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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Apr 19. 2020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던 두 친구

안녕하세요, <라라랜드>의 미아가 되고 싶은 길 잃은 사람 김미아입니다

작가『김미아』  

    

다르다

나와 남을 구분 짓는 선. 배척/질투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단, 인정한다면 새로운 관계를 열어 줄 가능성이 있다.


우리 같이 책 쓰지 않을래?    

모든 일이 그렇듯, 시작은 랄라의 한 마디에서 출발했다. 그날은 그가 재작년에 만들었던 책을 내게 선물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글과 그림 모두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책을 만들었을 줄은 전혀 몰랐다. 그가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그때까지 나는 뭐 했나’ 자괴감에 빠지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가 먼저 제안해줬을 때 덥석 잡았다.      


랄라와 나는 사소한 거 하나부터 다르다. 패션 스타일부터 성격, 가족사, 건강에 대한 생각, 음식을 대하는 자세, MBTI까지. 나는 INTP다. 이상은 논리적인 사색가지만 현실은 방구석에서 아무도 웃지 않을 고약한 개그를 생각하며 혼자 낄낄거리는 아웃사이더다. 그래서 선천적으로 밝고 긍정적이며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을 보면 부러움에 배가 아프다. 그런 내가 ENFP(재기 발랄한 활동가)인 랄라와 친구가 되고, 게다가 책까지 쓰게 될 줄이야.      


랄라와는 같은 과 동기였고 노는 무리가 같았다. 그를 처음 본 순간, 친해지고 싶은 마음과 친해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영화를 좋아하고 그림책 작가를 꿈꾸던 그는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다 잘하는 사람이었다. 선천적으로 밝고 좋은 에너지가 나오는 사람이기도 했다. 내가 세상 모든 것들에 불만을 품고 있을 때, 그는 세상 모든 것들에서 배울 점을 찾았다.      


“이 수업 진짜 별로야. 과제만 내주고 수업은 거의 안 하잖아. 교수의 의미를 잃어버렸어.”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도 과제하다 보면 배우는 게 있지 않아?.”     


대강 이런 식의 대화가 많았다. 내게 ‘오늘’은 싫은 것들 투성이었기 때문에 오늘을 무던하게 살아가는 그가 부러웠다. 그를 따라 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무리에 자연스레 끼고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그가 부러웠다. 그와 비슷하게 웃으려고 일부러 호탕한 척했지만 아무도 속지 않았다. 치수가 맞지 않는 옷이 자꾸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조금만 무신경해져도 원래 성격이 튀어나왔다. 애당초 랄라와 난 정반대 성격이었기 때문에 따라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난 긍정적이지 않다.      

네 성격이 보인다, 는 말을 들을 만큼 시니컬한 글을 좋아한다. 교묘히 꼬집는 문장들이 매력적이다. 시침 뚝 떼고 아픈 부분을 쿡 찌르는 느낌. 영화 잡지 기자 일을 하면서 아무도 웃지 않을 글들을 썼다. 다행히도 나랑 같은 유머 코드를 가진 INTP(분명 INTP일 것이다)들이 웃어 준 덕분에 ‘노잼’이라는 댓글 파티에도 잘리지 않고 먹고살 수 있었다.


그렇게 글로 근근이 먹고사는 데 익숙해졌을 무렵, 돌연 근근이 먹고살기 싫어졌다. 번듯한 직장에서 연봉 3000쯤 받고 매일 머리 쥐어 짜내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매주 돌아오는 기획회의에 금요일 밤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또 어떤 글이 잘릴까, 쳐내 질까, 짜내야 할까. 일요일 밤이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찾아왔다. 주중엔 무력감으로 출퇴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람 사는 꼴이 아니었다. 수당 없는 야근을 하며 겨우 글을 완성시켜도 돌아오는 건 ‘노잼’ 댓글뿐이었다. 그만두고 싶었다.      


그렇게 회사를 나와 공기업도 준비하고, 공공기관에서도 일했다. 글을 쉰 지 단 1년, 나는 또 글을 쓰고 싶어 졌다. 이번엔 ‘내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꾸준히 글을 쓰던 랄라와 함께 책을 만들고 싶었다. 모든 게 달랐던 우리가 모인 이유다. 다시 글을 쓰고 싶었다. 심성 꼬이고 질투 많은 내가 부러움의 대상과 함께 글을 쓴다는 건 굉장히 큰 도전이었다. 내 안에 켜켜이 쌓여 있던 무언가가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책을 함께 쓰자는 그에게 처음으로 말했다.      


“나 사실은 너 부러워했어. 난 부정적인데, 넌 긍정적이잖아. 그림도 잘 그리고, 꾸준히 일을 끝까지 해내고. 우린 정말 다르다고 느꼈어.”     


평생토록 말할 일 없다고 생각했던 열등감을 누군가에게 밝힌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일이었다. 그가 ‘그런 음침한 생각을 갖고 있었어?’라고 경멸할 수도 있었다. 그는 내 예상보다 훨씬 무던한 반응을 보였다. 언제나 그렇듯, 안온하고 편안하게.      


열등감이라는 세계에 금을 내니 글을 쓸 때 걸러질 것들이 많이 줄었다. 나는 부정적인 사람이고, 오늘이 싫고 내일은 더 싫고 과거가 제일 싫은 사람이다. 욕심도 많다. 과거엔 이런 내 모습이 부끄러워 안 그런 척했지만 이젠 인정한다. 랄라는 내게 부끄러움을 심어주는 존재이자 열등감을 깨 주는 친구다. 그런 그와 함께라면 언젠가 글로 먹고살 수 있을 것 같다. 다시금 글을 쓰는 행위가 두려우면서도 싫지 않은 이유는 오로지 그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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