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우주 속으로
특별한 미술 수업을 했다.
현대미술작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유고슬라비아)는 76세의 나이에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심오한 철학과 예술관을 담은 퍼포먼스를 지속적으로 해왔는데 그녀의 가장 유명한 퍼포먼스는 뉴욕 MoMA 미술관에서 진행한 「예술가가 여기 있다 (The Artist is Present) (2010)」였다. 큐레이터를 비롯한 미술관 관계자들은 "바쁜 뉴요커들은 아무도 의자에 앉지 않을 것이다."라는 우려를 드러냈지만, 700여 시간의 전시 동안 무려 850만 명이나 다녀갔다.
마리나는 많은 관객들 앞에서도 조금의 미동도 없이 마음의 평정을 유지했다. 한 사람이 의자에 앉기 전까지는. 누군가가 마리나의 앞에 앉는 순간 마리나의 눈동자는 심하게 요동쳤고 마리나는 결국 작품의 규칙을 스스로 깨고 말았다.
마리나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가출과 엄격한 군인 아버지 아래 공산주의와 가정에 희생하는 삶을 견뎠다. 마리나는 작품을 통해 죽음과 외로움, 공포, 존재와 소멸 등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던졌다. 낯설고 생경하고 가학적이기까지 한 퍼포먼스를 통해 그녀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는 늘 익숙하고 좋아하는 것만 한다.
그것이 당신이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마리나는 1976년 운명 같은 사랑, 울라이를 만나게 된다. 둘은 함께 퍼포먼스를 하며 13년 동안이나 연인 관계를 이어온다.
예술적 동지였던 연인 울라이와 함께 마리나의 작품 주제는 고통, 죽음과 같은 무거운 것에서 신뢰, 관계로 바뀌어 갔다. 서로 입을 틀어막고 서로의 호흡만으로 숨을 쉬던 그들은 결국 17분 만에 이산화탄소 과잉으로 기절을 하면서 이 퍼포먼스는 끝이 닜다.
하지만 둘의 예술적 세계관과 철학은 종종 극한으로 치달았고 두 예술가는 결국 13년의 연인 관계를 정리하게 된다. 그들은 예술가답게 이별마저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만리장성의 끝과 끝에서 시작해 서로를 향해 3개월 간 2,500km나 걸어와 결국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이별을 고했다.
마리나는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후 마리나는 '예술가가 여기에 있다'를 진행한다. 앞의 관객이 자리를 뜬 후, 눈을 감고 다음 관객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하던 마리나는 놀란 미소를 짓는다. 마리나의 눈앞에 나타난 건 22년 전 헤어졌던 13년 간의 연인, 울라이였던 것이다.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던 마리나는 그를 보자마자 격한 감정에 휩싸였고 뜨겁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결국 스스로 작품의 규칙을 깨고 울라이의 손을 맞잡았다. 두 연인은 잠시 조우했고 울라이는 시간이 되어 자리를 떴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스토리를 잘 알고 있던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고 오랫동안 박수가 이어졌다.
그 후 울라이는 작년 3월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들의 관계는 비로소 끝이 났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건 우주의 충돌 같다. 하나의 개체와 또 다른 개체의 1:1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와 또 다른 세계가 충돌한 거대한 우주 에너지의 확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눈은 마음의 창이고 영혼의 투영이다. 우주의 핵이다. 아무리 친근한 사람과도 서로 뚫어지게 눈동자를 응시해 본 시간과 기회는 많지도, 길지도 않다.
마리나의 철학적 사유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한 감정,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만난 따뜻한 힘이 이동하는 침묵의 영적 에너지를, 미술을 통해 아이들이 경험하기를 바랐다. 학기 초부터 이 활동을 계획해서 한 주를 비워놓았다. 중간고사가 끝난 아이들은 이 활동을 무척 기대했다. 나도 포함되어 2명씩 랜덤으로 짝을 지었다.
ADHD 증상이 있는 아이도, 불안장애가 있는 아이도 스스로 원해서 참여를 했고 단 한 명의 포기자도 없이 2분 간 서로의 우주를 만났다.
처음 시도해 본 특별 수업이었는데 서로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굳이 그 감정에 대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사람의 눈은 시간과 마음이 함께 퇴적된 거울 같다. 눈동자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