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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Kim Aug 07. 2021

아홉 살 예준이의 사과 주먹

어린 가슴에 박힌 이름,  엄마

ㅣ 반가운 연락


정말 오랜만에 예희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니가 나더러 촌년, 변신 좀 하자며 코엑스로 끌고 가서 사줬던 치마 사진을 찾았어!”



 예희는 외삼촌의 딸이다. 14년 전 울산에 살고 있던 예희는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면서 1년을 내 집에서 함께 살았다. 예희의 연락을 받자마자 30년 가까운 세월의 감정이 깨진 향수병처럼 순식간에 퍼졌다.




ㅣ 함께 살게 된 사촌 동생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어느 날 하교를 하고 집에 왔는데 내가 가장 귀여워하는 사촌 동생인 4살 예희가 내 방에서 놀고 있었다. 명절 때만 만날 수 있었던 아기 동생이라 나는 뛸 듯이 기뻐서 예희를 꼭 껴안고 뽀뽀하며 난리를 쳤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예희와 예희 오빠인 예준이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엄마는 우리에게 말했다.

“며칠 뒤에 예준이, 예희, 우리 집에 세 들어올 거야. 학교도 전학 올 거고. 앞으로 잘 지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설렜다.



8살 예준이는 잘 모르는 우리가 보기에도 매우 영특한 아이였다. 책벌레였던 우리 엄마는 온갖 전집을 사들여서 집을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우리 셋은 단 한 권도 읽지 않았고 책 전집은 벽지가 돼가고 있었다.



그런데 고작 유치원을 졸업한 예준이는 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서 삼국지, 서유기, 한국 수필집, 도스토옙스키, 폭풍의 언덕 등을 읽어냈다. 저 꼬마에게서 어떻게 저런 집중력과 인지능력이 나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이 신기하기만 했다.



예준이는 불러도 잘 듣지 못해서 내가 소리를 지르고 성을 내야 “응? 누나 나 불렀어?”라고 대답했다. “너 진짜 혼나 볼래?! 와서 밥 먹으라고!”  예준이는 행동이 느렸다. 말도 없었다. 어린 꼬마가 애늙은이 같이 답답하기만 했다.



4살 예희는 그저 마냥 사랑스러운 아기였다. 어쩜 저렇게 하얗고 뽀얄까. 눈망울은 또 어쩜 저렇게 크고 영롱할까. 인형처럼 예쁜 예희는 성격도 밝고 조용해서 떼를 쓰거나 까부는 것 한 번을 보지 못했다. 순하고 해사한 얼굴로 웃기만 한, 집안의 귀염둥이였다.




ㅣ 짐승처럼 울고 있던 엄마


어느 날 엄마가 우는 걸 봤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그대로 얼어버렸다. 엄마는 어두컴컴한 주방 싱크대 앞에 쪼그리고 앉아 바닥을 기고 있었다. 가슴을 퍽퍽 둔탁하게 치고 쥐어뜯으며 꺼이꺼이 숨이 넘어갈 듯 울고 있었다.



엄마의 옷은 온통 진흙으로 뒤덮여 있었고 머리는 젖은 채 산발이 되어 있었다. 흙투성이 맨발로 바닥을 구르며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던 엄마를 현관에서 본 순간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나와버렸다. 엄마가 왜 그렇게 우는지, 엄마가 괜찮은 건지 걱정도 되지 않을 만큼 그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 순간 엄마는 다리 하나가 뜯겨나간 짐승 같았다.




장녀였던 엄마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밥을 지었다. 억울하게 재산도 다 빼앗기고 병까지 얻어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외할머니를 도와 다섯 동생들의 매 끼니를 챙기고 손빨래를 하며 업어 키웠다. 그 고된 노동과 숨 막히는 한숨은 외삼촌들과 이모들 모두 시집, 장가를 다 가고 나서야 끝이 났다. 엄마의 노고를 가장 고마워했고 누나를 잘 따랐던, 누구보다도 각별했고 정이 많았던 착한 남동생이 예준이, 예희의 아빠 석이 삼촌이었다.



예준이, 예희의 엄마인 외숙모를 보면 늘 어려웠고 긴장감이 들었다. 석이 삼촌은 고등학교 수학 교사였고, 외숙모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외숙모는 다른 외숙모들처럼 쓸데없는 말을 하는 법이 없었고 웃는 것도 본 적이 거의 없었고 늘 차가웠다. 갓 태어난 아기 예희가 너무 예뻐서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예희를 안으려고 하면 기계 같은 음성으로, “김지은. 예희 내려놔. 자꾸 안아주면 어리광만 늘어.”라고 말했다. 10살 정도였던 나는 외숙모가 기계 인간 같이 느껴졌었다.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채 울부짖으며 울었던 엄마는 그날 외숙모가 근무하던 초등학교를 다녀온 것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던 6월, 그날은 외숙모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의 어머니회 회의가 소집된 날이었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우산을 챙겨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들이 교문을 꽉 채우고 있었다.



엄마는 한 손엔 캠코더를, 다른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고 운동장 한가운데서 외숙모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렀다. 학교 관계자들이 나와 엄마를 쓰레기 더미 마냥 질질 끌고 나가 교문 밖으로 던졌다. 엄마는 비에 젖은 질펀한 운동장 진흙 위에 주저앉으며 눈물인지 비인지 모를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던 무능의 울분을 토해내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ㅣ 이상한 걸 본 예준이


 예준이는 예준이 엄마가 교사로 근무 중인 초등학교에 입학했었다. 그리고 예준이는 이상한 걸 봤다. 엄마와 예준이의 담임은 아주 친밀했고, 예준이의 교실에서 자주 목격이 됐다.



우리 엄마와 큰 외삼촌은 예준이 엄마를 미행해, 시내 외곽의 한 오피스텔에 침대며 소파가 들어가는 현장을 몰래 숨어 사진으로 촬영했다. 그 오피스텔로 팔짱을 낀 채 웃으며 나란히 들어가는 석이 외숙모와 예준이의 담임을 본 엄마는 그 자리에서 혼절을 했다.



석이 삼촌은 외숙모의 모든 것을 용서할 테니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돌아오라며 붙잡았다. 그러나 한 장면을 본 석이 삼촌은 결국 외숙모를 놓았다. 4살 예희, 우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작은 예희가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를 꼭 안았다. 외숙모는 두 손으로 침착하게 예희를 밀쳐 냈다. 다시 엄마에게 뛰어가 엄마의 몸통을 있는 힘껏 움켜쥔 예희의 작은 손을 기계처럼 하나, 또 하나씩 정확하게 떼어 냈다. 그리고 예희를 차갑게 한 번 보고는 그대로 등을 돌려 가버린, 그런 장면이었다.




ㅣ 함께 살게 된 우리


삼촌은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면서 먼 거리를 출퇴근했다. 삼촌은 야근이 잦았다. 학교 일이 뭐가 그렇게 많은지 밤까지 학교에서 일을 했다.



예민했던 나는 독특했던 예준이가 답답하고 못마땅할 때가 많아서 자주 구박을 했다. 자존심이 셌던 예준이는 자기보다 훨씬 큰 누나에게 주눅 드는 법이 없이 날 노려보며 화를 더 돋웠다. 그런 날은 퇴근한 석이 삼촌에게 예준이가 엄청나게 혼난 날이었다. 이상하리만치 예준이에게 화를 내며 혼낸, 순하기만 했던 석이 삼촌이 무척 낯설었다. 예준이에게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 시절 나는 내 사춘기 모든 화를 어린 예준이에게 쏟아냈다.



엄마는 매일매일 도시락을 7개나 쌌다. 고등학생이었던 언니의 점심과 야간 자습 때 먹을 저녁, 중학생이었던 내 점심과 야간 자습 저녁, 내 동생의 점심, 예준이의 점심, 석이 삼촌의 점심까지 엄마는 매일같이 새벽밥과 씨름했다. 엄마는 고된 장사까지 하면서 어떻게 두 집의 살림까지 그렇게 완벽하게 다 해냈을까.



한창 회사일에 매달렸을 나이의 아빠, 가방 원단에 풀을 바르는 부업까지 하며 양쪽 살림과 다섯 아이들을 먹여 키워냈던 엄마, 누나 부부에게 면목도 없이 매일이 고통스러웠을 석이 삼촌, 대입을 앞두고 한창 예민했던 고3의 언니, 지독한 사춘기의 나, 예준이 남매에게 순위가 밀려 혼자만의 세상에 갇힌 내 동생, 하루아침에 느닷없이 엄마를 잃은 어린 예준이와 예희, 이 모든 걸 줄타기하듯 위태롭고 조마조마하게 바라보고 있었을 외할머니, 그리고 근처에서 숨죽이며 눈치를 보고 살았을 삼촌들과 이모들의 가족들.

    모두가 숨 막히고 쓰라렸던 그 시절을 저마다의 한숨으로 들키지 않게 각자 견뎌내야만 했다.

 



ㅣ 아홉 살 예준이의 사과같이 단단한 주먹


어느 날이었다. 예희가 엄마를 찾으며 숨이 넘어갈 듯 울어댔다. 한 번도 떼를 쓴 적이 없었던 순둥이 예희였다. 예희는 그동안 엄마를 찾지도 않았었다. 알 수가 없었다. 그날따라 왜 그렇게 예희가 발버둥을 쳤는지.

    


예희가 엄마와 헤어진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던 날, 우리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징징거렸다. “고모! 예희, 엄마 보고 싶어! 고모, 우리 엄마는 어딨어? 예희 엄마한테 데려다줘. 응? 고모!” 



그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은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다. 갑자기 예준이가 성큼성큼 달려오더니 벌겋고 단단한 사과 같은 양 주먹으로 예희를 때려눕혀 사정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예준이가 내 기에 눌리진 않았지만 그렇게 난폭한 행동과 눈을 부라리는 표정은 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너무 놀라 예준이를 떼어냈지만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엄마와 나는 둘 다 나자빠졌다. 그렇게 몇 차례 더 예희를 주먹질 한 예준이는 힘이 다했는지, 저도 놀랐는지 위에서 예희를 짓누르며 이를 악물고 나지막이 말했다. 조그만 예준이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우리. 엄마 없어...... 이제! 우리는 엄마가 없어! 너랑 나는 이제 엄마가 없다고! 엄마는 죽었어! 한 번만 더 엄마 얘기하면 너도 죽을 줄 알아! 죽여버릴 거야!”



예희는 아프고 놀라서 오빠를 빤히 쳐다보더니 신음하듯 울었다. 고모를 붙들고 엄마가 보고 싶다며 생떼를 쓰던 아이가 저 작은 가슴으로 울음을 견디려고 이를 악다물고 참고 있었다. 4살 보드라운 앵두 입술 사이로 신음 같은 울음이 새어 나왔다.



엄마는 예준이를, 나는 예희를 끌어안고 우리 넷은 소리 없이 울었다. “예희야, 괜찮아? 많이 아프지? 언니가 안아줄게. 우리 애기, 울지 마.” 엄마는 말을 잊었는지, 잃었는지 아직도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눈을 위로 치켜뜨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서 있는 9살 예준이의 발목만 잡고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엄마의 오돌토돌 튀어나온 마른 한 줌의 등어리는 사시나무 떨 듯 파르르 떨고 있었고, 엄마의 얼굴 바로 아래 카펫은 색깔이 점점 진하게 번져나갔다.




ㅣ 매일 푸른색이었던 예준이의 종아리


예준이는 하루 종일 말이 없었고 소파에서 책만 읽었다. 어떤 날은 또 정신 나간 멍한 눈으로 하루 종일 게임만 했다. 예준이는 석이 삼촌에게 회초리로 맞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나는 확률과 통계 단원이 제일 싫었다. 이 부분만 매번 틀렸다. 나는 기말고사를 앞두고 석이 삼촌에게 가르쳐 달라고 했다. 삼촌은 정성껏 한 달 동안 과외를 해주었고 나는 드디어 만 점을 받았다.



누나 말 잘 들으라며 매일 같이 예준이를 혼내며 회초리를 댔던 삼촌은 내 공부를 가르쳐 줬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자존심 센 예준이가 누나들과 고모부에게 미움받을까 봐 어린 고집을 부러뜨리려고 여린 살갗에 닿는 회초리를 부러뜨렸던 석이 삼촌. 예준이의 종아리가 푸르러지는 만큼 석이 삼촌의 마음은 검붉어져 갔다.


이 작은 몸 안에 담겼을 분노와 그리움을 아홉 살의 너는 어떻게 견뎌냈니.



ㅣ 그 후로 우리는


몇 년이 지나 석이 삼촌은 외할머니와 우리 엄마에게 끌려 나가 선을 봤다. 새 외숙모는 키가 아담하고 얼굴이 복스러웠고, 성격도 사근사근해서 친근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이제는 떨어져 살게 된 예준이, 예희를 새 외숙모가 어떻게 대하는지 나는 명절 때마다 유심히 관찰했다. 1년에 두어 번 만나는 예준이, 예희의 표정과 말을 면밀히 살폈다.



예희는 대학생이 되었다. 나는 20대 후반, 가장 생기롭고 세련된 모습으로 신나게 회사를 다니던 때였다. 울산에서 올라온 예희는 내 집에서 사는 걸 정말 좋아했다. “언니야! 학교 선배들이 나더러 어디 사냐고 물어서, ‘청담동에 살아요.’ 했더니 다들 놀래! 청담동이 이런 동네인지 몰랐는데 진짜 자랑스러워! 이게 다 멋진 언니를 둔 덕이지. 나는 언니가 최고로 멋지다!”



 예희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아기 때도 그랬지만, 정온하면서도 생기로웠고 맑고 따뜻했다. 영리하고 재치가 있어서 말도 재미있게 잘했다. 눈치도 빠르고 손도 빨라서 집안일도 야무지게 척척 해냈다.



우리가 같이 살 때, 예희는 새 외숙모와 매일매일 통화를 했다. 새 외숙모는 내 집으로 김치며, 예쁜 극세사 이불들, 살림들을 보내왔다. 석이 삼촌은 매달 내 계좌로 넉넉한 돈을 보내주었고, 무심한 가운데 고마움을 표현했다. 예희가 새엄마와 통화를 할 때마다 나는 귀를 쫑긋하고 엿들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자연스럽고도 절절한 모녀의 통화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새 외숙모와 전화를 끊자마자 예희가 나에게 말했다. “언니야! 사람들이 엄마랑 나랑 진짜 닮았대! 나는 엄마가 젊은 게 너무 좋아. 근데 언니야, 우리 엄마는 왜 그렇게 일찍 결혼을 했을까? 오빠를 20살에 낳은 거 아니야?! 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네! 내 나이에 애를 낳은 거네!”



나는 들고 있던 그릇을 떨어뜨릴 뻔했다. 아! 예희가 아직 모르고 있구나...... 예희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새엄마가 들어오게 됐는데 어째서 예희가 기억을 못 하고 있을까?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중, 고등학교를 방황하던 예준이는 학교 출석 일수를 겨우 채우고 수능시험을 봤다. 학교 성적은 형편없었다.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가출도 밥 먹듯 했다. 그러고도 예준이는 서울의 중위권 4년제 대학을 합격했다. 우리 모두는 누구도 축하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저 똑똑하고 영특한 예준이가 생모에 대한 분노만 없었더라도, 그래서 마음의 상처없이 그저 평범하게 학교만 잘 다녔더라면 예준이 머리에 하버드라도 갔을 아이라고 생각했다.




ㅣ 제대 후 서울에서 만난 예준이


 예준이가 군대를 제대하고 연락을 해왔다.

 “누나! 나 제대했다. 밥 좀 사줘!”



우리는 강남역 10번 출구 뉴욕제과 앞에서 만났다. 예준이는 어느새 나보다 한 뼘이나 더 커 있었다. 훤칠하고 잘 생긴 예준이를 보니 정말 반갑고 기뻤다.



우리는 처음으로 같이 맥주를 마셨다. 예준이는 군대에서 생활했던 것, 학교 수업에 나가지 않아 학사 경고를 받은 것, 정선 카지노에 처음 가본 것, 여자 친구가 생긴 것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여자 친구에게 200만 원도 넘는 크리스찬 디올 가방을 사줬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당장 헤어지라고도 했다. 내 회사 생활 이야기를 듣던 예준이는 내가 만날 회사에서 싸움이나 하고 다닐 줄 알았는데 까탈스러운 성질에 잘 컸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말이 없던 예준이가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예준이는 학교를 그만 둘 거라고 했다. 돈을 벌 계획을 신나게 설명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허황되고 불안해 보였다. 아니 예준이를 보는 내 마음이 알 수 없이 불안했다.



나는 어렵게 예준이에게 말을 꺼냈다. “예준아. 있지. 예희는 엄마가 새로 오신 엄마인 줄 모르는 것 같더라고.” 예준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걔는 몰라. 친엄마인 줄 알아. 고모 집에서 살았던 그 시간들도 기억을 거의 못 하더라고. 그냥 며칠쯤 살았던 걸로 알아. 나도 처음에는 얘가 왜 이러나 싶고 거짓말하는 줄 알았어.” 그랬음에도 동생에게 엄마가 새엄마라고 아직도 말하지 않은 예준이가 너무 가슴이 아팠다. 너는 가족들 사이 어디쯤 있었을까.



예희와 새엄마는 사이가 무척 좋았다. 예준이는 사사건건 새엄마와 부딪혔다. 나는 새 외숙모가 이해됐다. 자존심 강하고 고집 센 예준이가 중고등학교 때 나쁜 무리들과 어울려 다니며 가출도 하고 사고만 쳤는데 새엄마 마음은 오죽했을까. 예준이는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 석이 삼촌에게 매를 맞았다. 예준이는 점점 더 가족 밖으로 겉돌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새 외숙모에게도 아이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외숙모는 폭력적이고 불행했던 전 결혼생활이 있었다. 자신의 생때같은 아이들을 떼어놓고 나와 남의 자식을 길러냈던 외숙모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 예준이와 예희의 밥을 차리고 방을 청소했을까. 그 와중에도 새 외숙모는 살림에 보태겠다고 당시에 교감이었던 석이 삼촌의 만류에도 마트 시식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언니와 내가 가끔 들르면 외숙모는 무척 반가워하며 우리에게 국수를 사주었다.



작고 여린 한 줌의 몸뚱어리여도, 그 안에는 우주보다도 더 큰 어마어마한 눈물 한 주머니쯤은 품고 사는 게 인간이라지만, 같은 여자로서 새 외숙모의 삶이 몹시도 처연하고 애처로웠다. 외숙모의 언제나 밝고 생글거렸던 표정과 목소리가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더욱 가슴이 아렸다. 외숙모의 자식들도 궁금했다. 그리고 죄스러웠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인생이라는 게 너무나 슬펐다.



외할머니는 가끔씩 나에게 전화를 했다.

“지은아. 할매다. 저, 저, 예희 잘 있제? 거 예준이랑은 연락 하나? 예준이도 좀 디다 보고 그랄래? 예희야 뭐, 걱정이 안 되는데, 우리 예준이 그놈이 니도 알다시피 보통 놈이가? 우리 예준이가 얼마나 똑똑했노! 참 안 됐다 아이가...... 우리 예준이 그 불쌍한 놈도 니가 좀 챙기주면 할매가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죄스러웠다. 중학교 2학년, 내 사춘기 온갖 감정을 작은 예준이의 몸통에 처박듯 했던 나. 쥐어짜 낸 내 분노를 작은 몸으로 오롯이 당해 내야만 했던 그 시절 아홉 살의 꼬마 예준이.



예준이와 예희가 우리 집에 이사를 들어왔던 그 시절 한여름처럼 예준이와 내가 서울에서 다시 만난 그날도 매미소리로 뜨거웠던 한여름 8월이었다. 우리는 강남역 뱃고동 식당에서 얼큰한 오징어 불고기와 시원한 맥주를 먹고 마시며 신나게 떠들었다. 나는 어떠한 사과도, 어떠한 속마음도 꺼내지 못 한 채 겉만 빙빙 맴돌다 나왔다.



시원한 지하 식당에서 뜨거운 지상 밖으로 올라오니 차가워진 피부가 열기로 사르르 데워졌다. 그 순간, 그 시절 여름 냄새가 스르르 올라왔다. 군인 모자를 쓴 예준이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사과 주먹의 9살 예준이었다.



그 후로 예준이는 돈을 벌겠다며 학교를 그만두고 중국으로 갔고 이후로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ㅣ 나를 지지해 준 석이 삼촌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내가 교육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반대했다. 아무리 공부를 잘했다 하더라도, 내 전공도 아니고 그것도 남들보다 십 년 이상이나 뒤처져서 선생을 하겠다 그러냐며, 그냥 다니던 회사 잘 다니다 승진이나 하라며 다들 말렸다.

  


석이 삼촌만은 달랐다. 그동안 일 중독처럼 일과 공부에 매달렸던 석이 삼촌은 어려운 시험도 다 합격해서 장학관을 거쳐 교장이 돼있었다. 석이 삼촌은 교사가 되겠다는 나에게 당장 전화를 걸어왔고 크게 격려해 주었다.

“지은아. 임용 시험이 결코 만만치가 않거든? 내가 다른 사람이라면 백 번 말리겠지만, 김지은이라면 삼촌이 적극 지지한다! 너는 꼭 해낼 거다. 삼촌은 100% 확신한다. 너를 믿는다. 해봐라. 삼촌이 도울 것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라.”



만 4년이 걸렸다. 대학원 입학시험을 준비했던 날로부터 교사가 되기까지. 매일 잠과 불안과 싸우며 무척 고통스러웠던 그 시기를 지나 석사논문 통과 후 임용 시험을 봤다. 1차 전공 논술, 2차 실기 두 과목, 수업실연, 수업 지도안, 면접 모두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고, 전국 최고득점, 수석 합격이었다. 



엄마도 울지 않은 걸 석이 삼촌이 울었다. 고속도로를 달려 삼촌이 근무하는 학교로 찾아갔다. 사택도 구경했고, 앞으로 교사로서 역량을 어떻게 키워나갈지 삼촌은 신이 나서 조언해 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외숙모는 여전히 밝고 상냥했다. 삼촌은 우리 집안에서 삼촌과 같이 교사가 나왔다는 걸 매우 반가워했다. 나는 장학사가 될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삼촌은 나보다 더 들떠서 내가 교장이 되는 큰 그림까지 그리고 있었다.




ㅣ 그리고 지금


예희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대기업 신입사원으로 합격했다. 싹싹하고 영리하고 일도 잘했던 예쁜 예희는 어딜 가나 사랑을 받았다. 같은 부서의 사수와 결혼도 했고 얼마 전에는 귀여운 아기도 낳았다.



나도, 예희도. 우리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갓 스무 살, 대학교 1학년이었던 풋풋하고 말갛던 예희는 엄마가 되었고, 가장 예쁜 나이에 생기롭게 직장을 다녔던 나는 교사가 되었다. 석이 삼촌은 흰머리 교장이 되었고, 외숙모는 친정엄마가 되었다. 석이 삼촌 부부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온통 예희의 아기 사진으로 도배가 돼있었다.



어디에도 끼지 못했던 푸른 종아리의 예준이만 지금도 여전히 아홉 살 그때로 혼자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달에 예희를 만나러 간다. 4살 보드라운 진달래 꽃잎 같던 예희가 낳은 더 작은 아기 예희를 보러 간다. 스무 살의 예희와 서른을 앞두었던 내가 곧 만난다. 예희는 그때의 내 나이가 되었고 나는 그 시절, 어른들의 나이가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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