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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Apr 26. 2020

난 슬플 때 혼자 노래방을 가

음치, 박치도 ‘혼코노’를 좋아합니다만.

작가 『김랄라』  


가무하다(歌舞--)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다.


한때 ‘혼코노(혼자서 코인 노래방에 가는 일)’에 빠져 살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새벽 6시에 일어나는 것을 시작으로 8시까지 회사에 도착해 줄곧 업무를 보다가 저녁 8시나 9시 정도에 퇴근을 하고, 2호선에서 7호선으로 환승한 후 다시 집 앞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밤 10시가 넘는 시간에 집에 도착하는 아주 단순한(?) 생활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다.


애프터 식스의 삶을 즐기지 못하는 사회초년생의 반항이었을까. 어느 날은 퇴근 후 곧바로 집에 들어가지 않고 근처에 있는 코인 노래방에 갔다. 애프터 ‘텐’이라도 확실하게 즐겨보자는 마음으로 춤과 노래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최적화된 장소를 선택한 것이다. 그 날은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노래방을 가게 된 날이었다.


처음 혼코노를 하게 되면 방을 고르는 일부터 고민스럽다. 최대한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입구에서 가장 먼 방을 선택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소파에 짐을 놓고는 창문을 통해 내 모습이 잘 비치지 않는 문 뒤 쪽 사각지대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겨우 들어와서 앉는 것까지 했는데 벌써부터 지치는 건 기분 탓일까. ‘휴, 다음엔 무얼 해야 하지?’ 이 어색한 공기의 흐름에 어서 빨리 적응하고 싶었지만, 아뿔싸! 부르고 싶은 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노래방 리모컨을 집어 들고 1위부터 50위까지 줄 세워져 있는 인기 차트를 훑었다.


‘그래, 첫 곡은 무난하게 발라드가 좋겠어’


결연한 표정과 함께 리모컨 숫자를 꾹꾹 눌러댔다. 나는 쉬지 않고 발라드만 3곡을 열창했다.폴킴 노래에 빠져있을 때라 3곡 모두 그 가수의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음정, 박자는 물론이고 노래하는 내 모습조차 불안정하고 어색했다. 인간을 본떠 만든 로봇이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면 이런 모습이려나. 기계로부터 자존심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말도 들었다. 다행히 그다음부터는 ‘점수 제거’를 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영 어색해서 이쯤에서 그만하고 나가려고 했으나 넣은 돈이 아까워 남은 2곡을 꾸역꾸역 불렀다. 그렇게 내 첫 혼코노는 30분 만에 끝이 났다. 내 인생에서 두 번째 혼코노는 없을 것 같았다.


그다음 날은 기사를 못써서 국장에게 꾸중을 들은 날이었다. 하필이면 출근하자마자 혼이 나서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다. 그날 퇴근하자마자 홀린 듯 코인 노래방을 찾았다.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만한 다른 기막힌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제와 같은 방, 같은 좌석에서 10곡을 열창했다. 오늘은 어제 느꼈던 어색함이 조금 덜 느껴졌다. 선곡도 발라드부터 댄스, R&B까지 다양하게 할 수 있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밤이 늦었다 하더라도 나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꼭 노래방에 갔다. 회사를 가지 않는 토요일, 일요일에도 빼놓지 않고 갔다.                  

부르고 싶은 노래를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 놓기까지 했다. 번호만 적은 곡은 뭐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비밀인데 사실 나는 음치와 박치를 다 갖춘 ‘완전체’이다. 그렇지만 노래와 춤을 아주 많이 사랑한다. 이 두 가지는 6개월 동안 혼자 노래방을 다니며 알게 된 것들이다. 내가 음치라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엄마에게 진지하게 물어본 적도 있다.


“엄마, 나는 누굴 닮아서 노래를 못하는 거야?”   

“닮긴 누굴 닮아. 나랑 네 아빠는 어렸을 때 어린이 합창단까지 했었어.”

“뭐 정말? 근데 난 왜 그래?”

“음… 아마 네가 어렸을 때 잘 울지 않아서일 거야. 다른 아기들은 걸핏하면 목청껏 울어댔는데, 너는 잘 울지 않더라고. 그때 목소리를 잘 트이지 않아서가 아닐까…”

“… …”


신빙성은 (전혀) 없지만 엄마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평소 목소리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혼코노를 하기 전까지 목청껏 소리를 내지르거나 울어본 적 없다. 목소리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몰랐던 것 같다. 춤도 마찬가지다. 혼자 노래방을 가서 처음으로 무아지경 속에서 춤을 추었다. 정확히 말하면 동서남북으로 몸을 흔든 것뿐이지만. 혼코노의 가장 큰 매력은 여기에 있다. 내가 어떤 노래를 부르든, 춤을 잘 추든 못 추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1평 정도의 작은 공간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그저 몸을 맡기면 된다.  

내가 이 구역 코인노래방의 댄스장인이다! (사진 출처 구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혼코노의 매력을 몇 가지 나열해 보았다.

1시간 동안 발라드만 불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가끔은 소찬휘인 척, 아이유인 척, 에일리인 척 해도 비웃을 사람이 없다.

지쳐서 누워 있어도 밟히지 않는다. (다수와 함께 가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을 아껴 마시지 않아도 된다.

하이라이트 안무를 독차지할 수 있다. (예시.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속 효연의 댄스 브레이크)

집-회사-집 루트에서 벗어나 새로운 재밋거리를 찾기 위해 시작한 혼코노는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해결책이 되었고, 이제는 쉽게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취미로 자리 잡았다.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나는 열심히 혼자 노래방을 갔다. 가끔은 친구들과, 어느 날은 동생과 함께 가기도 했다. 꾸준히 노래방에 출석했지만 나의 노래와 춤 실력은 전혀 늘지 않았다. 그러면 어떤가. 중요한 건 내가 노래와 춤을 사랑한다는 사실이니까.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이 순간이 나에게는 매우 소중하다. 그러니 코로나 19는 하루빨리 지구를 떠나라. 내 가슴 속 가무(加貿)에 대한 열정이 곧 폭발할 것 같으니까.(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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