청소까지 싹 해놓고 가는 셋째 딸을 유독 예뻐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한다. 그런 셋째의 결혼식 날, 결국 아빠는 울었다. 하객석에 앉아 혼주석을 바라보니 아빠는 계속해서 웨딩홀의 번쩍이는 천장을 올려다보았고, 엄마는 연신 눈물을 닦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였지만 축가를 부르는 그때부터 아빠는 울고 있었다고 했다. 신혼부부가 된 동생과 제부가 혼주석을 향해 인사를 하고, 부모님이 안아주는 그 타임에 아빠는 셋째를 제대로 안아주지 않았는데 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날, 셋째의 환한 얼굴과 달리 부모님은 뭐가 그리 섭섭한지 계속 눈물을 보였던 것이다. 셋째 부부의 신혼집이 부모님 집에서 겨우 40분 거리이고, 동생의 직장은 집에서 20분 거리이기에 결혼을 해도 자주 보게 될터였지만 가장 예뻐하던 셋째 딸을 결혼시키는 것은 어쩌면 아빠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셋째 동생 부부가 결혼 후, 외갓집에 인사를 갔다. 봄비가 세차게 내리던 주말이었다. 나는 사촌 오빠와 동생 부부와 함께 그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빵집에 빵을 사러 갔는데 아빠가 셋째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알기로는 아빠는 여간 급한 일이 아니면, 중요한 일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면 좀처럼 전화를 하지 않았기에 의아해하며 두 사람의 통화를 엿들었다. 아빠는 별다른 용건 없이 그저 셋째에게 ‘빗길에 운전 조심하라’며 전화를 했던 것이었다! 빗길을 달려 외갓집에 간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나 참.


아빠에겐,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딸이 하나 더 있는데, 만약 그 딸이 결혼을 한다고 하면 아빠는 그 결혼식에서 환하게 웃을까? 아니면 눈시울을 붉히며 울까? 그도 아니라면 한껏 신나서 춤을 추지는 않을까? 그럼 나도 그 옆에서 신나게 춤을 춰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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