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a Kim Sep 25. 2021

우리 반 나의 힐링 포인트

곰돌이 푸

우리 반에 나의 힐링 포인트 남학생이 하나 있다.

그 아이는 내가 교탁에서 전달사항을 안내하면 꼭 옆에 붙어서 실없는 농담, 담임 면박주기, 기발한 아이디어, 청소 도망간 놈 신고 등 언제나 나를 웃게 해주는 녀석이다.



순둥이 곰돌이 푸와 똑같이 생긴 녀석은 자기처럼 생긴 곰돌이 캐릭터가 꼬불이 털로 박힌 에코백을 메고 다니는데 그 모습은 내 웃음 지뢰이다. 빵 터지는 나를 보면 자기를 보고 웃는 줄 단번에 알고 내 앞으로 슬슬 걸어와서

 "아, 쌤. 이거 저 아니라고요. 제 사진이 아니라고요. 아시겠어요?"

라고 화내는 척하며 쉬크하게 간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고 웃겨서 우울하다가도 쟤만 보면 마냥 좋고 웃음이 난다. 어디서 저런 놈이 있을까 싶을 만큼 예쁜 아이.



"너, 어머니가 담임 상담 신청 안 하셨더라?"

"샘도 아시다시피 제가 뭐, 손 하나 갈 게 있습니까?

 자식을 못 믿는 엄마나 담임 상담을 오시는 거예요.

"나는 너희 어머니가 제일 궁금해. 어떻게 키우셨지?"



해서 성사된 상담 자리.

아들 넷 중 막내아들에 대한 이야기로 어머니와 담임은 내내 행복했다.






이 아이는 마냥 순둥이 곰돌이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통찰력도 있고, 생각도 너르고, 마음이 깊다.

눈치도 빠르고, 내력도 탄탄하고 무척 어른스럽다.

고작 열일곱 밖에 안된 아이가 자기보다 배는 산 담임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는 게 너무 놀랍고 고마워서 그 아이에 대한 마음을 남겨 놓고 싶다.



"샘은 너무 착해요. 안 무서워요.

그러면 애들이 샘이 좋고 편해서 엄마처럼 막 한다니까요?

근데 안타깝게도 샘은 이미 늦었어요.

샘이 화를 내지도 않으시지만 화를 내신다 쳐도 안 무서울 건데, 샘은 내년에도 그러실 것 같아요.

샘은 화를 내는 게 더 무서울 것 같으세요?

말없이 무표정으로 조용히 바라보는 게 더 무서울 것 같으세요?

후자가 훨씬 무서워요. 한 번 연습해 보세요."



"근데 00야, 교사가 꼭 무서워야 하는 걸까?

나는 너희들 보면 좋고 귀여워서 화가 안나.

화가 나더라도 화내고 싶지가 않아.

샘은 회사를 오래 다녀서 그런가, 너희들 보면 애기잖아."



"샘, 영어 A샘 아시죠?

그 샘은 화를 내신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애들이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해요.


근데 우리 샘은 너무 착해요.

우리가 개 난장판이어도 샘은 좋게 좋게 가르쳐 주시니까

엄마한테 드는 마음이 들어서 투정을 부리고 싶다고요.


그럼 샘이 더 힘들어지실 거니까

샘은 좋은 아이들에게만 선생님의 에너지를 나눠주세요.


대부분의 학생들은 샘이 좋은 선생님인지 잘 알고 있어요.

나쁜 학생들은 그냥 버리세요, 샘.



재미있는 건, 애들도 샘들 욕 엄청 하거든요?

근데 샘을 욕하는 애들은 한 명도 못 봤어요.

근데 샘! 그것 좀 이상하지 않아요?


샘은 죄송한 말씀이지만,

샘은 한 명에게라도 좋은 사람이 돼주고 싶어 하셔서 그런 것 같아요.

누가 샘을 싫어하더라도 샘 마음이 제일 중요해요.

화나면 화를 내셔도 돼요. 샘이 힘드실까 봐 걱정돼요.

샘은 진짜 좋은 선생님이에요."



눈물이 핑 돌았다.

매년 보석들을 만난다.

하루에도 찾아보면 빛나는 순간들은 반드시 있다.

나이가 많다고, 경험이 많다고, 성공을 더 겪어봤다고 지혜로운 건 아니다. 이 어린아이의 입에서 저런 말들이 나온다는 건, 저 아이의 마음속에 어떤 거대한 빛이 숨겨져 있을지 경이롭다.



덤으로 6년 전 초임 때 만났던 당시 고3 놈들에게

반가운 메시지까지 왔다.

참 신기하다.

바닥을 찍다가도 누군가 손을 내민다는 것.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정말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점점 든다.

오늘도 이렇게나마 마음공부를 한다.


이전 09화 같은 관찰, 다른 판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