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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May 03. 2020

우리는 서로의 양육자였다

항상 불안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김미아』  

    

기르다

살아있는 생물이 다른 생물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 다만 여기서 말하는 행복의 기준은 피양육생물 기준이다. 양육생물의 기준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양육자는 항상 주의가 필요하며, 불안할 가능성이 높다.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나면, 주인이 올 때까지 천국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 얘길 들은 모두가 '찡하다', '귀엽다', '우리 해피가 나 반겨주면 울 것 같다'이런 반응이었다. 나만 어두운 표정이었다. 가슴이 천천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마중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살아있는 존재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었다. 언제나 혼자를 기르는 것도 버거웠다. 홀로서기도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이 누군가를 기른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난 누군가를 행복하게 기른 적이 있나. 내가 죽으면, 도대체 누가 마중 나올까 문득 겁이 났다.


부모님이 나쁜 양육자였다고는 말하지 않지만 감정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도 없다. 특히 아빠는 분노를 컨트롤하기 힘들어했고, 엄마는 늘 불안에 떨며 사는 사람이었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안이란 걸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가족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툭툭 불안하게 이어졌다. 수십 년간 매일같이 약간의 긴장감을 안고 식탁에 앉는다는 건 상상보다 훨씬 신경을 갉아먹는 일이다. 이런 일을 미래의 아이에게, 행복해야 할 그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진 않았다. 양육자의 소통 방식이라고 배운 건 그것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자주 미래 나의 아이 이름을 짓곤 한다. 그래, 이름은 수가 좋을 것 같아. 박 씨를 만나면 안 되겠다. 아이가 웃음거리가 될 거야. 최대한 특별하고, 발음하기 좋고, 뜻도 아름다운 이름으로 지어주고 싶었다. 아이를 기를 것도 아니면서 언제나 만나는 연인에게 '넌 어떤 부모가 되고 싶어?'라고 물어봤다. <케빈에 대하여>처럼 조금 다른 아이라면 어떻게 대할지, 엇나가 버린다면 어떤 방식으로 아이를 설득할지, 끊임없이 물어보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누군가를 항상 기르고 싶어 했다.

우리 집 막내, 우래. 雨來.

그래서 강아지를 길렀다. 11년째 기르고 있다. 비 오는 날, 파들거리고 있는 강아지를 데려 왔다. 까만 털에 반달곰처럼 난 하얀 가슴털이 예쁜 아이였다. 이 아이처럼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비 우雨에 올 래來자를 써서 김우래가 되었다.


그 날 이후, 11년 동안 나는 기르는 법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기른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불안한 일이란 걸 깨달아 가는 중이다. 밥은 맛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요즘 스트레스받거나 우울하진 않은지, 충분히 신경 써주고 있는지, 행복한지. 기른다는 것은 끊임없는 고민과 불안의 나열이다.


나는 우래에게 마중을 받고 싶다. 조금 오래 기다려야 할 수도 있지만, 지루하지 않게 도착하면 터그 놀이도 해주고 공도 던져 주고 싶다. 그땐 실컷 뛰는 것도 가능할 테다. 난 그 자리에서 우래를 기다리고 있겠지. 눈물이 날 것 같으면서도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우래를 기른 만큼, 우래도 날 길렀다. 우린 서로의 양육자였다.

눈 반짝.

불안하고 분명 잘 해내지 못할 거란 걸 알면서도 내가 누군가를 기르고 싶은 이유는 그 아이가 나를 길러줄 거란 기대 때문 아닐까. 네게 하는 말이 곧 내게 하는 말이 되어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거란 기대가 자꾸만 올라온다. 예민하고 성숙하지 못한 부모가 될 거라는 예측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행복해지고 싶다.


그래서 찾아오지 않을 미래의 아이에게 해 줄 말을 쓴다. 넌 충분히 어리고, 사랑에 빠지기엔 충분하니까 어디든지 가라고. 뛰어 놀라고. 나 역시 그 길을 가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너로 인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불안했지만 그 과정 모두 행복했다고, 그러니 너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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