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치 않을지라도 꽤 괜찮으니까.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모든 제품이 재사용될 수 있도록 장려하며 폐기물을 방지하는데 초점을 맞춘 원칙이다. 포털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검색하면 나오는 정의다. 아마도 나는 내 생에 제로 웨이스트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게으르기 그지없기에, 그래서 나를 편하게 해주는 것들에 무한 애정을 가지고 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제로 웨이스트에 도전하게 된 것은 순전히 귀찮음 때문이었다. 나는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 먹는데, 그 플라스틱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우리 아파트는 매주 수요일 저녁과 목요일 오전만 재활용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데 어쩌다 수요일에 야근을 하게 되면 플라스틱 통은 금세 세탁실을 점령하고 만다. 결국 고민하다 반찬가게 사장님께 부탁을 드려 내 반찬통을 가져다 두고 반찬을 사 먹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재활용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횟수가 많아지는 것이 더욱 귀찮기 때문에 제로 웨이스트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반찬통을 반찬가게에 두고 반찬을 사 먹게 되면서 우리 집에서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획기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문제는 생수였다. 혼자 살면서 정수기를 구입하거나 렌탈하는 것은 비용 대비 실익을 따져보아도 무척이나 비효율적이었고, 보리차를 끓여 마시는 것은 생수 병을 내다 버리는 것에 비하면 더욱 귀찮은 일이었다. 결국 나는 ‘브리타 정수기’를 만나게 되었다. 필터 하나로 한 달을 사용할 수 있었고, 물맛도 무척 좋았다. 우리 집에서 생산하는 플라스틱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반찬가게의 플라스틱 용기와 생수병을 처리하자 매주 수요일 저녁, 재활용을 내놓을 때에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이토록 내가 내다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이 현저히 줄어든 것을 체감하게 되면서 나는 샴푸바와 린스 바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설거지를 위해서도 비누바를 사용한다. 또한 설거지용 스펀지도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것으로, 혹은 진짜 수세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은 많이 줄였지만 여전히 우리 집은 일회용품 사용이 많았는데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강아지들의 배변 패드였다. 그러니까 나는 아침에 두장을, 퇴근하고 와서 또 두장을, 자기 전에 두장을 깔아주니 하루에 6장의 배변패드를 사용하고 버리게 되는 셈인데, 그러다 보니 1인 2견 가구인 우리 집은 일주일에 두 번은 쓰레기봉투를 내다 버려야 할 정도로 많은 양의 쓰레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배변 패드를 적게 갈아주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강아지들의 소변을 바로 흡수한다고 광고했지만 교체주기가 길어지면 아이들의 소변 냄새가 날 수밖에 없었고 지금보다 더 적게 갈아주면 우리 집은 금세 소변 냄새로 점령당할 것이었다. 두 번째로 아이들이 화장실에서 배변을 하게 된다면 물청소를 하면 될 일이니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지만, 두 녀석 모두 화장실에선 죽어도 배변을 하지 못한다고 버티었다. 그러므로 이것도 패스. 결국 정답은 내가 조금 더 부지런해지는 일뿐이었다.
나는 인터넷으로 빨아 쓰는 배변패드를 주문했다. 생각보다 싸진 않았지만 몇 개가 필요할지 감이 없던 나는 통 크게 10장을 주문했고, 1회용 배변패드를 치우고 빨아 쓰는 패드를 깔아주자 두 녀석은 호기심을 내보이더니 이내 적응하고 시원하게 배변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보다 흡수력이 좋았고, 예상보다 냄새가 덜 났다. 확실한 것은 기존에 사용하던 1회용 배변패드와 기능면에서 조금의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잠들기 전, 아이들이 저녁 내내 배변을 한 배변패드를 들고 베란다로 나간다. 약간의 세탁세제와 과탄산소다를 조금 푼 물에 배변패드를 담가 두고, 십 분이 지나면 조물조물 빨아서 대여섯 번 헹궈 건조대에 널어놓고 잠을 잤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새벽 운동을 나가기 전에 배변패드를 갈아주고, 세탁세제와 과탄산소다를 푼 물에 아이들의 배변패드를 담가놓는다. 운동이 끝나고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베란다로 나가 담가 둔 배변패드를 조물조물 주물러 빨아 건조대에 널어둔다. 퇴근 후, 바짝 마른 배변패드를 사용하면 될 일이다. 나의 하루에, 이전에 하지 않던 약간의 노동력을 더하자, 쓰레기봉투를 내다 버리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물론 나는 주말이면 한 두 번은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여전히 플라스틱 용기를 쓰레기로 생산하고, 물티슈를 애용하며, 물걸레 청소기의 청소포도 일회용을 사용하지 않던가. 나는 겨우 생수를 사지 않을 뿐이고, 이제야 반찬가게에 내 반찬 용기를 내밀었고, 최근에서야 강아지들의 배변 패드를 빨아쓸 수 있는 패드로 바꾸지 않았던가. 여전히 제로 웨이스트의 삶은 나에게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실은 아직 요원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뭐 어때. 내 생활에서 어떤 부분을 고칠 수 있을까. 어떤 부분을 어떻게 수정하면 내가 플라스틱을 조금 덜 생산하고, 쓰레기를 조금 덜 배출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삶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에 비하면 얼마나 많이 걸어온 것이던가. 물티슈를 애용하는 만큼 나는 최근에 대나무 물티슈로 바꾸었다. 대나무는 90일이면 25미터를 자라기 때문에 그만큼 나무를 아낄 수 있다는 이야기에 우리 집의 두루마리 화장지와, 물티슈, 갑 티슈는 모두 대나무 풀로 만든 제품으로 바꾸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겨우, 그거 하나 바꾼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유난 떨지 말라고 할 수도 있다. 정말이지 나는 여전히 많은 플라스틱을 배출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쓰레기를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만큼은 줄이는 것. 단 며칠이라도, 단 하루일지라도 쓰레기를 조금 덜 생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 가다 보면 언젠가는 세상이 바뀌는 날이 올 수 있지는 않을까? 나는 오늘 새벽 운동을 마치고 강아지들이 밤새 오줌을 싼 배변패드를 조물 조물 빨았고, 원두를 갈고 커피를 내려 텀블러 두 개에 나누어 담았다. 오늘 나는 1회용 배변패드 6개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1회용 커피 컵을 적어도 두 번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하루 그 정도면 충분치 않을지라도 이 정도면 꽤 괜찮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