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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Kim Sep 25. 2021

고깃집 아주머니와 카페 아르바이트생 사이

다른 나이들을 보며 나의 지금을 본다.

1. 난생처음 혼자 간 고깃집



난생처음으로 혼자 고기를 먹으러 갔다.

아주머니는 "혼자?"를 재차 확인했다.

나는 고기를 사이에 두고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는 손님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머뭇거리다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아주머니는 그런 나를 약간은 안쓰러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곁눈질했다.



"아니, 어떻게 혼자 왔어? 아가씨야? 새댁이야?"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대답이 하기 싫은 게 아니었다. 조용히 고기만 먹고 오고픈 그런 마음뿐이었다. 또, 한 번 대답하기 시작하면 끊이지 않는 채팅처럼 '대화'도 아닌 말들이 계속 오가게 되진 않을까 하는 피로감이 미리 예상돼 조용히 웃어넘겼다.


    

나이가 들면 필연적으로 정이 생기나 보다.

자신이 지나온 젊음, 그 나이를 먼저 걸어온 안내자 같은 마음이 장착되나 보다.

우리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볼 때, 그 마음이 완벽한 타인이 되지 못하고 그들에게 부당하거나 위험이 닥친 순간 언제든지 튀어나가 도와주려고 마음속으로 조심스레 준비하고 있는 그런 마음처럼 아주머니는 아닌 척하면서도 내 주위를 맴돌았다. 내가 덥진 않은지, 필요한 건 없는지 계속 살피셨다. 마음으로는 감사해도,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와서 말을 걸까 봐 나만의 투명 벽을 세우며 온몸으로 불판만 바라보며 부지런히 먹다 왔다.






2. 그래. 처음이 없었던 사람은 없지.



고기를 배불리 먹고, 좋아하는 달고나 라테를 먹으러 단골 카페로 갔다.

"달고나 라테에 샷 추가해 주세요."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됐고, 다행히 손님은 조부모와 손녀딸 그룹 3명, 태블릿에 그림을 그리고 있던 젊은 여성 1명뿐이었다.


    

"죄송하지만, 달고나 많이 올려주세요." 

웃으면서 여느 때처럼 주문했다. 처음 보는 그 얼굴은 대답도, 미소도, 어떠한 반응도 없이 굳고 불친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20살이나 되었을까.

'조금만 친절해도 좋을 텐데.'라고 혼자 생각하고 잠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 직원이 내 음료는 안 만들고 계속 폰만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시간이 급했다면 언짢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때 여성 손님이 들어왔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포장을 주문했다. 나도 분명 테이크아웃이라고 주문했는데, 직원은 내 음료는 안 만들고 나중에 온 이 분 커피만 만들었다. 그래도 채근하지 않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나는 늦어도 괜찮다는 신호로 구석자리에 앉아 나도 핸드폰을 봤다.


    

어영부영하던 직원은 내 뒤에 온 손님의 아메리카노를 1잔만 내놓았고, 그분은 "2잔 주문했잖아요!"라고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밖에 정차시켜 놓은 차가 신경 쓰여 종종거리는 듯했다.

동시에 미리 와있던 꼬마 손님이 에스프레소 포장을 추가 주문했다. 직원은 "에스프레소 테이크아웃이오?"


    

그제야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됐다. 완전 초보구나.

나는 카운터로 갔다. 우선 직원에게,

 "저 시간 많으니까 제 음료는 천천히 대충 주세요. 이 분, 아메리카노 한 잔 안 나온 것부터 우선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어린이 손님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말했다.

"있잖아. 에스프레소는 정말 적은 양인데 포장을 하면 종이컵 반도 안 나와. 뚜껑도 없는데 들고 갈 수 있겠어?"

테이블에 앉아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아이의 할아버지는 아이의 엄마가 에스프레소를 좋아해서 엄마에게 줄 커피를 사 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 네. (아이를 쳐다보며) 그런데 에스프레소는 30초 내로 마셔야 하는 거여서 포장해 가면 맛이 없을 거야.  엄마가 에스프레소를 드실 정도면 커피 맛에 훌륭한 입맛을 가지신 분일 텐데 집까지 가지고 가면 맛이 많이 없을 텐데......"

10살 정도의 아이는 내 이야기를 유심히 듣더니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달래요."



내 계산대로 맞아떨어질 때쯤 에스프레소 추출 기계에서는 두 샷이 동시에 나왔다. 직원에게 "이 아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한대요. 그걸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하시면 되겠어요."라고 말했고, 직원은 그때도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젠 내 음료만 남아 있었다. 그들이 다 나가고 나서도 직원은 또 핸드폰만 쳐다봤다.



직원은 핸드폰만 보며 불친절한 여유를 부렸던 게 아니었다.

내가 유행도 다 지난 달고나 라테를 시킨 시점부터 심장이 뛰었을 터였다.

핸드폰 안에 레시피를 메모해 둔 것이 분명했다.

아까 여성 손님의 질문에도 아르바이트생은 굳은 눈빛으로 대답도 없어서 그분은 주문도 늦게 나온 데다 화가 나서 인사도 없이 요란하게 나가버렸다.



이 일이 처음이구나.

어쩌면 인생 첫 아르바이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작년 초 코로나 확산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반짝 유행을 했었던 달고나 라테, 1년도 더 지난 지금은 주문이 거의 없었을 그 메뉴가 주문이 들어와서 얼마나 당황했을까. 게다가 주문 3건이 동시에 들어와서 얼마나 식은땀이 흘렀을까. 당연히 내 말이 귀에 들어왔을 리 없었을 테고, 다른 여성 손님의 질문도 그랬을 것이다. 이 직원의 머릿속엔 누락된 주문에 대한 당황으로 꽉 차 있었을 것이다.



30분이 지나서야 드디어 내 음료가 나왔다.

예상대로 커피가 빠져 있었다.

조용히 카운터로 걸어 나가자 직원은 벌써부터 눈빛에 긴장이 역력했다.

"죄송하지만 커피가 빠져있어요."

"달고나 라테 레시피에는 원래 커피가 안 들어가요."

"네, 알아요. 그래서 주문할 때 샷 추가를 했었거든요."



직원은 주문표를 보더니 죄송하다는 말도 잊은 채 우왕좌왕하며 "다시 만들어 드릴게요."라고 해서,

"아니에요. 그냥 샷 하나 뽑아서 위에 대충 부어주세요."

라고 말했다.

사실 그렇게 하면 달고나가 죄다 녹아버려 이 음료를 마실 이유가 사라진다. 직원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대답 없이 내 말대로 했다.



원래 커피를 가지고 집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카페에 사람이 없기도 했고 달고나도 다 녹아버린 시점에서 원샷을 하고 5분을 머물다가 커피 컵을 반납했다.

"제가 단골이거든요. 오신지 얼마 안 되셨어요?"

"한...... 2주 됐나......?"

"아, 그러셨구나. 정신 하나도 없으셨죠? 안녕히 계세요."

직원은 그때도 멀뚱멀뚱 쳐다만 보다가 나가는 손님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었다. 2주 내내 그랬을 것이다.



10여 년 전에 회사를 다니며 나도 잠깐 카페를 해 본 경험이 있었다. 그때의 나였다면, 이 아르바이트 생을 단단히 재교육시켰을 것이고, 아니, 레시피를 완벽히 숙지하지 못한다면 채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빠릿빠릿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능숙한 아르바이트생만 뽑았다. 일이 서툴거나 상황 운영이 어설프고 답답한 걸 가장 싫어했다.






3. 고깃집 아주머니와 카페 아르바이트생 사이의 내 나이에서



나이는 허투루 먹어도 세월은 헛살게 되지 않나 보다.

빡빡한 나 같은 성격에도 이런 여유와 미량의 아량이 때때로 발현되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고깃집 중년의 아주머니와 앳된 아르바이트생 사이의 내 나이에서 내 시간들도 스트리밍 되듯 스쳐 지나갔다.



나이가 들수록 기품과 우아함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예쁘다'란 말은 언젠가는 내 인생에서 사라질 말이지만 '아름답다'란 말은 나이가 들수록 더 접할 수 있는 말이다. '예쁨'에는 외형과 형식이 담기지만, '아름다움'에는 내면과 내용이 담긴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 하고 지나쳤을 일상이 요즘에는 이따금씩 그동안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깨닫게 한다.

내 인생은 전반이 '경험'과 '깨달음'이었다.



고깃집 아주머니의 친절을 내 나이로 가볍게 보고 성가시게 느낀 지점과 카페 아르바이트생의 무반응을 내 나이로 무겁게 보고 불친절하다고 느낀 상반된 두 지점은 뱃속에서 든든히 채워진 고기가 달콤한 커피에 입가심되듯 오늘의 깨달음으로 와닿았다.


    

세상에 '이유'없는 상황은 없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내 주위로 펼쳐진 상황과 사정을 잘 들여다보게 되는 '여유'와 '안목'이 생기는 것, 그게 사람이 익어가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하는 그런 어설프지만 새로운 생각들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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