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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Kim Nov 10. 2021

의미 없는 고통은 없다

삶에 대해 "Yes!"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늙는다'는 생물학적 육신의 쇠락과
정신의 쇠퇴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빨리 나이 들고 싶었다.
미래가 안정적일 거라는 확신 때문이 아니었다.
현재가 불안해서 외면하고 싶어서였다.



불교에서는 수만 번의 윤회를 통해
인간이 세상에 나온다고 한다.
한 사람의 생애 주기도 우주의 생멸과 마찬가지로
흐름이 있다고 본다.


살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을 둔 적도,
나이 듦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육신의 힘이 쇠하고 근육이 줄어들고 허리를 펼 수도
손아귀를 꽉 쥘 수도 없는 내 몸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점점 건망증이 늘고, 기억도, 길도 잃게 되는
나의 정신 상태를 상상해 본 적도 없다.


얼굴의 주름살은 전혀 두렵지가 않다.
문제는 늙어서도 지속될 불안과 외로움이다.
빅터 프랭클의 책을 다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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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오스트리아의 뇌과학자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직접 겪고 보았던 극한의 고통을 바탕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저서를 남겼다.


인간이 고통을 딛고 서는 데 필요한 건 'The Super Meaning', 즉 초의미이다.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Logotherapy 중 하나로 초의미를 고안한다.


Logo는 그리스어로 'meaning, 의미'라는 뜻으로 인간이 삶과 고통에 대한 어떤 의미를 찾게 함으로써 정신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초의미'란 '삶에 무조건적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를 인정하고 견디는 것이다.


프랭클 박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굶주림과 고문, 노동, 결박된 자유 등 극한의 고통 속에서 인생의 의미나 목표를 찾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던 그는 신기한 점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최악의 위생과 굶주림으로 앙상한 기아 상태였던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살아 남고, 어떤 사람은 무너졌던 것이다. 여기에서 프랭클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생에 대한 놀라운 힘을 주는 것은 '삶의 의미와 목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삶의 의미 없이는 건강할 수도, 살 수도 없다.'
이 말을 누가 했는 줄 아는가? 바로 알버트 아인슈타인이다. 의미가 없는 절망은 고통이다. 한 개인의 절망에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면 그는 반드시 고통을 겪을 것이다. 고통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해도 절망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크고 때에 따라서는 자살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왜 고통을 당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건강한 정신 상태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심리적 안정제가 되는데
고통을 줄이는 대신에 고통을 견디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삶의 갈등과 고통은 '어떤 의미로 규정짓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라는 입장은 정신분석학과는 대척되는 개념이다.
이런 관점은 내가 삶의 목표 앞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메타인지'의 맥락이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이 생물학과 환경에 의해 이미 정해졌다고 정의하고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밝혀 그것을 기점으로 고통을 풀어 나간다. 하지만 프랭클의 로고테라피에서는 모든 인간은 '의미'에 의해 달라지고 스스로 미래를 규정하여 개척할 수 있다고 정의한다.


이런 관점은 개인심리학을 창안한 아들러 이론과도 상통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이트가 인간의 성격을 자아, 초자아, 원초아로 구분하고, 인간은 이러한 부분들 간의 갈등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본 것과 달리, 아들러는 인간을 전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여 나눌 수 없는(in-divide) 전인이라는 의미를 넣어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을 창안했다. 여기서 개인이란 내담자 한 사람에 초점을 맞춘다는 뜻이 아니라 따로 나눌 수 없는 전체성을 의미한다. <상담학 사전>


아들러 이론 중에서 가장 흥미롭지만 동의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이것이었다. 바로 '트라우마'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들러의 입장은 '트라우마'란 고통을 겪은 인간이 스스로 트라우마를 고통의 원인이자 근원이라 규정지었기 때문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과거는 현재의 심리 상태에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는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지만 인간이 스스로 그것을 고통의 근원이라 규정지었기 때문에 그로 인해 고통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스스로 고통을 이어나간다는 것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현재의 고통은 과거와는 전혀 인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가 남자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크게 다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높은 곳을 두려워한다는 것의 상관관계는 전혀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맥락이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자이기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인간이 감정과 경험으로부터 어떻게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해는 되지만 좀처럼 납득은 되지 않아 접어 두었던 오래전 아들러의 심리학은, 다시 든 빅터 프랭클의 책을 통해 다른 관점으로 다시 생각하게 했다. 아들러의 이론도, 빅터 프랭클의 책도 모두 처음이 아닌데 이제 와서야 완전하게 수용된 것도 내 인생의 경험 시간이 퇴적되었다는 의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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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의미에 의해 달라지고 스스로 미래를 정해 개척할 수 있다고 정의한 빅터 프랭클은 환자들의 과거 사건이 아닌 자신의 내면을 직면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보게 한다.


기자는 빅터 프랭클에게 질문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제 수용소를 경험한 적이 없다. 그런 공포와 비극을 겪을 일이 없다. 오늘날이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프랭클은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고 인식하게 되면 고통으로써의 고통은 멈춘다고 말했다.


"완벽하게 맞는 말이다. 의미를 찾게 되면 고통받을 준비를 하게 된다. 희생을 감내할 준비를 하게 된다. 건강에 어떠한 위협도 받지 않는 상태로 말이다.


그러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목숨에 위험을 가하게 된다. 아우슈비츠보다 더한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이 과연 있겠는가?


실제로 아우슈비츠에서는 질병의 증상들이 없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의 수는 놀라울 만큼 낮았다. 반면 복지 선진국인 오스트리아에서는 14살~15살 어린이들의 자살률이 높았다. 복지 선진국 오스트리아에서 말이다. '자살'이라니."


긍정적 마인드셋을 한다고 해서 지능과 외모 등의 유전적 디폴트는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주어진 생물학적 기본 값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스스로의 자유 의지에 달려있다고 프랭클은 말한다.


"궁극적인 자유는 항상 우리 안에 있다. 이는 어떤 조건과 환경이 우리를 가로막더라도 바뀌지 않는 조건과 환경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상황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유는 늘 우리에게 있다."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를 요약하면 이것이다.


"사람은 환경과 조건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사람은 항상 자유로울 수 있다. 환경을 떠나서는 결코 살 수 없지만 그 환경에 대한 태도와 자세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프랭클은 인터뷰에서 하나의 일화를 이야기했다.


"텍사스의 한 학생에게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17살 때 다이빙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고 이후 목 아래로 마비가 되었다. 그는 말했다. '사고는 내 목을 부러뜨렸지만 나를 부러뜨리지는 못했습니다.'

무기력한 상황에 놓여있고 몸의 마비는 죽을 때까지 나아지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그 학생은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도 나아질 수 없던 그의 상황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심리학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저의 고통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도울 때 본질적인 공헌이 되었어요.'라고."


이것은 멕시코의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가 한 말과 같았다. 18살에 자신을 부러뜨린 전차 사고로 인해 일평생이 지독하게 고통스러웠지만 그 사고가 프리다 자신은 부러뜨리지 못했다고.


사회에 긍정적 영향력을 전파한 성인(成人)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환경이나 물리적인 힘이 아닌 스스로 그것을 고통이라 규정하고 삶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지 않았기 때문인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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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존재와 삶을 어떤 의미로 규정지어야 할지 구체적인 명명을 생각해 본다. 설령 매번이 최선의 선택이 아닐지라도 의미 없는 삶이란 없다는 프랭클린의 말을 믿는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잃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고
현재의 내 선택들과 선택의 의미들을 잘 규정해
궁극적 내 목표인 담대하고 단단할 노년을 위한 심적 재료를
마련해 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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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의미 없는 고통은 없다.
모든 인생의 의미는 나 자신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고통은 그 의미를 찾는 순간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행복은 자아보다 위대하고
강력한 목표를 향해 열심히 일하다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써 나타나야 한다."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그릇 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빅터 프랭클 Viktor Frankl (1905-1997 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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