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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Apr 26. 2020

저도 주인공 할래요

아싸에게도 주인공이 되고픈 열망은 있었다

한때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어요

작가 『김미아』  


가무하다 (歌舞--)

주인공인 인물과 아닌 이를 명확하게 가르는 선.


사람마다 인생 리즈 시절이 있다. 인기도 많고 뭘 해도 술술 풀리고, 세상이 나에게 긍정을 보내는 시기. 나는 아마도 5살이었던 것 같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 나는 남들보다 키는 머리 하나가 컸고 똑똑하기도 했다. 친오빠가 공부 방면에서 영재였다면, 나는 인간관계의 영재였다. 그래서 그때 사진과 영상이 많다. 실컷 노래를 부르고 말도 안 되는 춤을 춰도 '연예인 해도 되겠네'라는 소릴 듣던 터라 자신감은 한껏 올라가 있었다.


인생 리즈 시절의 마지막인 어린이집 졸업식에서 나는 MC를 맡았다. 분홍색 공주 드레스를 입고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까만 강당에 나만이 빛을 받고 있었고 수백 명이 나를 쳐다봤다. 겨우 어린이집 졸업식에 수백 명이 올 리 없으니 아마도 기억이 왜곡되어 있는 걸 테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순간 내가 세계의 주인공임을 알았다.


유치원에 입학하고 나서도 여전히 주인공 행세를 하고 싶었다. 친척들이 "춤 좀 춰 봐!"라고 하면 슬쩍 앞으로 나가서 엉덩일 흔들었다. 물론 마지막에 용돈을 주시면 한 번 거절하는 센스도 잊지 않는 세련된 꼬마였다. 스스로를 타고난 연예인이라 믿었다. 진지하게 "엄마, 나 스카우트당하면 어떡해? 난 공부도 잘하는데, 거절해야겠지?"라고 물어봤다.

마라카스. 중남미 지역의 민속음악에서 빠질 수 없는 악기다.

그러나 유치원 졸업식에서 나는 갑자기 추락했다. 키가 크다는 이유로 맨 끝에 서서 마라카스를 흔들어야 했다. 다들 멋있는 역할이었는데 나만 마라카스였다. 닭다리처럼 생겨서 그냥 흔드는 게 전부인 악기.(그 당시엔 그렇게 생각했다) 샤카샤카, 소리밖에 나지 않는 마라카스를 흔들고 있자니 바보 같아 보였다. 한 번도 내가 주인공이 아닌 적이 없었는데, 최소한 가운데 줄은 됐었는데. 바보 같은 샤카샤카 악기를 들고 바보 같이 흔들고 있을 바보 같은 내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이럴 리가 없어, 앞으로 없을 거야.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니지만 대개 저 대사는 앞으로 쭉 그럴 것이라는 복선이다. 초등학교 학예회를 준비하며, 이번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라고 믿었다. 나는 모든 걸 그 뮤지컬에 걸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대사를 외웠고 가장 빨리 춤과 노래를 익혔다. 그리고 무대 당일, 나는 모든 걸 쏟아냈다. 다시금 주인공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기회였다.


그 날 저녁, 한껏 고양된 기분으로 촬영본 비디오를 틀었다. 촬영본을 본 가족들은 깔깔 웃으며 '연예인이네, 연예인'이라고 놀려댔다. 난 땀을 뻘뻘 흘리며 춤 비슷한 걸 추는 괴상한 아이였다. 키가 남들보다 두 뼘은 커 삐걱거리는 모습이 더 눈에 띄었다. 화장은 다 녹아내렸고 외운 걸 까먹지 않으려 눈을 치켜뜬 상태였다. 내 옆에 경쟁상대도 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친구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역할을 소화해 냈다. 무대 아래서 빛나던 친구였다. 그 날 이후, 내가 무대에 올라가는 일은 없었다.


이후로 나는 내성적인 성격이 되었다. 한동안은 사진 찍는 걸 너무 싫어해 중, 고등학교 때 사진은 거의 없다. 반별 장기자랑에서는 무대를 꾸미는 역할을 맡았다. 의외로 눈에 띄지 않게 까만 옷을 입고 재빠르게 무대를 채우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기분 좋은 긴장감과 '내가 없으면 돌아가질 않는군'이란 생각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결국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고 싶었을 뿐이었다. 주인공이고 싶었던 이유는 꼭 필요한 존재이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여전히 누군가에게 주인공이고 싶다. 아싸지만, 누군가의 인생에는 인싸가 되고 싶다.

주인공의 몸짓, 컬러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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