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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May 03. 2020

단단한 마음을 기르는 법

이별하는 게 두려워 어떤 것도 기르고 싶지 않아요

작가 『김랄라』  


기르다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받는 행위. , 그에 따른 책임은 온전히 기르는 사람의 .


이별 뒤에는 좋든 싫든 항상 무언가가 남는다. 내 경우에는 그 무엇이 주로 다짐이었다.


아홉 살 무렵 예고도 없이 찾아온 이별은 처음으로 상실감을 알려주었다. 그 대상은 처음이자 마지막 반려견인 똘망이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섯 농장을 하던 친척집에 놀러 간 적 있는데, 마침 그 집 개가 새끼를 낳아 입양 보낼 가족을 구하고 있었다. 전부터 개를 기르고 싶어 했던 아빠는 엄마와 상의도 없이 강아지 한 마리를 차에 태웠고 똘망이와는 그렇게 엉겁결에 식구가 됐다. 나와 동생은 다른 새끼들보다 눈이 유독 크고 반짝인 그 아이에게 똘망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사랑스러운 존재는 언제나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똘망아“하고 부르면 자기 이름을 알아듣고는 귀를 쫑긋 세우고 달려오는 영리한 친구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아있는 생명체를 기르게 된 나는 좋은 주인이 되고 싶었다. ‘강아지 잘 기르는 법’이었던가 비슷한 제목의 책을 사서 공부도 시작했다. 매일 산책을 시키고 학교 친구들에게 똘망이를 소개하기도 했다. 아마 여덟 살 아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영원히 함께일 것 같았던 똘망이와 떨어져 살게 된 건 가족이 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때였다. 똑똑했지만 예민하기도 했던 똘망이는 작은 소리에도 사납게 짖어댔다. 우리 가족에게는 늠름하고 믿음직스러운 반려견이었지만 이웃에게는 그저 사납고 시끄러운 옆집 개에 불과했다. 동네 주민들로부터 민원까지 들어온 상황이라 엄마와 아빠는 이웃에게 더 이상 피해를 줄 수 없어 똘망이를 시골에 사는 외할머니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속상한 마음이 컸지만 외할머니 집에 자주 놀러 간다는 조건으로 나와 내 동생도 동의했다. 다행히도 똘망이는 넓은 시골집에 잘 적응해 갔다. 외할머니 집에 갈 때마다 우리 가족을 잊지 않고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던 똘망이가 기특했다. 똘망이가 있기에 차로 3시간 걸리는 먼 시골집도 설레는 마음으로 갈 수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주황색에 사로잡힌 나와 사랑스러운 똘망이.

사건은 그해 여름에 일어났다.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엄마의 통화 소리에 눈이 떠졌다. 똘망이가 없어졌다는 외할머니의 전화였다. 엄마는 짧게 통화를 마치고 깨어있던 내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침부터 마당에 똘망이가 보이지 않자 외할머니는 똘망이의 이름을 부르며 온 동네를 돌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저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길을 잃어버린 똘망이가 어딘가에서 나를 애타게 찾고 있을 게 분명했다.


돌아오는 주말 똘망이를 생각하며 외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대문을 열었지만 우리를 반기는 똘망이가 보이지 않았다. 똘망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감했다. 꼬리 치며 달려오던 그 사랑스러운 아이는 그곳에 없었다. 더 이상 똘망이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한동안 어떤 일을 해도 기쁘지 않았다. 아홉 살이 견디기에는 너무 큰 아픔이었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상실감이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꿈에 똘망이가 나온 적도 많았다. 그런 날이면 죄책감이 더욱 커졌다.


외할머니에게 똘망이를 맡기지 말았어야 했어.

똘망이에게 집으로 돌아오는 훈련을  시켰어야 했나.

애초에 똘망이를 키우지 말았어야 했어.

 못난 주인이야.

개를 키울 자격도 는... ...


똘망이와의 이별은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그럴 능력도 없고 같은 아픔을 또다시 겪고 싶지도 않았다. 떡국을 열 번도 안 먹어본 아홉 살 어린 인생이었지만 양육에 대한 책임감을 몸소 느끼게 됐다.  

똘망아, 난 지금도 종종 너의 사진을 보며 너를 잊지 않으려 해.

처음 키우게 된 반려견과의 이별은 내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 후로 동물뿐 아니라 내가 책임지지 못할 그 어떤 것도 키우지 않게 됐다. 너무 많은 사랑을 주면 그만큼 아프다는 인생의 진리도 깨닫게 됐다. 더불어 내가 이별에 약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만남에 관해서라면 나는 꽤 능숙한 편이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 반면 이별은 굉장히 서툴다.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게 될까봐 두렵다. 같은 이유로 연애를 꺼리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따른다는 것을 스물여섯 해를 지내보고 나니 저절로 알 수 있었다. 세상에 좋은 이별이 어디 있겠냐만은 이제는 나를 위해서라도 이별에 무던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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